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주산학원 좀 다닐걸
학원가에서 십수년간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계산 연습에 대해 비판하고 나니(금단의 영역을 건드렸나), 여기저기서 수험생들의 질문과 함께 대안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림산에 대해 구구절절 이야기를 풀어 놓은 만큼 기세를 몰아 암산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금쪽같은 토요일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소소한 TMI 풀어놓자면, 지금은 서울에 왔지만 내일은 세종시로 돌아가야 한다.
어림산으로 대부분의 자료해석 문제를 풀어낼 수 있다고 했으나, 여전히 자료해석의 계산 문제와 상황판단의 퀴즈(둘의 공통점은 '정확한 값'을 도출해야 한다는 것이다)들은 골칫거리로 남는다. 바로 이 때 필요한 것이 암산 능력이다.
그런데, 대체 계산 문제에서조차 손계산이 아닌 암산을 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더 빨리 풀기 위해서다. '무슨 소리야 암산보다 손으로 하는게 빠르지!'라는 생각이 든다면 아직 암산 훈련을 해보지 않아서 그렇다. 우리의 머리는 우리 생각보다 좋아서, 손으로 계산하는 속도 이상으로 연산을 처리할 능력을 갖고 있다. 다만 손으로 계산하는 경우, 머리를 굴릴 필요가 없으니 제 속도가 발휘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아래에서 암산을 쉽게 하는 방법을 설명할 것이고, 속도는 훈련을 거듭할수록 자연스럽게 빨라질 것이다. 사실 말로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없다. 스스로 훈련하지 않으면 늘지 않으므로 성실히 훈련해야 한다. (이 글 맨 아래에 아침마다 실천할 수 있는 기똥찬 훈련법을 적어두었다)
PSAT에서는 복잡한 계산 문제가 잘 나오지 않는데, 실제로 아주 정확한 값을 도출해야 하는 경우라도 대부분 두 자릿 수 곱셈을 벗어나지 않는다. 대체 어느 난이도까지 암산으로 풀라는 이야기냐고 묻는다면, 두자릿수×두자릿수 또는 세자릿수×한자릿수 곱셈 까지다. 그 이상을 요구하는 문제라면 암산으로도 대응이 어려워지는데, 우선 풀지 않고 나중에 다른 문제 다 풀고 남는 시간에 손을 써서 푸는 전략을 택해야 한다.
우리가 암산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한데, ①머릿속에 어떻게 연산 과정을 그려내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기 때문이고, ②나눗셈이 어려워서이다. 그리고 암산을 쉽게 하는 비결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사칙연산법인 곱셈, 그 중에서도 구구단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손으로 계산할 때 왼쪽의 연산법을 활용한다. (아마 정식 명칭이 있을테지만-문송합니다-알지 못하는 관계로 세로 연산법이라고 칭하기로 하자) 세로 연산법은 손으로 계산할 때는 더할 나위없이 효율적이나, 머릿속으로 세로 연산을 진행하게 되면 놀랍게도 연산이 도리어 어려워 진다. 그 이유는 세로 연산법은 계산의 중간에 도출되는 값들을 (머리가 기억하는 대신) 손으로 적어 내는, 즉 손 계산에 특화된 연산법이기 때문이다. 암산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머릿속으로 세로 연산을 진행한다는 특징이 있는데, 암산에는 특화된 연산법이 따로 존재한다.
그게 뭘까? 바로 구구단이다. 우리는 초등학교 2학년 어쩌면 그보다 더 어릴때 무려 문방구의 불량식품 맛을 알기도 전에 구구단을 외웠다. 암산에 아무리 자신없어하는 사람이라도 1단부터 9단까지 구구단만큼은 완벽하게 왼다. 암산을 빠르게 하기 위해서는 모든 계산식을 구구단과 덧뺄셈으로 해체하면 된다. 산식이 구구단 형태로 해체되는 순간, 우리 머리는 놀랍도록 빠르게 값을 도출해낸다. 아래의 예시를 보자.
두 개의 산식 ① 37 × 7 과 ② 665 ÷ 7 이 있다. 이를 세로연산법과 암산법으로 풀면 각각 다음과 같다.
암산법의 원칙은 아래와 같다.
①나눗셈은 곱셈으로, 곱셈은 덧뺄셈으로 바꿀수록 쉽다.
