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과 개구리

by 북극성 문학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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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과 개구리

“안녕- 안녕- 안녕-” 까만 밤, 차를 타고 논밭을 지나다가 소리를 들었어. 아빠는 차 시동을 잠시 끄고 멀리서 또렷이 들리는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게 해줬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흐릿하게 별도 보이는 봄밤이야.


개굴개굴 소리를 듣고 있으면 긴장했던 마음이 노곤해져. 개굴개굴개굴 외치고 있지만 “안녕- 안녕- 안녕-”. 너희가 꼭 우리에게 인사하는 것만 같아. 시골집을 다녀오고 집에 오는 차 안에선 늘 시큰한 기분이 들곤 했는데. 할머니가 무릎이 시큰해, 할 때 사용하던 단어처럼. 덕분에 기분이 좀 나아졌어.


일요일 주말 예능이 끝난 저녁, 아빠랑 늦도록 축구공 차다가 완전히 깜깜해진 밤, 갑자기 날씨가 달라졌음을 바람으로 문득 아는 아침, 주말에 학교에 가져갈 교과서를 챙길 때, 오늘처럼 할머니 얼굴 보고 집에 돌아올 때. 그런 순간엔 마음이 콕콕 아프고 시려. 즐거운 오늘이 끝났고 이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내일을 마주해야만 해. 내일도 오늘과 같이 멋진 하루를 보낼 수도 있을 텐데, 언제나 막막하게 무섭고 두려워.


온통 깜깜한 논두렁은 막막한 내일과 닮았어. 만약 너희가 별처럼 반짝반짝 빛이 난다면 어떤 모습일까. 손가락으로 하나씩 세도 10개 남짓 보이는 별들보다 훨씬 더 많이 보이겠지? 울음주머니가 부풀 때마다 미끈한 너희의 피부도 빛난다면 나는 너희를 볼 수 있을 텐데. 눈을 감고 너희를 상상해. 촉촉한 진흙 아래에서 몇백 마리가 웅크리고 있겠지. 어떤 밤하늘보다 아름다울 것 같아. 온통 까만 어둠이 밝은 노랫소리로 가득 차서 든든해.


어른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봄이야. 분홍 꽃무늬가 그려진 티셔츠를 들고 할머니를 만나러 갔던 날이었지. 우리 할머니는 화사한 옷을 좋아해. 개나리처럼 노랑, 진달래처럼 분홍색을 특히 좋아해. 어릴 적 할머니는 옷 가게를 하셨대. 그래서 옷에 엄청 까다로우셔. 입고 싶은 옷을 입어야 직성이 풀리고, 단이나 폭에도 예민하게 반응하셔. 엄마는 재봉틀로 할머니가 손으로 짚어준 정도에 딱 맞게 옷을 수선했어.


할머니는 나를 보고 환하게 웃어주셨지만 잠깐뿐이었어. 어떤 날엔 무표정의 할머니를 보는데, 오늘은 할머니가 나를 보고 웃었으니 그걸로도 기분이 좋아. 다른 어른들과 다르게 할머니는 내가 학교에서 공부는 잘하는지, 나중에 뭐가 되고 싶은지 묻지 않아. 곁에 있으면 부담스럽지 않고 마음이 편해.


우리 할머니는 언제나 봄에서 살아가고 있어. 여름과 가을 겨울로 변화하는 계절을 따라가는 게 힘드신 가봐. 할머니 귀에는 사계절 내내 언제나 개구리 소리가 들린대. 개굴개굴개굴. 내 귀에는 “안녕- 안녕- 안녕” 하며 다정하게 들리던 개구리 소리가 할머니 귀에는 그렇게 들리지 않고, 더 무섭게 들리나 봐. 잘은 모르겠지만 나도 할머니의 귀에 들릴 소리를 상상해보곤 해. “도망가- 도망가- 도망가”라든가, “끝났어- 끝났어- 끝났어-”라든가 그런 소리.


