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Day15, 어느덧 절반
길을 아는 것과 그 길을 걷는 것은 다르다.
오늘은 순례길의 반환점을 지나는 날이다. 까리온 다음 마을에서 산티아고까지는 약 390km. 딱 절반이다. 오늘까지 걸으면 400km를 넘게 걷게 된다. 오늘은 전에 만났던 KT와 BW와 같이 걸었다. 까리온에서 다음 마을인 꾸에사는 도시까지 거리는 17km 정도 되는데 이 사이에 아무 마을이 없다.
보통 프랑스길은 5km 정도에 하나씩 마을이 나와서 언제든 쉬었다가 갈 수가 있다. 하지만 이곳에는 그런 마을이 없었고, 아마 이곳이 마을 간의 거리가 가장 긴 곳이었다. 또한 순례길에서는 일반적으로 1시간에 5km 정도를 걸어갈 수 있는데, 이제는 몸이 완벽하게 적응해 2시간 정도까지는 쉬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 10km 정도 걷고 10~20분 쉬는 일이 일반적인 패턴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17km를 쉬지 않고 걸었다. 3시간이 조금 더 걸려 다음 마을에 도착했는데, 나랑 KT는 커피만 먹고 쉬었다가 가려했는데, 옆에 BW이가 소시지에 맥주를 시키는 것이었다. 우리 둘은 맥주를 한 모금 맛보자마자 생각이 바뀌어 똑같이 소시지와 맥주를 시켰다. 나중에 이 두 명과도 산티아고까지 끝까지 함께 가게 되었다.
우리는 걸으면서 서로 많은 얘기를 했다. KT는 서울대 출신으로 휴학을 하고 이 길을 걸으러 왔다. 나처럼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다른 점이 많았지만 다양하게 알고 있는 지식이 많았다. BW이는 대학교는 자퇴하고 지금은 일도 그만두었지만 성격이 너무 좋은 친구였다. 공통점은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주는 자세였다.
오늘은 걸으면서 구름 하나 보기 힘들 정도로 날씨가 좋았다. 얼마 만에 보는 좋은 날인지!! 솔직히 그동안 너무 추웠어!!! 오늘 목적지 사하군에 도착하기 30분 전. 드디어 절반을 왔다는 표지를 만났다.
절반. 오늘이 15일째고 드디어 딱 절반을 왔다. 한없이 멀게만 느껴지던 800km의 길이 그저 걷다 보니 절반이 된 것이다.
길을 걷는 것과 그 길을 아는 것은 다르다.
난 이 말의 힘을 믿는다. 직접 걷는 것과 단지 아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가 있다. 우리는 무언가를 할 때마다 항상 많은 경우의 수를 따져가서 망설인다. 마음은 이미 정답을 알고 있는데, 괜히 하고 나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때의 두려움이 앞선다. 하지만 방금 말했듯이 우리의 마음은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 그럴 때마다 늘 같은 말을 했다. 머릿속의 꿈과 현실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행동을 해야 한다고. 늘 그래 왔던 것처럼, 하루하루 걷다 보니 벌써 절반에 도달한 것처럼, 인생도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목표를 향해 집중하면 어느 순간에 도달하게 된다.
오늘로 벌써 3번째 40km를 걷는 날이다. 늘 그렇듯, 35~40km 구간이 나에겐 마의 구간이었다. 30km에서 35km까지 걸을 때랑, 35km에서 40km를 걸을 때 느낌이 다르다. 다리에 한계가 느껴진다. 겨우 사하군이란 마을에 도착하고 우리는 마트에서 피자와 와인을 사 왔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이 알베르게에는 전자레인지가 없다. 우리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알베르게에 있는 주인아주머니에게 부탁했다. 주인아주머니가 잠시 고민하더니 옆에 있는 레스토랑 주인에게 부탁해 피자를 오븐에 구워서 가져다주셨다. 스페인 알베르게의 주인 분들은 정말 친절하고 착하시다. 정말 봉사자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