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이 거세당한 지금, 2016년의 글을 핑계 삼아 올려본다
2016년에 군대에서 한강 작가님의 책을 읽었다.
그때 느낀 건 이 작가는 있는 그대로의 인간의 본능을 탐사하고 있구나. 그것도 부정하고자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그런 본능에 대해서. 그리고 그 본능을 억누른 사람은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되는지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도망치지 않고 탐사 중이구나.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의 주인공인 영혜의 언니이자 5월의 신부의 아내인 인혜(향기 없이 남은 자)가 강렬하게 남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나는 본능을 억누르지 않아야지..’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옛날의 글을 보니 과거가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그렇지만 현재는 내 본능이란 게 많이 남아있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몇 가지만 남겨두고 거세한 느낌. 그래서 이 묵혀놨던 글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 같다.
1. 난 고기가 싫어!(난 고기가 좋아...), <채식주의자>
영혜는 밤마다 자신을 괴롭히는 고깃덩어리 때문에 채식주의자가 된다. 따라서 그녀가 채식주의자가 된 동기는 아름다운 몸매나 지구의 건강과 같은 방향성을 지닌 것이 아니라 부정(negative)에서 나온다. 고깃덩어리가 싫다는. 하지만 그녀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갈비를 잘 뜯었고, 능숙하게 고기를 해체할 줄 알던 그녀다. 결국 고기가 싫다는 말은 그녀 아버지가 자신을 물은 개를 오토바이에 묶여 죽인 트라우마의 발현이다. 또 얌전한 그녀를 사정없이 손찌검한 그녀의 아버지에 대한. 그런 일련의 트라우마는 그녀가 비단 고기만이 아니라 뾰족한 모든 것을 싫어하게 만든다.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라는 그녀의 말은 이를 반증한다.
하지만 단편 <채식주의자>의 끝에 그녀가 참새를 이빨로 물어뜯는 장면은 도대체 뭘까? 추측컨대 그녀에겐 육식에 대한 일련의 강력한 욕망, 나아가 살인에 대한 욕망이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렇게 강력한 욕망이 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자신의 트라우마와 상충하기에 그녀는 소망 충족의 공간인 꿈에서 고깃덩어리와 피를 만나고 누군가를 죽이게 된다. 억압된 욕망이 꿈속에서라도 충족되는 것이다. 그녀의 고기에 대한 강한 적의는 실은 어린아이가 좋아하는 아이에게 짓궂은 장난을 거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닐까.
2. 카인이 된다는 건, <몽고반점>
어두운 색채로 사회의 이면을 드러내던 5월의 신부는 어른이 되어서도 몽고반점이 있다는 처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걷잡을 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화려한 꽃으로 피어난 사람들 간의 접합(섹스)을 통해 생명의 근원에 도달하려는 그의 욕망의 대상은 처제와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 그 어떤 사람도 그것을 대체할 순 없다. 하지만 욕망을 실현하게 되면 윤리가 그은 선을 넘을 수밖에. 그렇게 도덕률을 넘어선 5월의 신부는 저주받은 카인이 된다. 지금껏 쌓아온 예술가로서의 커리어, 아내, 심지어 자신이 창조한 생명인 아들까지 잃게 된다.
결국 카인이 된다는 건, 금지된 욕망을 실현한다는 건, 혼자가 됨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렇게 혼자가 될 것을 알면서도 금단의 영역에 들어서는 카인들을 우리는 아내처럼 “나쁜 새끼”라고만 평가해야 할까?
어찌 보면 그들처럼 자기 안의 욕망에 충실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시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단 한순간이라도 내 존재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면. 그런 기회에 앞뒤 안 가릴 용기가 있다면. 불타올라 재로 변하는 순간까지도 불꽃을 향해 날아오르는 불나방처럼.
3. 향기 없이 남은 자, <나무불꽃>
“향기가 나지 않는 여자의 뒤는 쫓지 않아”란 말이 있다. 그리고 여기, 향기 없는 여자가 덩그러니 남았다. 바로 영혜의 언니이자 카인이 된 5월의 신부의 아내. 그녀는 일련의 ‘보편적’ 특성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존재이다. 인혜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고 영혜의 언니, 예술가의 아내, 가부장적인 집안의 맏딸, 지우의 엄마... 언니로서 해야 할 일, 예술가의 아내로서 할 일, 폭력적인 아버지를 둔 맏딸로서 해야 할 일, 엄마로서 해야 할 일. 그렇게 보편적으로 어떤 역할이 갖는 기대치를 수행하다 보니 인혜는 사라진다. 그렇게 그녀는 향기 없는 여자가.
왜 그녀는 그렇게 해야 할 일만을 해치우며 살게 되었을까? 그건 생존하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폭력적인 아버지의 손찌검을 피하고 싶었고, 안락한 삶을 살고 싶었기에. 영혜나 자신의 남편과 달리 어떤 강렬한 불꽃에 자신을 내던질 수 없어서. 그래서 아무것도 죽일 수 없는 식물이 되기 위해 죽으려 하는 영혜를, 예술적 욕망에 이끌려 처제를 범한 남편을 이해할 수는 없으리라.
해서 먹구름장을 향해 날아오르는 솔개에게 항의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무 불꽃이 되어 타오르는 나무들에게도 항의하고 싶었을 것이다. 너희들이 파멸하는 걸 왜 하필 내가 지켜보고, 견뎌내야 하냐고. 이미 너희들의 언니이자 남편으로만 존재할 수밖에 없는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는 거냐고.
#영화 <벌새>와의 연결지점
나무불꽃의 주인공 인혜는 영화 <벌새>의 가장 보통의 존재로 표상되는 은희와 한편으로 닮아 있습니다. 한국이란 사회가 남긴 일련의 가부장적 질서의 희생양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벌새>의 은희와 달리 관점을 바꾸지 못한 채로 한국 특유의 '한'의 정서를 끌어안고 살아가야 할 인혜는 무서울 정도로 현실을 직면하는 한강 작가의 의지가 만든 캐릭터로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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