나의 상상은 이 정도에서 그치지만, 할머니 귀에는 더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소리가 24시간 내내 들려서 언제나 괴로우시대. 가끔 할머니가 반복적으로 내뱉는 말을 들으며 나쁜 개구리의 형체를 유추해. 울음주머니엔 마음을 콕콕 아프게 만드는 독이 있고, 논두렁에 어렵게 심어둔 벼 모종도 다 시들게 만들지. 할머니의 마음이 편해지고 고요해지면 얼마나 좋을까. 개구리 소리를 다정하게 듣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나쁜 소리 하나 듣지 않길 바라게 돼.


할머니의 귀에만 들리는 개구리 소리가 현실에도 보인다고 상상해봐. 나쁜 말을 담고 있는 울음주머니가 부풀 때마다 그 피부가 빛난다면, 나는 몇백 개의 울음소리를 다 쫓아낼 거야. 진흙 아래 숨어 있는 소리의 시작점을 찾아내서 일일이 할머니의 논두렁에서 그만 나가 달라고 소리치고 싶어. 반짝반짝 빛나는 논두렁이 형체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워져서 무서움이 밀려올지라도, 할머니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가짜 개구리들이 있을 바에는 아무것도 없는 게 나아.


개구리도 맹꽁이도 하루살이도 소금쟁이도, 하물며 거머리도 논밭에 없으면 안 되는 존재지만, 또렷하게 들리지 않고 원래 존재하는 게 아니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 우리 할머니도 그렇게 생각하면 좋을 텐데. 할머니의 논두렁에 가짜 개구리들을 불러서 끝없이 반복되는 봄의 노래를 부르게 한 것은 할머니였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슬프기만 해.


잘 알지 못하지만 고요한 어둠을 꾹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두렵고 무서운 일이 있었겠지. 어른인 할머니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 말이야. 내가 내일을 두려워하는 것보다 더 큰 두려움. 그걸 견딜 수 없어서 가짜 개구리를 하나둘씩 불렀을 할머니를 볼 때면 그냥 말없이 안아주고 싶어.


나는 개구리 소리를 좋아해. 개구리 소리를 듣는 봄밤을 사랑하지. 시끌시끌 재잘거리는 봄의 어느 한날을 보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어둠은 무섭고 두려워. 그런 와중에 나에겐 평온하게만 들리는 이 소리가 갑자기 무섭게 들린다면.


차 문을 열고, 논두렁 위에서 내가 소리친다고 해도 수백 마리의 개구리 소리를 멈출 수는 없어. 어둠 속에선 개구리의 미끈덩한 피부도 보이지 않고, 어디에 웅크리고 있는지 알 수도 없기 때문이야. 어쩌면 할머니도 매우 컴컴할 때 만든 개구리를 하나씩 찾는 중일지도 몰라. 그 개구리를 조심스럽게 손에 올려두고 토닥거리면서 다독여줘. 이건 진짜가 아니야 되뇌면 마법처럼 사라지는 거지.


논밭을 헤매느라 손바닥이 흙탕물로 인해 더러워지고 발목까지 진흙이 차도 뭐 어때. 봄은 원래 그런 계절인데! 모종 심다가 거머리도 들러붙고 발 헛디뎌서 넘어져도 찐득한 논두렁에선 안전해. 할머니가 개구리 잡는 어느 봄날도 그럴 거야. 나는 개구리가 보이지 않아서 할머니를 돕진 못해. 그래도 같이 논두렁에 들어가서 재미난 시간을 보낼 수는 있어.


한 마리까지 다 잡고 놓아주면 여름도 성큼 올 수 있어. 분홍 꽃무늬 티셔츠를 몸에 딱 맞게 입은 할머니와 여름 나들이를 떠날 거야. 엄청 시원한 얼음 아이스크림 씹어 먹고, 할머니 최애 간식 맛동산도 몇 개 챙기고. 수박의 시원함과 복숭아의 달콤함을 나눠 먹으며 끝없는 봄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개구리 소리로부터 벗어나서.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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