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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때하자 Jul 08. 2021

11. 오답정리, 어떻게 하고 계세요?

아무리 좋은 해열제라도 배탈을 고쳐줄 수는 없다

  연재를 시작하고 거의 쉴 틈이 없었는데, 열 번째 글을 올린 후 모처럼 휴식 시간을 가졌다. 주말만으로는 휴식이 부족해서 큰 맘먹고 목-금요일 이틀 연가를 냈는데, 코로나 확진자가 쏟아져 나오는 걸 보니 아무래도 꼼짝없이 집에서 글을 써야 할 것 같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부지런히 써볼 계획이다.


1. 난 남들처럼 평범한 고시생이었다


  잘못된 오답정리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내가 훈련법을 이야기할 때마다 수험생들이 품는 의혹 (?) 하나를 해소하고 갈까 한다. 바로 '평범한 사람들은 따라   없는 천재들을 위한 훈련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대한 이다. 오늘은 내 고시생 시절을 잠깐 이야기해보려 한다.

  행정고시에 합격했다고 하면 누구나 대단하다며 칭찬 일색이고(연배가 높은 분일수록 더 치켜세워준다. 과거 급제했다며. 그래서 행시 합격은 단언컨대 최고의 효도 중 하나다), 수험생들은 합격자를 나와는 다른 부류의 인간으로 생각한다. 그렇지만 어떤 합격생이든 도통 외워지지 않는 행정법 교재를 옆에 둔 채 그저 그런 식당에서 식사를 해치우던 시절이 있었고, 책상에 엎드려 오래 잤다는 이유로, 또는 어제 분명히 외웠는데 하루 만에 까먹었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를 책망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2017년 11월 고시에 최종 합격했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난 마치 1차부터 3차까지 우수한 성적으로 어려움 없이 합격한 사람으로 비치고 있었다. 그렇지만 난 2013년에 초시를 치렀고, (재경직에서 일행직으로 직렬을 바꾸기까지 하면서) 공부한 지 5년 차가 되어서야 합격한 평범한 고시생 중 한 명에 불과했다.

  난 군대에서 PSAT을 처음 준비했는데, 강의는 고사하고 성능 나쁜 프린터로 주변 눈치 보며 출력한 기출문제가 전부였다. 택배로 PSAT 학원 교재들을 몇 권 받아볼 수는 있었는데, 그 두꺼운 책들을 펼쳐보니 온갖 이해하기 어려운 계산 원리(법칙)들과 독해 방법에 대한 내용이 빼곡하게 박혀 있었다. 보자마자 이건 아니다 싶었다.

  PSAT 강의는 들을 수가 없고 교재는 읽기가 싫어서, 기출문제나 풀어보자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사실 처음 훈련할 때는 기출문제를 아무리 풀어도 점수가 70점대 중반에 그쳤다. (당시 합격선 70점대 후반~80점대 초반) 이유를 알 수 없는 실수들이 반복됐다. 그런데 몇 달 뒤, 나는 PSAT 시험장에서 단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평균 89.1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얻었다. 그 비결은 (귀여운) 오기가 불러온 고도의 집중력에 있었다.

  첫 PSAT 시험일, 나는 휴가를 쓰고 시험을 보러 갔다. 때문에 일분일초가 아까웠고, 저녁에 대학 동기들을 만날 생각에 들떠 한껏 꾸민 채 (짧은 머리도 세우고) 시험장에 갔다.

  당시 25명이 정원(5x5배치)인 고사장에서 내 자리는 정 가운데였다. 유독 내 고사장에는 수면바지나 잠옷이었던 것 같기도 츄리닝을 입은 수험생들이 많았다. 군바리가 꾸며봤자 별 티도 안 났겠지만, 고시생 사이에 있자니 괜히 신경이 쓰였고 옆자리 수험생들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마치 '너는 그냥 한 번 시험 쳐보려 왔구나? 시험장 구경 잘하고 가~' 같은 시선이었다. 이 정도면 자의식 과잉 나름 부대에서 없는 시간 쪼개가며 선임에게 욕도 먹어가며 준비했는데, 딱 봐도 어리고(당시 만 22살) 초시생 같다는 이유만으로 무시하는 것 같아 오기가 생겼다. 그리고 다짐했다. 내가 이 고사장에서 제일 높은 점수를 받겠다고.

