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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점 Feb 28. 2021

천운으로 피한 사고

아무 일도 안생겨서 천만다행

어느 토요일 아침이었다. 와이프가 망포역 골든스퀘어까지 차를 태워 달란다. 30분 정도 볼일을 보고 나올 테니, 기다렸다가 집에 갈 때도 태워 달란다. 즉, 운전기사 좀 해 달라는 것이다. 말투는 부탁이지만, 사실은 명령이나 마찬가지다. 귀찮긴 했지만 흔쾌히 승낙하고 같이 차에 올랐다.


골든스퀘어 앞에 도착. 건물 입구에서 와이프를 내려주었다. 골든스퀘어는 근방에서 가장 사람들이 붐비는 빌딩이다. 토요일에는 주차장에 들어가려는 차들이 항상 긴 줄을 이룬다. 나는 그 줄을 설 마음이 전혀 없었다. 한적한 곳에서 차를 세워놓고 기다릴 생각이었다. 어디에 짱 박히면 좋을까, 차를 몰고 주변을 찾아보았다.


운이 좋았다. 가까이 있는 아파트 단지 앞에서 아주 적당한 자리를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아무도 없는 한적한 도로. 차 뒤쪽은 상가건물 주차장 입구여서 다른 차가 세울 일을 없었다. 앞에 다른 차가 바짝 세우더라도 뒤로 뺄 공간은 충분했다. 이제 연락이 오기만 기다리면 된다.


예전 같으면 차 안에서 라디오나 음악을 듣거나, 근처 산책을 했을 것이다. 요즘은 스마트폰이 있어서 기다리기가 지루하지 않다. 나는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앞을 힐끗 보니, 1톤 트럭이 세워져 있었다. 어찌나 스마트폰에 빠져있었는지, 저 차를 세우는 줄도 몰랐다. 그러든가 말든가, 이내 눈은 다시 스마트폰에 꽂혔다. 잠시 후 와이프에게서 데리러 오라는 문자가 왔다. 나는 차 시동을 걸었다.


그 당시 트럭이 이 정도 거리에 있었다. 이 사진은 몇 달 뒤 비슷한 상황에서 찍은 것이다.

 

거울을 보니 뒤쪽에는 아무 차도 없었다. 앞에는 그 1톤 트럭이 여전히 있었다. 핸들을 왼쪽으로 끝까지 돌리면 가까스로 한 번에 나갈 수 있을 만한 거리. 아슬아슬하겠지만, 한 번에 나갈까? 아니면, 뒤로 조금 뺐다가 여유롭게 나갈까? 고민되는 거리였다. 당시에 나는 왼쪽 어깨가 불편한 상태였다. 왼손으로 핸들을 두 바퀴 돌리면 어깨에 무리가 갈 것 같았다. 귀찮지만 후진했다가 가기로 마음먹었다.  


기어를 넣고 2미터쯤 후진했다. 앞을 보니 파란색 무언가가 있었다. 자세히 보니, 어떤 여자가 웅크리고 마늘을 줍고 있었다. 헉!!!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앞에 사람이 있던 것을. 후진하기 전까지는 전혀 보지 못했다.  


트럭 짐칸에는 포장이 쳐져 있었다. 안에는 양파, 배추, 마늘, 토마토 등의 야채와 과일이 실려 있었다. 인도에서는 한 남자가 야채를 나르고 있었다. 필경 둘은 부부일 것이다. 가게에 납품할 야채를 싣고 왔을 것이다. 내 앞에 차를 세워놓고, 야채 박스를 가게로 운반했을 것이다. 그러다 실수로 마늘을 떨어뜨렸을 것이다. 그래서 바닥에 엎드려서 마늘을 줍고 있는 것일 것이다. 딱 보니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딱 보고 알 수 있는 상황을, 바로 조금 전에 일어났을 상황을,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있던 사이에 저렇게 많은 일이 벌어졌는데,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스마트폰이 아니었다면 분명히 상황을 알았을 것이다.  


하마터면 큰 일 날 뻔했다. 내 부주의로 사람을 잡을 뻔했다. 전진할까 후진할까 반반의 확률에서 후진을 택한 덕에 화를 면했다. 내 어깨가 불편하지 않았다면 전진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후진하지 않고 바로 전진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듯 해, 상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정말 다행이다. 일생의 큰 운을 오늘 사용했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것에 운을 썼다는 것은 허무하지만, 그 덕에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으니 전혀 아깝지 않다. 이제 당분간 로또 맞을 일은 없을 것 같아 좀 아쉽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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