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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 Aug 20. 2022

15 여행은 목적지가 가장 지루하다




여행을 다녀왔고, 핸드폰 속 서른몇 장의 사진이 유일한 증거로 남았다. 그래 봤자 도대체 어딜 갔는지 알 수 없을 정도의 사진들뿐이다. 먼 산맥, 일렁이는 바다, 기이한 형태의 암석, 건물의 귀퉁이, 시장의 천막. 여행지의 파편과 인상들.


장마를 놓친 여름은 8월 중순까지도 비를 뿌렸다. 여행을 가는 날도 오는 날도 위에서는 쏟아지는 비에, 앞뒤는 오도 가도 못하는 차들에 갇혀 있었다. 창밖은 계속해서 어딘지 모를 산으로 가득 찼다. 한창의 여름이라 잎이 빼곡한 나무로 몸을 감싼 산등성이가 보였다. 결국 내리기 시작한 비에 산맥에 안개가 내려앉았다. 안갯속의 산은 그림자처럼 납작해졌다. 구름이 골짜기 안에 갇혀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세상은 흰색과 회색의 수묵이 되었다. 긴 터널을 나오면 날씨가 시시각각 바뀌었다. 산은 회색이었다가 어두운 초록색이었다가 해를 받아 연둣빛으로 빛나기를 반복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건, 항상 재미있는 일이다. 수많은 차들이 줄지어 움직이고 가드레일과 아스팔트의 풍경이 펼쳐진다. 하지만 검은 도로와 흰 줄, 초록색 표지판, 밝고 희미하게 빛나는 금속의 나머지는 예상보다 꽤 아름답다. 기이하게 유려한 선을 가진 색색의 자동차들과 저 멀리 스모그에 갇힌 아파트가 흐리게 떠오른다. 빛바랜 페인트칠이 된 교량과 새들이 둥지를 튼 가로등. 자연은 웃자란 잡초가 전부인 그런 고속도로의 풍경도 나는 마음에 든다. 그런 이미지는 내 상상의 영역 밖에 있다. 있다는 사실조차 대부분 잊어버리고 있던 목적지 사이의 세상은 길고 멀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떻게 가고 있는지, 어디쯤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로 떠나는 구름이나 사라져 버리는 나무 따위를 쳐다보는 것. 어쩌면 다시는 보지 못할 풍경을 흘려보내는 것. 사진을 찍을 새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보내주는 것.


몇 시간이고 차를 타며 스쳐 지나가는 산맥을 보는 것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여기저기 걸어 다니는 것보다 인상적일 수도 있다. 안개에 휩싸인 산. 여름의 초록을 내뿜는 산.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한 산의 선명한 윤곽. 느리게 떠가는 구름. 그런 것들이 집에 와서는 기억에 남는다. 여행지에서는 할 일 투성이지만, 어딘가로 가는 중에는 그 핑계로 가만히 있을 수 있다. 나는 죄책감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영원히 어디에도 도착하지 않았으면 할 때가 있다. 멍하니 자동차의 뒷좌석에 앉아서 스쳐 지나가기만 하는 세상을 쳐다보는 것은 편하다. 나는 어디에도 없고 누구도 아니며 무엇도 할 필요가 없다. 나는 잠들었다 일어나고 밖을 보았다가 다시 잠든다. 세상은 도로가 되었다가 터널이 되었다가 산이 되어 사라져 버린다. 아무것도 아니어야 비로소 안심하는 나는, 목적지가 오기를 기다리는 척 앉아 있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래 왔다. 밖을 쳐다보면서 간판을 읽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저기는 뭘 하는 곳일까. 저 사람들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도착할 곳에 대한 궁금증보다 가는 와중에 마주치는 것들이 더 재미있었다. 그건 지금까지도 이어져서 가는 곳은 안중에도 없고, 가는 와중의 풍경에 마음을 빼앗긴다. 고속도로 옆의 웃자란 풀이나 산비탈의 무너져가는 집 따위가 눈에 들어온다. 세상에는 내가 갈 수는 없지만 스치듯 볼 수 있는 곳이 참 많다. 그런 장소들은 모르는 곳으로 남아야만 영원히 각인된다. 걸을 수 없는 숲. 만질 수 없는 꽃. 들어갈 수 없는 집. 그런 것들 말이다.




나에게 여행은 자동차 안에서, 기차 안에서, 비행기 안에서 내다보는 '사이 풍경'의 이미지이다. 길게 늘어지는 기다림의 시간이고 엔진의 소음에 묻히는 음악 소리이며 잔상으로도 남지 않는 창밖의 모습이다. 어떤 생각도 길게 이어지지 못하고 나는 한 쌍의 눈이 되어 자리에 앉아 있다. 무언가가 되어야 하며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상태의 나는 절박하게 생각 없이 있는 시간을 원하는지도 모른다. 어떤 것에도 집중할 필요도 없고 무엇도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버리는 시간' 말이다. 누군가는 그런 버리는 시간마저 사용하려 하겠지만, 나는 다소 죄책감 없이 시간을 낭비하고 싶은 모양이다.


여행을 다녀왔고 나는 시간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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