  겨우 그 오기 하나로 초인 같은 집중력을 발휘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플로(Flow)상태*에 도달했던 것 같다. 그날의 경험은 집중력의 중요성에 대한 깨달음으로 이어졌고, 이후 매해 PSAT 시즌마다 집중력을 훈련하며 점점 효율적으로 대비할 수 있게 되었다. (*플로상태란 무언가에 고도로 집중한 상태를 뜻하며 자세한 설명은 9번 글에서 볼 수 있다)


  뭐, 내 2차 시험의 역사는 PSAT에 비하면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직렬을 바꾼 이유는 점수가 나오지 않아서였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난 수학을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도 모의고사 1등급은 나왔지만, 다 맞는 일은 거의 어쩌면 한 번도 없었다. 항상 수리적 센스를 요하는 마지막 한 문제를 풀지 못했다.

  재경직을 선택한 이유는 단지 '이왕 할 거면 제일 빡센거 해야지'라는 군바리 마인드 때문이었다. 경제학, 재정학, 통계학이 내 발목을 잡고 있음을 인정하게 된 것은 공부한 지 4년이 지난 2016년 2차 시험 이후였다. 2014년 2차 합격선보다 평균 13점 차, 2015년 평균 5점 차, 2016년 평균 8점 차. 내가 합격 전에 받은 초라한 성적표다.

  2016년 말, 수리적 센스가 없어 경제과목에서의 고득점이 어렵다고 판단했고 상대적으로 논문 과목에 자신이 있었던 터라 일반행정 직렬로 바꾸기로 결심했다. 다행히도 PSAT은 훈련법을 통해 탄탄하게 잡아둔 상태여서 2017년 1월 직렬을 변경하고도 정치학과 정보체계론을 공부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투자할 수 있었다.

  여러 운이 겹치면서 2017년 나는 합격선보다 평균 6.5점 높은 점수를 얻었다. (재미있는 건, 경제학은 중간만 하자는 심경으로 교수님들 기본서를 다독했을 뿐인데 기본에 충실했던 덕분인지 매우 높은 점수를 얻었다는 사실이다.)


  2016년의 나는 전년(2015년)보다도 2차 평균점수가 뒤로 후퇴했다는 사실에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졌고, 주변에서 비슷한 시기 공부를 시작했던 친구들이 합격하거나 소수점 차로 2차 합격선을 따라잡는 것을 보며 정말 크게 좌절했다. 마음속으로 매일 울었던 것 같다. 궁지에 몰려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생각으로 결정했던 직렬 변경은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가 되었고, 감사하게도 최종 합격의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이 글을 읽는 수험생 중 누군가도 그런 좌절을 겪어 본 적이 있거나, 그런 좌절의 한가운데 있을 수 있다. 내가 시간을 쪼개 글을 연재하는 이유 중 하나는 좌절에 빠진 수험생들에게 희망과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고시생 무렵 학원 선생님 한 분께서 그런 말씀을 했던 기억이 난다. "눈앞에 벽이 보이면 고개를 들어보자. 사실 그건 벽이 아니라 네가 오를 계단이다." 부디, 어제의 내 모습을 통해 내일의 나를 재단하지 말자. 모든 성공의 역사 속엔 수많은 시행착오의 기록이 함께 한다.

  앞으로 '이 훈련법은 나 같은 사람은 따라 해선 안돼. 비범한 사람들이나 활용하는 방법일 거야'라고 생각지 않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시도라도 해보자. 혹시나 훈련법이 불친절하게 느껴진다거나 적용이 어렵다면 내 설명이 부족한 탓이니 마음껏 댓글로 질문해도 좋다. 시간 나는 대로 설명을 보충하고, 글을 다듬어 전달하도록 노력하겠다. (실제로 이미 올려둔 글도 수차례 읽으며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수정/보완하고 있다. 아무도 모르게-사실 모두가 알 수도-다듬는 중이다.)  

  

2. 문제 해부식 오답정리, 그만 하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혼자 고시생 시절 추억하다가 감성에 젖었다 ㅎㅎ) 그간 수험생들에게 오답 정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 수준으로 해야 하는지, 해도 별 효과가 없는 것 같은데 무엇이 문제인지 등 다양한 질문을 받았다.


  우리가 여태 해왔던 오답 정리(틀린 문제 분석)의 문제점을 짚어보자. 그룹스터디, 양치기, 계산 연습 모두 하지 말라고 했으니 이젠 하다 하다 오답정리도 하지 말라고 말하나 싶을 텐데, 오답 정리 자체가 필요 없다는 게 아니다. PSAT은 지식을 평가하는 시험이 아니기에 오답정리 방식 또한 달라야 한다는 이야기다. PSAT 훈련 과정에서 오답 정리는 반드시 필요하고 중요하다. 그렇지만 문제의 내용을 한줄한줄 뜯어보면서, 해설지에 적힌 출제자의 설명을 보면서 문제를 분석하는 그런 오답정리(나는 이를 '문제 해부식' 오답정리라고 부른다)가 필요하다는 건 아니다. 

