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과 벗어나다

by 북극성 문학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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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벗어나다 - 날다의 편지


보냐야, 나 날다야.


오늘은 봄과 벗어나다를 주제로 글을 써서 보내. 원래는 봄과 야무지다로 쓰려고 하다가 내가 물렁물렁한 성격이라 그런가. 야무지다는 단어로 봄을 표현하기 어려운 거야. 별수 없이 다시 사전을 펼쳐서 단어를 찾다가 벗어나다, 라는 단어를 발견했어.


사계절 중에 한 편은 너에 관한 글을 쓰고 싶었어.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네가 들려줬던 <튤립>을 생각하면서 글을 썼어. 그건 그렇고 네가 녹음해서 보내준 겨울 곡 너무 듣기 좋아. 제철 편지 독자들도 엄청나게 좋아할 것 같아. 너랑 이런 멋진 프로젝트를 같이 해서 정말 기쁘고 자랑스러워.


이번 글은 ’보나 되어보기‘로 보나 시점에서 글을 써 봤어.

열아홉에 처음 만나서 우정을 나누고,

1년에 한 번은 꼭 너한테 타로를 보며 한 해의 고민을 나누고,

네 음악을 완전 사랑하는 친구이자 팬으로 나는 여기에 있어.


내가 사랑하는 보나의 노래가 많은 사람한테 가닿기를.

네가 호호 할머니 될 때까지 활발하게 작업 활동 지속해 주길!


안녕. 너의 작업물 기다리고 있을게.


봄과 벗어나다


날다가 오랜만에 <튤립>을 듣고 싶다며 연락이 왔다. 아, 튤립이 아니라 화분으로 말했지. 그 애는 내 노래 중 그 노래가 가장 좋다고 말하면서도, 늘 제목을 달리 말한다. 누추하지만 나의 화분에서 쉬다 가줄래, 가사에 화분이 있어서 계속 헷갈리나 보다. 진짜 좋아하는 것은 맞아? 조금 의심이 들면서도 내가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면 늘 사랑에 빠진 눈빛을 정열적으로 보내온다. 저 눈빛이 가짜라면 쟨 진짜 배우를 해도 될 거야. 하지만 나는 날다가 거짓말을 잘하지 못한다는 걸 아주 잘 안다.


우린 스프링 캠프에서 만났다. 열아홉에서 스물로 넘어가는 학생들을 겨울 언저리에 모아뒀다. 스프링 캠프는 야구에서 정규 시즌 시작 전 전지훈련을 말한다는데, 어른이 되기 전에 우리도 훈련 같은 걸 했다. 어떤 마음으로 어른이 되어야 하나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 그때 그 청소년 진로 캠프에서 나는 튤립을 불렀다.


외떡잎에 백합목 백합과의 구근초. 가을에 심어 사월에 나는 꽃. 튤립은 그런 꽃이다. 실제로 튤립을 심어본 적은 없다. 좋은 곡은 어떻게 만들까, 내가 음악해도 괜찮은 사람일까. 물음표만 가득하고 바깥을 향하지 않는 그 질문들은 다시 나를 짓눌렀다. 그러던 중 한 형제 듀오의 공연을 보게 됐고 그때 갑자기 튤립을 주제로 음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이게 예술가들이 말하는 영감이란 걸까?


그렇게 완성한 노래를 캠프에서 통기타로 연주하며 불렀던 게 벌써 8년 전. 튤립은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렸다가 지워버렸다. 나에게도 소중한 곡이니 더 잘 다듬어서 음원의 형태로 내보이고 싶어서다. 친구가 듣고 싶다고 하니 약소하게나마 폰으로 녹음해서 노래를 보내줬다. 오랜만에 코드를 보고 기타로 연주해서 그런지 기타 연습만 몇 번 하고 나서야 노래를 보낼 수 있었다.


초록색의 여린 너의 줄기, 다치지 않길 바라. 노래를 부르며 가사를 다시 생각해 봤다. 크고 화려한 화분은 아니더라도 튤립 너 하나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은 있어. 당시에 나는 그런 튼튼한 황토색 화분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모두를 담는 넓고 큰 그릇. 그걸 동경해 왔다.


내 음악이 사람들에게 그런 존재였으면 했다. 투박하더라도 밋밋하더라도 안식처가 되어주기를. 통기타 하나 들고, 낮은 톤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를 때 사람들은 이유 없이 내 앞에 앉아 울기도 하고, 지금 혹시 사랑하는 사람이 있냐며 내 마음을 이해해 보려고 하기도 했다. 그게 신기했다.


해가 지날수록 화분 같은 음악도 좋지만 튤립의 이파리 같은 음악에도 관심이 생겼다. 자꾸만 테두리 바깥으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화분처럼 누굴 보듬어 주는 것도 좋지만, 때때로 나는 여린 줄기를 가진 생생한 튤립과 같았다. 가을부터 사월까지 묵묵히 땅속을 견디다가 한참이 지난 후에야 고개를 들어 올리는 튤립. 튤립은 땅 위를 올라온 순간부터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란다. 화분 안에서 이파리를 여기저기 펼치는 일.


화려해 보고도 싶어서 전자 음악을 배웠다. 통기타는 이미 배웠으니 안 해본 걸 하고 싶어서 베이스를 잡았다. 그렇게 그 길로 음악 입시에도 도전했지만, 모종의 이유로 그만두기도 했다. 나와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제안이 들어와 밴드에도 합류했다. 현재는 솔로 음원도 만들고 싶어서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는 중.


조금씩 벗어나기를 선택하며 내가 알게 된 것은 딱 하나. 좋은 곡에 정답이 없듯이 좋은 음악가도 정답은 없다. 좋은 음악이 무엇인가, 나는 어떤 음악가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할 때마다 화분 같은 포근함과 튤립 같은 생기 넘침을 동시에 떠올렸다. 때때로 더 포근해지고 싶고 더 생기 넘치고 싶다.


10년 전 내가 만들었던 노래를 다시 들으니 꼭 노래 속에서 봄바람이 불고 있는 것만 같다.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불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불어오는 바람에 새싹의 푸릇함이 느껴진다. 10년 전에도 지금도 음악은 알쏭달쏭하고 어렵고 때때로 무겁지만, 그래서 음악이 하고 싶니? 물으면 망설임 없이 할래요! 라고 답할 것 같다.


바람, 바람, 봄바람. 올해는 또 어떤 노래를 만들면 좋을까.



보나의 답장과 음악


안녕 날다야!

이번 글에서 우리의 지난 시간이 떠올랐어.

나 스스로 잊고 있었던 내 모습들을 마주할 수 있어서 정말 신기했어!

네가 내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니까 그동안 밟아온 길이 한눈에 보이는 것 같아. 혼자서 생각할 때는 잘 보이지 않았는데 네가 대신 지도를 그려준 것 같아.

나는 닦여 있는 길 대신 자갈투성이의 비포장도로를 참 많이 걸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울퉁불퉁한 길 위를 어색하게 걷는 걸음걸이가 남들의 눈에는 우스워 보였을까? 하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쓰면 걸을 수가 없지. 남들이 가는 길을 벗어나도, 자기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미워하지 않는 나무처럼 쑥쑥 자라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노래를 지었단다.


https://www.youtube.com/watch?v=B2Wexdc11Tw

https://youtu.be/B2Wexdc11T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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