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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두부 Feb 14. 2024

이상한 그림편지

아몬드섬의 마녀

Pen, pastel, watercolor on paper

이상한 그림편지

12.<아몬드섬의 마녀>

Pen, pastel, watercolor on 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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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친구,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군요. 내가 사는 작은 마을은 지난밤사이 하얀 눈으로 뒤덮여 온통 하얀색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눈이 시릴 정도의 하얀 풍경을 보면 이따금씩 비현실적인 기분에 사로잡히곤 한답니다. 아름답지만 어딘가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죠. 그런 기분을 느낀 적이 있나요? 언젠가 제 모험담을 적은 이 편지가 끝나면 당신을 만나 당신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어 지네요. 사실 가끔은 답장을 기다리기도 하지만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이에 답장을 바라는 것은 소름 돋는 일일지도 모르겠네요. 이런, 또 다른 이야기로 샐 뻔했군요, 지난번 달 레스토랑에서 나는 아주 조용하고 따뜻한 달 빛을 받으며 밤을 보냈습니다. 잠시 잠에 든 후 일어나 보니 레스토랑은 온데간데 없어졌고 연둣빛 풀밭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져있었습니다. 풀밭에는 보라색과 분홍색 그리고 하늘색꽃들이 말 그대로 흐드러지게 피어있었습니다. 아주 아름다운 곳이었죠. 나는 흙을 털고 일어나 조금 멀리 보이는 아몬드 모양의 탑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노란 벽돌로 지어진 탑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가자 보라색 옷을 입은 작은 마녀가 나를 반겨주었습니다. 마녀가 활짝 웃을 때마다 그녀의 하얀 이가 이상하리만큼 환하게 빛났는데 꽤나 섬뜩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성의 천장에는 호두나무 가지로 만든 모빌이 달려있었는데 그 나뭇가지에는 하얀 새들이 걸려있었습니다. 새들이 어찌나 하얗던지 마녀의 하얀 치아처럼 눈부시게 빛나고 있어 오래 쳐다볼 수는 없었습니다. 마녀는 자신의 몸통만 한 새장에 꽤나 큰 새를 보살피고 있는 듯했는데 새의 눈이 마치 사람처럼 슬퍼 보였습니다.  새를 보고 있는데 사람을 본 것 같은 기분이었죠. 마녀는 내가 모험을 하러 온 외지인인 것을 알고 있었고 굉장히 아쉬워하며 말하더군요.

" 이 새들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어요. 나는 그들이 영원히 내 곁에서 빛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눈부신 흰 새로 바꿨답니다. 아름답지 않나요? 하얀 새는 아주 특별하거든요."

그녀는 마치 나도 새로 만들고 싶어 하는 눈치였기에 나는 겨우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갈 길이 멀다는 핑계를 대고는 서둘러 탑을 빠져나왔습니다. 하얗게 빛나는 새들의 텅 빈 눈이 쉽사리 잊히지 않아 나는 그곳을 벗어나며 스무 번도 더 헛구역질이 났답니다. 이제 와서 말하지만 그 기억 때문에 한동안 나는 겨울이 오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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