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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두부 Feb 13. 2024

이상한 그림편지

달 레스토랑

Colorpencil, crayon, oilpastel on paper



 안녕 친구, 이곳은 기나긴 겨울에 접어들었습니다. 나무들과 호수가 전부인 이 마을은 매우 조용하고 또 적막합니다. 발걸음을 멈추면 바로 나뭇잎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 바람이 나무사이로 빠져나가는 소리들을 들을 수 있죠. 하루에 5명 정도를 본다면 꽤 많은 사람을 본 하루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이곳은 사람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는 어제오늘 주유소의 직원을 제외하고는 한 명도 보지 못했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곳이 사람을 상하게 만든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다행히도 나는 이 적막함을 아직 사랑하고 있습니다. 모험길에서 만난 사람들도 나와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괴팍한 회색쥐의 집에서 나왔을 때는 아직 한밤 중이었지만 둥근달이 몹시 밝아 나는 어렵지  않게 조금 멀리 보이는 한 음식점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천장은 두꺼운 유리처럼 투명해서 달이 내부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달처럼 둥글고 하연 테이블 앞에 앉은 몇몇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그들 앞에 놓인 잔을 들거나 생각에 잠겨있었습니다. 가게 안에는 하나의 조명도 없었지만 그 누구도 그것에 불만을 가진 것 같아 보이진 않더군요. 작고 둥근 테이블 앞에 자리를 잡고 나도 그들 사이에서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겼습니다. 작은 숨소리, 와인을 조금 홀짝이는 소리, 잔이 부딪히는 소리 같은 작고 사소한 소리들만으로 채워지는 그 공간에서 고향이 생각났습니다. 참 이상하게도 나를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음에도 그곳이 그리워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그곳을 그리워하며 나는 말없는 그들과 그 위에 뜬 따스한 달 아래에서 깊고 편한 잠에 들 수 있었습니다. 그날은 달빛이 차갑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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