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 집어삼키다

by 북극성 문학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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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집어삼키다 - 날다의 편지


보나야.

나 날다야. 우리 춘천 여행 다녀온 이후로 오랜만에 연락하네. 연휴 끝나고 정신없이 회사 다니고 할 일 하다 보니 어느덧 여름 편지 마감일이 온 거야. 이번에 너 공연도 꼭 보고 싶었는데 사정상 못 봐서 아쉬워. 연휴에 일이 많아서인지 감기에 걸려서 오늘은 온종일 집에만 있었어. 환절기인 만큼 너도 건강 관리 유의하기를 바라.


우리의 창작편지도 오늘까지 보내면 어느새 한 편만을 남겨두고 있네. 모과 쌍화차 따듯하게 마시면서 여름과 집어삼키다는 어떻게 쓰면 좋을지 생각하고 있었어. 밍숭맹숭한 글 말고, 따듯하고 일상적인 글 말고, 그냥 마냥 매력적인 글을 쓰고 싶다. 그런 생각을 했어. 나다운 글 말고, 내가 늘 쓰는 글 말고.


이런 마음이 불쑥 드는 날은 나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시기더라. 내가 너무 ’문학소녀‘를 못 벗어나고, 글과 이야기를 낭만적으로만 생각하고, 성과나 능력과는 상관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고 어깃장을 놓고 있는 게 아닐까.


<제철 편지>로 독자를 모으고, 주마다 혼자서 디자인, 편집, 메일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고민하는 일이 기쁨과 보람이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할 수 있는 일은 맞지만 오늘은 좀 쭈글쭈글 마음이 쪼그라들었어. 컨디션의 문제도 있겠지. 그래도 이번에 너에게 편지를 보내기 위해 글을 쓰려고 앉아 있는 이 시간이 소중해.


여름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계절. 뜨겁고 따갑고 숨 막히고 동시에 눅눅하며 옥죄는 계절. 사시사철 여름의 마음으로만 사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은 어떤 마음일까를 상상해 봤어. 우리 춘천 갔을 때 버스에서 소리 지르던 할머니 기억하지? 그분이 글을 쓰면서 떠오르더라.

아주 얄팍한 상상으로만 쓰는 글이지만, 나는 앞으로도 내가 아닌 누군가의 마음을 상상하고, 그 마음에 말도 걸어보면서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 그간 내 이야기는 실컷 일기장과 한글 파일에 써온 것 같아.


이 말마저도 너무 철없는 이야기일까. 더 쪼글쪼글해지기 전에 이만 글을 줄일게. 너의 이번 여름 노래도 기대하고 있을게. 안녕.


여름과 집어삼키다


어휴, 열불 나. 아주 그냥 열불 난다고. 장바구니 안에 넣었던 부채를 다시 꺼내어 들고 연신 부채질을 해도 소용없다. 빨리 겨울이나 와 버렸으면 좋겠어. 부채로도, 선풍기로도 좀처럼 가시지 않는 이 더위가 지긋지긋하다. 삶이 지긋지긋해. 푹푹 찌는 계절에서 한번도 벗어난 적이 없던 것처럼, 매번 숨이 턱턱 차오른다.


나는 지금 돌멩이를 찾는 중이다. 보자기에 넣고 다니던 귀한 내 돌멩이. 애지중지하며 호주머니에 넣어두었는데, 돌멩이에 발이 달렸나 주머니 안엔 보자기만 있고 돌멩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집 근처 하천에서 처음 그 돌멩이를 발견했다. 장마로 인해 하천에 물이 범람했고 그 탓에 하천 주변 운동길은 곳곳에 흙더미.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거슬렸다. 오토바이처럼 빠른 전동 스쿠터를 운동길에서 타는 사람이나, 정신 시끄럽게 통통거리며 농구하는 학생들이나, 삼삼오오 모여서 빵빵거리며 자전거 타는 쫄바지 입은 사람들이나. 다 갈기갈기 찢어 놓을 것처럼 매섭게 비를 내릴 땐 언제고, 이번엔 타 죽이겠다고 마음이라도 먹은 듯 내리쬐는 햇볕. 사람도 싫고 요망한 날씨도 싫었다.


울컥울컥 마음이 요동쳤고, 바싹 마른 흙들 사이로 보이는 돌멩이들에 괜히 발길질 한 번씩 해주며 길을 걸었다. 눈에 거슬리는 것들은 다 치워버리고 싶었다.


손가락에는 옥색의 굵은 반지를 끼고, 귀걸이는 금색, 목에도 빛나는 금색으로 체인 목걸이를 걸었다. 아들이 보낸 용돈을 모아서 산 귀금속이다. 나이가 들수록 화려하게 다녀야 아무도 무시하지 않고, 깔보지 않는 법이다. 밖을 나선 지 30분도 안 지났는데 목걸이 부근에 땀이 차서 답답해 죽겠지만 여기서 목걸이를 뺄 수는 없어 목에 부채질만 연신 하며 길을 걷던 중 그 푸른색 돌을 발견한 것이다.


푸른색 돌은 손가락에 낀 옥처럼 반질반질했다. 한 번도 모난 적 없던 것처럼. 더위로 말라 부스러진 흙을 손가락으로 훑어내고, 돌멩이를 집어서 호주머니에 넣었다. 돌멩이를 만지자 덥고 습하고 지랄났던 마음에 찬물을 누가 훅 쏟은 것처럼 돌멩이를 가져다 댄 손이 시원해졌다. 이 여름에 삼켜지기 직전에 요상한 돌멩이를 발견했다.