②큰 자릿수를 먼저 계산하고, 작은 자릿수를 나중에 계산한다.
③핵심은 구구단, 구구단으로 값을 도출한 뒤 덧뺄셈으로 마무리한다.
위 원칙에 따라 암산과정을 들여다보자.
37×7은 너무 복잡하니, (40 × 7) - (3 × 7) 로 해체한다. 이 순간 사칠이십팔, 삼칠이십일이 생각나면서 이 산식은 순식간에 (280 - 21) 로 변한다. 여기서 부터는 쉽다. 280 - 21을 한 번에 하거나, 뺄셈에 익숙하지 않다면 280 - 20 - 1 로 다시 해체해서 계산해도 된다.
다음으로 665 ÷ 7 은 더 복잡하다. 나눗셈은 곱셈으로 바꾸는 순간 난이도가 확 낮아진다. 거꾸로 뒤집어 생각해보자 7에 몇을 곱해야 665가 나올까? 어려울 것 없다. 구구단을 통해 가장 가까운 값을 찾으면 된다. 여기서 칠구육십삼 또는 (7 × 10)을 생각해내면 된다. 세자릿수라고 해도 결국 두자릿수 뒤에 0이 하나 더 붙은 것 뿐이라서, 칠구육십삼이면 7 × 90 = 630 이라는 사실도 즉시 알 수 있다. 이렇게 665와 가까운 값을 찾은 후, 남은 차이를 다시 구구단을 활용해 채우면 된다. 칠오삼십오
우리에게 암산을 할 수 있는 재료는 다 갖춰져있다. 다만 한 번도 조립해본 적이 없어서, 재료를 조합했을 때 어떤 능력이 발휘되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구구단을 욀 수 있다면 PSAT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계산은 암산으로 모두 해결이 가능하다. 다만 이는 철저한 훈련 과정이 수반되어야 익숙해진다.
실생활에서 매일 훈련할 수 있는 엄청나게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요즘 스마트폰 알람 어플을 보면 알람소리를 끄기 위해서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하는 어플들이 있다. (나는 ㅇㄹㅁ라는 어플을 지금도 잘 쓰고 있다 ^^) 여기서 두 자릿 수 곱셈 정도로 문제 난이도를 설정하고 3~5문제 정도 풀어야 알람이 꺼지게 해두면 아침마다 암산을 할 수밖에 없다. (내가 암산법에 대해 나름의 노하우를 갖게된 것도 사실 알람 때문이었다. 알람은 얼른 꺼야겠는데 침대에는 펜도 노트도 없다보니 자연스럽게 암산을 잘하게 되었다는 웃픈 스토리) 이 방법은 진짜 강력히 추천한다. 암산은 침대에서(?) 훈련하자
글을 마치기 전에 한 가지 할 이야기가 있다. PSAT에는 풀지 말아야 할 문제가 있다. 우리가 여태 준비했던 대부분의 시험은 100점을 목표로 하는 시험이었지만 PSAT은 다르다. PSAT은 100점이 아니라 85점이 목표다. 과목마다 몇 문제 쯤은 틀려도 된다(7급의 경우 3~4문제, 5급의 경우 6문제, 평균 85점 기준). 이는 다시 말하면 몇 문제는 버리고 가는게 현명하다는 말이다. 이 이야기는 뒤에서도 따로 주제를 잡아 다시 강조할 예정인데, PSAT 고득점을 위해서는 어떤 문제를 버리고 갈 것인지에 대한 '선구안'이 필요하다.
어림산과 암산 이 모든 방법은 '풀 문제'에 적용하는 훈련법이다. 어떤 문제가 어림산도, 암산으로도 해결되지 않고 너무 복잡한 계산이 필요해서 손을 써야 한다면 버려야 할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버리지 않더라도 최소한 푸는 순서를 맨 나중으로 미뤄, 우선 마지막 문제까지 한 차례 본 다음에 남은 시간에 다시 보는게 좋다. 혹여라도 이런 (극단이상값의 난이도를 가진) 어려운 문제들을 보면서 '역시 손 계산은 필요해!'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건 먹지 않고 뱉어야 하는 문제다. 우린 상위 15% 고난도 문제를 맞추기 위해 PSAT 훈련을 하는게 아니다. 85%의 정상적인 문제를 맞추기 위해 훈련하는 것임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