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막지한 계산연습 이제 제발 그만 하자
잘못된 공부법 그 첫 번째. 바로 계산 연습이다. 내가 과외할 때도 제발 그만하라고 애원했던 바로 그것이다. 수험생들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초딩때나 하던) 계산 연습을 무한히 반복한다..
요즘은 대학 도서관이나 고시촌 독서실, 카페 등지에서 두꺼운 책 속 빼곡히 들어찬 계산 문제를 열심히 푸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자세히 보지 않아도 PSAT 자료해석과 상황판단에 대비하기 위한 계산 연습임을 알 수 있다.
잘못된 PSAT 공부법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 맹목적인 계산 연습이다. 여기서 말하는 계산 연습이란, '사칙연산 수식을 손으로 직접 계산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계산 연습은 PSAT이 도입된 이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진 공부법이고, 위와 같이 단행본이 나올 정도가 되었다. (저 책들 때문에 브런치를 안 쓸 수가 없네)
사람들은 수백, 수천 문제를 풀면서 계산속도의 향상과 점수 상승을 기대한다. 이런 공부법을 지도하는 강사와, 문제를 양산해내는 학원이 제시하는 목표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이는 기본적인 사칙연산(+,-, ×, ÷)에 서투른 극소수(구구단 못 외우면 계산 연습부터) 외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방법이다. 계산문제를 많이 풀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물론 "아예 안 푸는 것보단 낫잖아, 계산 문제 접하다 보면 조금이라도 익숙해지고 긴장도 덜하게 될 것 같은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맞는 얘기다(응?). 다만 효과는 미미한데 비해 부작용은 극심하다.
계산 연습을 하면 계산이 반드시 필요한 문제 (전체의 30% 이내)에선 자신감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문제들은 보통 계산이 그렇게까지 복잡하지 않고, 어차피 계산 연습 죽도록 해봐야 남들보다 그렇게 빨리 푸는 것도 아니다. (반드시 계산이 필요한 문제에 대한 해법은 뒤에서 제시한다. 손으로 계산해선 결코 남들보다 빠를 수 없다, 답은 머리에 있다) 대신 부작용은, ①계산 안 해도 되는 문제까지 계산함으로 인한 시간낭비 ②불필요한 공부시간 증가(2차 공부는 언제 해), ③불필요한 체력소모 ④빨리 풀어야 한다는 강박이 주는 불안감 등이다. 우리에겐 시험 시간도 한정되어 있지만 시험을 준비할 시간도 한정되어 있다. 한정된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훌륭한 공무원인 것처럼, 한정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훌륭한 공무원이 될 자격도 생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PSAT은 '계산력'을 요구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실제 업무 상황에서도 복잡한 계산을 손으로 직접 할 일은 절대 결코 없기 때문이다. (계산 연습하면서도 "이 딴 거 왜 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거 다 안다, PSAT은 죄가 없다 학원들이 중범죄를 저질렀을 뿐) 사무실 내 책상 위에도 쌀집 계산기가 있다. 2005년 도입된 이래로 PSAT은 (과목명에서 드러나듯) 자료에 대한 정확한 해석 능력과 상황에 대한 올바른 판단력을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새로운 데이터를 접했을 때, 대소 비교나 증가율 비교와 같은 판단을 실수 없이 해낼 수 있는지 묻는다. 헌데, 대소 비교나 증가율 비교는 굳이 엄밀한 계산 없어도 판단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왜 많은 수험생들은 계산 연습이 그리 중요치 않다는 사실을 여태껏 깨닫지 못한 것일까? 이건 다 학원 잘못인데, PSAT 출제경향도 파악하지 못한 채 만든 수준 낮은 모의고사 때문이다. 매년 학원 강사들은 PSAT 모의고사를 만들어 수험생들을 상대로 판매한다. 요즘은 고사장까지 대관해서 실제 시험과 유사한 환경을 제공한다. 그렇지만 문제 수준은 너무 저급하다. 까놓고 말해서, PSAT 모의고사는 PSAT이 아니다. 모조품일 뿐이다. 정말 안 좋은 문제들은 풀수록 점수가 떨어질 수도 있어서 차라리 안 푸는 게 이득이다.
