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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pybara Jul 26. 2022

몰래 쓰는 글

몰래는 뭐든 재밌다

몰래 글을 쓰고 있다. 몰래라곤 하지만 심각한 밀서도, 애달픈 사랑편지도 아니다. 인턴을 하고 있는 회사에서 쓰고 있기 때문에 '몰래'일 뿐이다. 월급루팡이라고 비난하진 말아주시길. 지금은 일을 기다리는 중이다. 그럼에도 도의적으로 바빠 보여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괜히 심각한 표정을 짓고 피피티와 브런치를 왔다 갔다 하는 중이다. 게다가 자기 계발의 시간에 카피라이터 인턴이 글을 쓰는 건 장려될 만한 일 아닌가?-라고 합리화도 해 본다.


오히려 잘됐다. 이렇게 몰래라도 쓸 기회가 오다니. 써야 한다는 생각은 있는데 딱히 쓸 만한 소재는 없어서 글쓰기를 차일피일 미뤘던 참이다. 수많은 작가와 예술가들은 어떻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창조해 내는 걸까. 영감을 찾아서 하루에 얼마나 먼 거리를 이동할까.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몰래 하는 건 뭐든 재밌다는 사실이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법 아닌가. 그래서라도 써야겠다.

하늘이 맑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광고대행사의 하루는 바쁘게 흘러간다. 말단 인턴한테도 일들이 쌩쌩 내달리는 풍압이 느껴진다.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는 정량화되지 않는 일, 수치화할 수 없는 노력이 각자의 자리에서 쌓여 간다. 때로는 낮도 밤도 잊은 채 보장 없는 노력이 계속된다. 그것들이 조용히 솜눈처럼 쌓여 하나의 완성된 안이 되는 건, 처음 봐서 그런지 몰라도 경이롭다.


바쁨이 미덕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처음으로 느꼈다. 바쁨은 잊어버리고 싶은 생각들, 하고 싶지 않은 생각들을 꽤 건강한 방식으로 밀어내 준다. 잡념이 안 든다고나 할까. 바쁠 때 오히려 머리가 개운해지는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바쁨이 일상이 되는 게 두렵기도 하다. 겨우 '찍먹'한 게 이 정도인데, 나가떨어지지 않고 이 길을 계속 걸을 수 있을까. 걷는다 해도 좀비처럼 걷게 되는 건 아닐까. 광고계의 워라밸에 대해서 들었던 바는 많지만, 뭔가에 대해 들어서 아는 것과 경험해서 아는 것은 전혀 다른 것 같다. 모두에게 당연한 이 바쁨이 낯설다. 거리를 가득 메운, 매일처럼 출근하고 야근하는 직장인들을 보며 평범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어른이라는 말에 숨겨진 무게에 대해서도. 스무 살과 서른 살의 한가운데 서서 하기 딱 좋은 생각들인 것도 같다.


날씨가 좋으면, 출퇴근길은 예쁘다. 걷는 거리가 제법 되는 게 억울하지 않다. 출근길에 보는 구름과 키 작은 건물과 그늘진 나무와 햇볕은 여름의 시간처럼 세상이 조용히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퇴근길, 출근길 반대편에서 바라본 길은 노을로 옅게 물들어 있다(야근한 뒤면 풍경이고 뭐고 생각 안 들지만). 열기가 사그라든 도로는 따뜻하게 덥혀져 있어, 에어컨 바람 아래서 차가워진 몸이 기분 좋게 녹신해진다.


어느덧 퇴근이 머지않았다. 퇴근 후 이어질 한가로움이 축복 같다. 내가 아무리 무뎌지고 무뎌져도 퇴근의 기쁨마저 느끼지 못할 만큼 무뎌지진 않겠지. 애초에 무뎌지기도 힘들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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