그날부터 이 돌멩이는 나와 함께 어디든지 함께였다.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다며 화를 내던 버스 기사가 떠올라 새벽에 갑자기 불끈불끈 화가 치솟을 때 머리에 돌멩이를 가져다 대니 차가운 얼음을 가져다 댄 것처럼 진정이 됐다. 여기저기 침 찍찍 뱉는 길가 사람들에게 무어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해코지할까 두려워 속으로만 삭히고 집에 돌아왔다. 콕하고 막힌 명치 끝에 돌멩이를 가져다 대니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이 속 시원해졌다.


귀걸이도, 반지도, 목걸이도 풀어 헤쳤다. 다이아몬드도 원래 돌덩이를 깎고 깎아 만든 거라던데 이 돌멩이가 내겐 다이아몬드보다 더 귀하다. 그런데 그 돌멩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대체 어딜 간 걸까.


시장통을 오가던 중에 들렀던 모든 곳을 다 확인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다시 여름의 한가운데에 있고 싶지 않아. 찬물로 목욕하고, 얼음을 씹어대도 마음속에서 뜨겁게 불이 타오르는 것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아주 지긋지긋해. 다시 나를 집어삼키는 여름 앞에서, 나는 그 돌멩이가 아주 절실하게 필요했다.


처음 그 돌멩이를 발견한 하천가에 가면 똑같은 효능의 돌멩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해서 하천가 주변에서 흙더미를 파고 판지 벌써 일주일째다. 이 와중에 날은 또 오락가락. 비마저 쏟아진다. 잦은 소나기. 나 어릴 적만 하더라도 비가 이렇게 제멋대로 오지는 않았는데. 그래, 그냥 차라리 비를 맞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더위에 당하기보단 홀딱 젖는 편이 더 낫다.


한참 돌멩이 수사를 계속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시꺼먼 강아지가 나를 발견하고는 주춤거리며 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털은 흰색인데 여기저기서 구르다 왔는지 까만 물이 비를 타고 뚝뚝 떨어지고 있다.


찾는 돌멩이는 안 나오고 웬 비에 젖은 강아지라니. 하지만 안 데려올 재간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걸 데리고 와서 몸도 씻겨주고 드라이기로 몸을 말려줬다. 뽀얀 똥개였다. 나보다 조금 더 뜨거운 체온을 가진 강아지가 내 집에 성큼성큼 들어왔다. 나 혼자로도 더워 죽겠는데 저것까지.


돌멩이 찾다가 데리고 온 강아지니 멩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멩이, 하고 부르면 제 부른 줄은 알아서 쫄래쫄래 뛰어 들어오는 놈이다. 이부자리 피고, 선풍기 틀고 자려고 누우면 비집고 들어온다. 자꾸 치근덕거리니 더워 죽겠는데 이상하게도 털이 보드라워 그런지 불쾌하지가 않다. 나는 이렇게 얇게 입어도 더운데 저도 더울까 싶어 얼마 전엔 싹 이발도 시켜줬다.


소나기 오락가락하다가, 장마철이 왔고, 장마 끝날 때까지만 데리고 있어야지 마음먹었는데. 분명히. 돌멩이를 열심히 찾기 위해 들렀던 하천가 주변으로는. 이제는 멩이를 산책시키러 가는 단골 코스가 됐다.


아주 자주, 울컥하고 올라오던 마음속의 화가 멩이와 있으면 자꾸 가라앉는다.

혼자 버스를 탈 때 자분자분, 즐겁게 대화 나누던 사람들만 봐도 화가 막 올라왔는데. 멩이를 산책시키고 밥을 주고 예뻐해 주니 이젠 버스를 타도,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들을 봐도 큰 화가 올라오지 않는다.


희한하고 요망한 돌멩이가 어디로 갔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꽁꽁 싸맨 보자기에서 어떻게 탈출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멩이가 내게 왔으니 돌멩이를 찾으러 하천을 돌아다닐 시간이 없을 것 같다. 이것저것 챙겨줘야 할 게 많아서 바쁘다, 바빠.



보나의 답장과 음악


날다 이번에도 글 잘 읽었어!

춘천에서 우리 정말 신비롭고 무계획적이고 따스한 시간을 보냈지…

우리가 안 세월은 긴데 여행을 같이 간 적은 그리 많지 않았네,

그래서 더 기억에 남았어!


창작하는 건 내 자신을 깨는 일 같아.

글을 쓰든 음악을 만들든 그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조금씩 생채기를 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강해지고 있어. 요인은 여러가지겠지.

세상의 언어를 의식해서, 개인적인 기준에 못 미친다는 실망이 들어서… 등등…


예술은 그렇게 생긴 상처를 보여주는 일이 아닐까?

어떤 고민이 남긴 상처들 역시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이 아닐까?
쭈그러들었다는 너의 얘기를 들으면서 여러 생각이 드는구나…

창작은 원래 그런 법…

하지만 여행에서 본 날다는 모습은 너무 귀엽고 아름답고 재미있었어~

내면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내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근사해.
너의 글을 보고 노래를 만들었어.


여름은 여러모로 집어삼켜지는 계절이지.

소나기에, 장마에, 무더위에…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면 문득 가을이 와 있지.

저항할 수 없는 인과에 휩쓸려 무언가를 잃기도 얻기도 하는 우리네 인생과 비슷하네.

그런 감상을 이번 노래에 담아봤어~ 잘 들어주고, 마지막까지 열심히 해보자고!


https://www.youtube.com/watch?v=IuLlRPRkDXY&t=1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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