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늦은 밤이었다. 라현은 끈적한 등에 달라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얇은 민소매 원피스를 벗어던지고 시원한 수영장 안으로 풍덩 빠지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여름밤은 유독 짧게 느껴져서인지 피곤한 상태임에도 그녀는 카페 밖을 나가고 싶지 않았다. 마치 내일 아침이 자신에게 오지 않을 것을 확신하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카페 안은 늦은 시간임에도 여러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서 조용하지 않았다. 왼쪽 테이블에 귀를 기울였다가 오른편에 귀를 기울이면 다른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의 말소리는 조율이 잘 된 악기처럼 선명하게 들리는 듯했다. 라현은 2년 정도 만난 연인과 마주 보고 앉아 이야기하고 있었다. 라현은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농담들이 더 이상 재밌지 않게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말 끝마다 "나만 웃긴가"라는 그의 말도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라현의 마음은 접착에 실패한 어떤 종잇장처럼 어설프게 들떠있었다. 이런 자신의 감정과 상태가 몹시 성가셨지만 라현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그와의 관계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긴 여름이 끝나면 모든 게 정리돼있을 거라는 터무니없는 확신을 할 뿐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생각에 잠기다가도 그녀는 숨을 쉬러 나오는 다이버처럼 생각의 깊은 바다에서 황급히 빠져나왔다. 라현의 여름밤이 어제와 비슷하게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