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과 빈틈없다

by 북극성 문학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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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과 빈틈없다 - 날다의 편지


안녕 보나,

우리 <제철 편지> 3 시작을 알리는 편지를 보내!

글 x 음악 협업 작업을 기록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너도 여기에 선뜻 응해줘서 고마워.

같은 걸 재밌어하는 것도 우리가 8년 동안 친구인 이유가 아닐까 싶어.


곧 겨울이라 겨울 소재로 글을 먼저 썼어.

겨울과 빈틈없다. 여름 한가운데 있으면 여름은 꽉 차 있고 생동감으로 넘치는 것만 같아. 그런데 겨울도 조용하지만 매서운 바람이 늘 있어서 빈틈없게 느껴지더라고.


그런 겨울처럼 빈틈없이 살아와서 삶의 공백을 무서워하는 누군가를 상상하며 글을 썼어. 하지만 나로부터 시작된 이야기. 글 안에는 나도 숨어 있겠지?


네가 이 글을 보고 어떤 음악 작업을 할지 기대가 돼.

답장 기다릴게.



겨울과 빈틈없다

가쁘게 내뱉는 숨마저 눈으로 보인다.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올라온다. 차가워진 손을 외투 주머니에 넣고 바다를 본다. 고요하지만 끝없이 파도가 친다. 멈추지 않는 소리는 안정감을 준다. 공백은 마음에 공허를 불러일으킨다. 재빨리 고개를 까닥하거나 다리를 떨며, 아니면 휘파람을 불어서, 절대로 비어 있는 시간을 만들지 않는다.


텅 빈 마음. 그건 두려워. 기차를 타고 여기까지 왔다. 평소 같으면 이럴 일이 없지. 다만 아주 먼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그렇게 멀리 어디를 향한 적 없어서 강릉에 왔다. 지난여름 친구 대여섯과 함께 왔던 해변이다. 낯설어지고 싶으면서도 낯선 곳은 두렵고 동시에 익숙한 곳에 온종일 머물러 있고 싶었다. 그래서 이 해변에 왔다.


바다를 본다. 그냥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하다. 아니다. 사실은 일렁인다. 바다가 좋은 이유는 일렁이는 마음과 편안한 마음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철썩하고 파도가 칠 때 내 마음도 허공에 잠시 떠올랐다가 철썩하는 소리에 이내 뚝 떨어진다. 혼자 바다를 보는 동안 잘게 요동치는 내 마음을 누구도 알지 못하니 마음이 편안하다. 여기서는 나도 마음의 파도를 느껴본다. 아주 잘게 부서지는 마음을.


삶은 따분하다. 동시에 빈틈없다. 내가 만든 두꺼비집은 언제나 허물어졌다. 흙 속에 묻힌 손을 살그머니 꺼낼 때 언제나 기도했다. 손을 다 꺼내도 튼튼한 집이기를. 애써 잘 꺼냈더라도 물이 들어오면 금세 형체가 사라졌다. 지하로 파고들어야 하는 두꺼비집 대신 나는 언제나 모래성을 쌓았다. 높고 높게, 적어도 위에 꽂은 깃발만이라도 꼿꼿하게 있었으면 했다. 모래성은 두꺼비집보다는 오래갔어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은 똑같았다.


마음을 따라가고 싶었다. 그런데 내 마음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다. 모든 질문에 대답을 얼버무린다. 운명이라는 말로 피해버린다. 운명이 밀려 들어오면 맞서지 않고 오히려 순응하고 싶다. 내가 직접 나를 바꿀 수 없으니 누가 나를 끌고 들어가서 큰 요동을 경험하게 해줬으면 좋겠다. 파도 앞에선 그렇게 생각하곤 한다.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냥 꽉 안아줬으면 좋겠다. 누군가 빈틈없이 안아주면 그 속에서 나는 숨을 깊게 내뱉고 싶다. 분명 하얀 입김이 우리 사이로 희미하게 보일 테다. 곧이어 시야는 뿌옇게 변하고 그렇게 되면 모자라고 허술한 모습을 모른 척할 수 있다. 내가 보기 싫은 내 모습을 감춰버리는 방법.


작열하는 태양, 그것보다 쨍한 매미 소리, 휴양을 즐기러 와 들뜬 사람들의 목소리. 진동하는 라면 냄새. 푹푹 꺼지는 모래사장. 정신없이 시끄러운 여름. 그런 여름보다 더 가득 찬 겨울. 매서운 바람이 온통 몸을 휘갈기고 있다. 나의 머리카락을 쥐고 흔든다. 쌓여 있는 하얀 눈은 공간의 여백이 아니다. 흰색 또한 가득 차면 맘 놓고 도망칠 구석도 사라지게 만든다.


빈 곳이 전혀 없는 겨울에 바다에 오니 도망치지 못하고 생각들에 사로잡힌다.




보나의 답장과 음악


날다야 너무 좋은 글이다… ❣️ 요즘 맘이 복잡했는데 너 글 읽으면서 잠깐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면서 기분이 좋아졌어 ㅋㅋㅋ 정성 들여서 노래 작업해서 보냈어!! 아름다운 글 보내줘서 고마워


처음 너의 글을 읽고 노래를 지으려고 구상할 때, 빈틈없다는 단어와 모래성을 만드는 장면이 내 안에서 연결됐어. 겨울 바다에서 퍼석한 모래로 성을 만드는 모습이 떠올랐지. 기도하는 마음을 담아 두꺼비집을 만들려고 하면 금방 무너지듯이, 이 세상은 우리에게 좀처럼 파고들 틈을 주지 않잖아?


그러나 삶이 차갑게 느껴질 때, 나는 더욱더 살아 있는 것만 같아. 영하의 온도 속에서 매서운 바람이 불고, 손끝이 터질 듯한 통증 속에서 숨을 내쉬면 입김이 눈에 보이는데, 마치 ‘이 지독하게 차갑고 빈틈없는 세상 속에서도 너는 살아 있다!‘라고 말해 주는 것만 같아.


고통은 그래서 나쁜 것만은 아니야. 추운 날씨와 칼바람이 마냥 싫기만 한 것은 아니야. 매정한 겨울 같은 세상 속에서 서로의 입김을 바라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노래를 만들었어. 우리는 모두 살아 있어. 지독하게 통렬하게 통증을 느끼면서 누구보다 뜨거운 숨을 쉬며 살아가고 있지…


https://www.youtube.com/watch?v=BAfrhALPRQo&feature=youtu.be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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