"매니저님, 저 이직하게 됐어요. S전자요."
대이직의 시대를 온몸으로 경험하는 중입니다. 제가 이직을 했다는 건 아니고요. 최근 1, 2년 동안 바로 옆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을 여럿 떠나보내면서, 남는 사람의 그 애매하고 불편한 감정을 어떻게 소화하는 게 맞는 건지 매번 고민하는 중입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의 조건이 그리 나쁜 편은 아닙니다. 적당한 업무량에 적지 않은 급여,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동료들. 하지만 다들 야근이 좀 많아도 돈을 더 많이 주는 회사로, 전망이 더 좋아 보이는 회사로 간다고 합니다.
누군가의 이직 소식이 들릴 때마다 회사를 옮기기엔 몸이 조금 무거워져 버린 듯한 선배들이 "광현아 넌 이직 안 해? 왜 안가?" 하며 물어옵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심란합니다. 내년이면 저도 벌써 이 회사에서만 9년 차네요.
직장보다 직업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저로서는 같은 직무로 회사만 바꾸는 일에 좀처럼 관심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진심 어린 열정을 담지 못한 제 경력을 포장해 누군가에게 어필한다는 게 참 불편했습니다. 다들 그렇게 이직을 한다는데 저는 그게 내키지 않았습니다. 가까운 동료들의 이직을 경험할 때마다 마음이 흔들렸지만, 이직을 하게 된다면 그 이유를 제 안에서 찾고 싶다는 고집은 좀처럼 꺾이지 않았습니다.
고민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내년에 제 아이가 유치원 6세 반이 되는데요. 며칠 전 진학 설명회를 듣고 온 아내가 심화반이 얼마, 영어 유치원이 얼마 하며 설명회의 내용을 읊어주네요. 다음날 아침에 출근을 준비하며 자고 있는 아내와 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봅니다. 워라밸을 포기하더라도 지금은 가족들에게 돈을 더 벌어다 줄 때인 건 아닐까? 당장 번듯한 수입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글쓰기에 이렇게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게 맞는 걸까? 생각이 많아집니다.
박웅현 님의 <여덟 단어>라는 책에 모든 인생은 '전인미답'이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앞서 간 사람이 아직 밟지 않았다는 뜻인데, 가보기 전엔 거기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제게 어떤 선택이 옳은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당장 바쁘지만 돈을 더 많이 주는 직장을 찾아 떠나는 것일 수도 있고, 안정된 자리를 지키며 직업적 고민에 시간을 더 투자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두 가지 길을 다 걸어 보지 않고서야 나중에 되어서 "그때 그럴 걸" 하며 후회하는 건 딱히 의미가 없다는 점입니다. 가보지 못 한 길의 끝에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요.
결국 진심을 다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지금의 내 삶에 대한 진심, 내 마음의 목소리에 대한 진심입니다.
오직 내 안의 것들만이 나를 움직일 수 있도록 허락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박정열 님의 책 <AI시대 사람의 조건 휴탈리티>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게 글쓰기든, 다른 무엇이든 지금 여러분의 마음에 한 번쯤 성실해 보길 권해드립니다. 지금의 일상을 해치면서 까지 무언가에 뛰어들어 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현실이 그렇지 않잖아요. 그저 하루에 한 시간 만이라도 온전히 나를 위해 고민하고 사용하면서, 단순히 월급쟁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지지 않는 뚜렷하게 구별된 나만의 정체성을 조금씩 만들어가는 경험을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여정을 응원합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