99%의 PSAT 학원 모의고사 문제는 합격생이나 고시생들이 알바로 만든다. (믿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사실이다. 나는 고시생 시절에 용돈벌이로 M학원의 PSAT 문제를 만든 적이 있고, 코미디 같지만 훗날 피치못할 사정으로 M학원의 모의고사를 풀 수밖에 없었을 때, 그 시험에 내가 만든 문제가 나왔다) 합격생이나 고시생들이 만드는 문제는 실제 기출문제의 겉모습만 흉내 냈을 뿐 출제경향에 대한 고민은 전혀 담겨있지 않다. 앞서 말한 것처럼 PSAT 기출문제는 하나의 조각품과 같아서, 출제경향과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한 문제를 3차례에 걸쳐 수정/보완한다. (1차 검토 : 교수 및 현직자 6명, 2차 검토 : 교수 및 현직자 6명, 최종 검토 : 교수 및 예비 사무관 24명)
나는 학원가에서 가장 문제 제작에 공을 들인다고 소문난 (실제로도 그렇다) 박준범 선생님의 상황판단 문제를 1년간 제작했다. 그 당시에도 문제를 만들어가면, 선생님과 다른 출제자(예비 사무관)들이 함께 모여 4명이서 한 문제씩 수정 보완했다. 실제 출제 과정과 매우 유사하게 진행되는 과정이어서 문제의 수준이 높았으나, 이 역시 실제 기출문제만큼 품이 들어갈 수는 없으며(24명을 어디서 모아) 무엇보다 전체를 관통하는 '출제 원리'와 '경향'이 없다.
* 실제 PSAT 출제위원에게는 출제원리와 경향이 정리된 책자가 밀봉된 채 기밀문서로 제공된다. 그 책에 따라 출제원리를 준수하며 문제를 만든다.
아무튼, PSAT은 무지막지한 계산이 필요한 시험이 아니다. 수학을 잘해야 잘하는 것도 아니다. 차라리 언어 능력이 중요하다. 물론 이렇게 말해도 믿기 어려운 게 당연하다. 몇 년 전 내게도 PSAT을 '공부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상하게 자료해석은 계산 연습을 할수록 점수가 떨어지고 자신감도 떨어졌다. 시간은 부족했고 계산은 아무리 해도 도통 빨라지지 않았다. 그때 행시사랑 게시판에서 자료해석을 100점 맞았다는 사람의 조언 글을 보았다.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자료해석, 계산 없이 풀어보세요. 사실 계산 안 해도 풀 수 있는 문제가 대부분입니다"
PSAT 점수 정체기였던 나는 반신반의하며 실천해보았고 결과는 엄청났다.
많은 수험생들은 눈앞의 문제가 정확한 계산으로 풀어야 하는 문제인지, 어림산 만으로도 풀 수 있는 것인지 구분할 여유도 없이 맹목적으로 계산하기 바쁘다. 나도 그랬다. (나는 남들보다 손을 두배로 빠르게 움직이겠어-! 초시생 무렵 내가 했던 결심이기도 하다) 더 이상 맹목적으로 공부해선 안된다. 어림산이나 눈대중으로도 맞출 수 있는 문제에서 시간을 허비해선 안된다. 한 문제에서 5초만 낭비해도 40문제면 200초, 무려 3분 20초의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이는 곧 1.5문제만큼을 못 풀게 됨을 의미한다. (40문제 기준 총점 4점, 25문제 기준 무려 6점..!)
자료해석 기출문제를 최대한 손 계산 없이 풀어보려 노력해보자. 시간은 재지 않아도 좋다. 정말 암산 또는 어림산 만으로 풀어보려 노력해보자. 놀랍게도 대부분의 문제에서 정확한 값을 도출하지 않아도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해보기 전에는 보이지 않는다. 정확한 값을 도출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에서 정확한 값을 도출하려 계산을 반복하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해지고, 점수가 떨어지는 것이다.
계산 연습 책은 덮어두고(버려..!), 기출문제를 다시 보자. 계산을 최소화해서 자료해석 기출문제 20문제만 풀어보자. 새로운 세상이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