잘못된 오답정리(문제 해부식)의 예시, 이보다 훨-씬 자세히 분석하는 수험생도 많다


  우리는 구구단을 외던 시절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시험을 치러왔다. 시험 과목이나 문제의 형태에 관계없이 우린 문제를 풀고 채점하고 분석하는 과정을 반복하여 성적을 높여왔다.

  고등학교 때 공부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자. 우린 틀린 문제의 내용을 분석하고, 선지 하나하나 뜯어보고, 해설지를 보며 어떻게 풀었어야 하는지, 각 선지가 왜 맞고 틀렸는지를 빼곡히 정리했다. 문제집에 그대로 정리하기도 하고, 풀과 가위로 예쁜 오답 노트를 만들기도 했다. (누구나 거창한 꿈을 품고 오답 노트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만들었던 수많은 미완작은 어디로 갔을까) 오답노트를 노트 한 권이 다 채워질 정도로 완성해본 적은 없지만, 적어도 (문제 해부식) 오답 정리는 우리를 배신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PSAT은 다른 시험들과는 달라서, 문제 해부식 오답정리로는 도통 효과를 보기 어렵다.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오답 정리를 열심히 하는데도 성적이 오르지 않아 무척 당황했을 것이다. (분명히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노력해도 점수가 오르지 않아 좌절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좌절하지 말자. 이전에도 말했지만 잘못된 것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의 공부법이었을 뿐이다. 문제 해부식 오답정리가 PSAT에는 적합하지 않았을 뿐이다. 마치 해열제가 배탈에는 효과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PSAT은 대체 왜 문제 해부식 오답정리로 정복할 수 없는 것일까? 그 이유는 역시나, PSAT이 지식을 평가하는 시험이 아니라는 데 있다.

  다른 시험에서는 만병통치약 같은 효과를 보이던 문제 해부식 오답정리가 유독 PSAT에서는 실수를 줄여주지도 못할뿐더러, 기출문제를 완전히 외워버리는 부작용을 낳기까지 한다.

  기출문제를 외워버리는 부작용부터 이야기해 보자. PSAT 고득점을 위해서는 집중력과 선구안, 그리고 군더더기 없는 효율적인 풀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이러한 능력을 갖추려면 '낯선 기출문제'를 활용한 훈련이 수반되어야 한다. 기출문제와 낯선 사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간관계와 마찬가지로 너무 자주 마주하면 안 되는데, 문제 해부식 오답정리를 하면 문제의 지문과 보기, 선지 하나하나를 뜯어보는 과정에서 문제와 절친이 된다. (사람으로 치면 MBTI를 분석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PSAT은 동일한 내용(소재)의 문제가 두 번 다시 출제되지 않기 때문에 내용 분석이 무의미하다. (실제 출제 검토 과정에서는 과거 기출문제 및 시중 모의고사와 겹치는 문제가 없도록 필터링하는 작업을 거친다) 대신 기출문제에 익숙해지면서 훈련용으로 사용할 기회마저 상실해버리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나는 문제를 외우지 않으려고 1년에 기출문제를 한 바퀴만 돌렸다. 기출문제와는 헤어진 연인처럼 낯선 관계를 유지하자)

  

  다음으로, 실수를 줄여주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방금 했던 이야기를 이어서 해보자. PSAT은 동일한 내용의 문제가 다시 출제되는 일이 없다. 따라서 문제 내용을 분석해서는 성적을 올릴 수 없다. 반복되는 것은 '문제의 내용'이 아니라 '나의 실수'다. 그렇기 때문에 PSAT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문제의 내용이 아니라 나의 실수를 기록하는 오답정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문제 해부식 오답 정리를 하는 사람은 거시적 관점에서 자신의 실수를 파악하려는 노력보다, 미시적 관점에서 당장 눈앞의 문제 내용을 뜯어내기에 바쁘다.


  대체 파리와 서울의 시차가 몇 시간인지, 그 분수 비교의 결과가 무엇인지가 뭐가 중요한가? 우리는 우리의 실수를 통해 앞으로의 실수를 방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푼 문제의 내용은 하등 중요하지 않다. 내 실수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보편화해나가는 오답 정리가 필요할 뿐이다.


  오늘은 문제 해부식 오답정리의 무용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음 글에서 PSAT에 맞는 올바른 오답정리 방법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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