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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앙다 Oct 09. 2021

모든 헌신이 이기적이길

<70세 사망법안, 가결>, 가키야 미우, 김난주 역, 왼쪽주머니

 70세가 되면 합법적인 안락사를 통해 죽어야 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노인 인구가 많아지면서 급격하게 늘어난 복지 지출을  이상 정부 재정으로 감당할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법안이 통과되고, 늙은 시어머니 병수발을 하며 24시간 시달리고 있던  주부, 도요코는 묘한 기대감을 가지게 된다. ‘드디어 벗어나는 걸까?’


  시행까지 2. 이제 조금만 참으면 되는데, 도요코의 마음은 갈수록 초조해진다. ‘2 엔 정말 달라질까?’ 남편은 정년이 오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일을 그만 두고 세계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이제 죽을 날이 70살로 정해졌으니, 하루라도 빨리 자기의 삶을 즐겁게 살아야하지 않겠냐고 한다. ‘그럼 나는? 24시간 어머니 병수발 하느라 밖에 제대로 나가지도  하고, 새벽마다 불러대는 통에 잠도  자고, 아들,  키우느라 꿈을  잊어버린 나는?’


 자기 주장이 분명하고, 공부도  했던 도요코는 언제부터인가 소극적인 사람이 되었다. 남편도, 자식도 하지 않는 일들을 자의 , 타의 반으로 감당하며 집안에서만 지내다 보니, 스스로 돈을 벌고 혼자서 살아갈  있을지 두렵기만 하다. 그래도 행동으로 옮겨 본다. 그렇지 않으면 죽을  같아서. 도요코는 마음에 품고 있던 가출을 실행에 긴다.




 타협에 의한 헌신이란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나도   그런 적이 있다. 고등학생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했다. 어른 예배 성가대 반주를 하면서  어려운 곡들을 소화해야했다.   작곡가가 되는  꿈이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음악을 포기했다. 그런데 이렇게라도  재능을 써먹을  있는 것이 감사했다. 게다가 예배에 도움이 된다니 기뻤다.


 그런데 고3까지 했던 그 반주를 대학생이 되어서도 해달라고 한다. 내가 본가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대학교를 갈 예정인데도 말이다. 주말마다 내려와서 그 반주를 하라고, 나 밖에는 할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게 무슨 소리인지 납득이 안 되었다. 교회에 피아노 치는 사람이 나 말고도 몇 명 더 있는데, 왜 굳이 나를?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잘 치기 때문에?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재수를 하게 되어 주말에 내려오는 수고 없이 집에서 지내면서 반주를 하게 됐다. 그리고 1  대학에 가면서 반주는 그만 하게 되었는데, 이유인즉슨 나를 대체할 사람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보다 수준이 훨씬 높은 음악 전공자였는데, 나는 왠지 씁쓸했다.


 돌아보면, 재수를  때도 내가 그만 둔다면 어디선가 대체할 사람을 구할  있었을 것이다.  없이는  된다는데 어떡해, 라는 생각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마치 도요코가 집을 나가니 재활의지가 강해진 시어머니와 여행에서 급히 돌아와 집을 수리하게  남편처럼, 내가 없어도 그곳은 그곳대로  굴러갈 터였다. 하지만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이용하는 어른들로 인해,   마음을 돌보지  하고 걱정에 휩싸여 수동적으로 굴었다.


 그러한 타협적인 헌신은 사람을 고갈시킨다. 칭찬 받기를 기대하고 했던 일이기에, 그것이 없어질 때는 기쁨이 아닌 서운함만 남는다. 억울하고, 서러워진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내가 싫다고 거부하다가 억지로  일도 아니기에 남탓을 하기도 어렵다. 나의 선택이었지만, 나의 선택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모든 헌신은 이기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누렸던 것들이 감사해서, 기쁜 마음으로 스스로 일해야 고갈되지 않는다. 그러다 지치면, 가볍게 멈출 수도 있다. 내가 원해서  것이기에, 원하지 않으면 그만 두는 것이다. 헌신은 지극히 이타적인 일이지만,  시작은 이기적이어야 한다. 하고 싶어서 하고, 하기 싫어서 안 하고, 기쁘면 기쁘다고, 화가 나면 화가 난다고 말해야 한다.


  자신을 돌볼  아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돌볼  있다. 도요코가 주부로  안의 모든 일을 돌보았던 것은 그녀 스스로에게도 괴로운 것이었지만, 가족들에게도 변하고 성장할  있는 기회가 없도록 만들었다. 가족들이 아내와 며느리와 엄마의 소중함을 모르고 이기적으로 살게 만들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자신을 먼저 돌보아야 한다. 처음에는 어색하다. 거절하는 것이 어색하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까봐 두렵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아니라  사람의 몫이다. 거절 당한 상대가 나를  이상 사랑하지 않을까봐 걱정도 된다. 하지만 그것 또한 각자가 감당해야  감정이다. 멀어지든지  가까워지든지, 관계는 그렇게 언제든 변하는 것이다.


 도요코! 당신의 삶을 응원한다. 세상의 모든 도요코들, 무엇보다 당신 자신의 마음이 제일 우선이다. 그렇게 나아가고, 성장하고, 그대의 삶을 살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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