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밥상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 / 마르코 14,12-16.22-26

by 글방구리

가톨릭 신자들은 미사 때마다 예수님의 몸을 받아 모십니다. 예수님의 현존을 귀로만 듣고 마음으로만 믿는 게 아니라, 입으로 맛보기까지 하다니 성체성사는 일곱 가지 성사 중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반복적이고, 매력적인 성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성체성사를 통해 남다른 신앙의 체험을 하기도 하고, 교회에서도 매우 핵심적인 교리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이고, 복음 말씀은 성체성사의 기원으로 삼고 있는 최후의 만찬을 읽습니다.


저 역시 성체성사의 은총을 수없이 경험했고 함께 나누고 싶은 것도 많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글을 쓰려 합니다. 우리를 위해 젖과 밥이 되어 주시는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제게 젖과 밥을 주었던 엄마에게 안부 인사를 전해 봅니다.


엄마.

어느새 유월이에요. 천국은 이런 시간의 흐름도, 계절의 바뀜도 없는 곳이겠지만...

더 오래 살아 보겠다고 수술실에 들어갔다가,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헤어진 지 어느새 이십 년이 가까워 오네요.


어제도 나는 저녁 밥상을 차렸어요. 엄마는 얼굴도 보지 못한 손녀딸이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이나 밥을 같이 먹을까 말까 하는 상황인데, 오늘은 일찍 들어온다고 해서 모처럼 네 식구 수저를 모두 놓았네요. 무엇을 해줄까 고민하다가 냉동실에 얼려두었던 돼지고기를 꺼내 녹였어요. 손녀딸이 묵은지와 돼지고기를 덩어리째 푹 넣고 익힌 김치찜을 참 좋아해요.


아직은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되는 더위라 마당으로 통하는 창문을 활짝 열고 조리를 시작했습니다. 주말이라 집에서 캠핑 분위기를 내는 이웃들이 있는지, 내가 밖으로 내보내는 김치 냄새보다 밖에서 들어오는 숯불구이 냄새가 코를 기분 좋게 자극하네요.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 엄마가 해주던 음식들이 제 식탁에 올라옵니다. 그런데 흉내 낼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어요. 된장을 넣어 끓인 근대국은 비슷하게 맛을 낼 수 있지만, 아욱죽은 같은 맛이 안 나네요. 어릴 적 도시락의 최애 반찬이었던 김치볶음도 제가 하면 그 맛이 안 나요. 레시피를 받았두었더라면 같은 맛을 낼 수 있었을까요.


문득 레시피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엄마가 밥상을 차리던 과정을 알지 못한 게 더 큰 문제인 거예요. 엄마가 죽음을 준비할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이건 여기에서 구입해라, 저건 저렇게 보관해라, 일일이 가르쳐 주었겠지요. 저 역시 엄마와 함께 있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알았더라면, 엄마가 어떻게 제게 젖을 물렸는지, 어떻게 인생을 살았으며, 앞으로 엄마를 기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시시콜콜 물었을 겁니다. 그러나 죽음은 누구에게나 그렇듯, 언제나 빨리 옵니다.


우리가 믿어 온 스승님도 그랬나 봐요. 마지막 때가 가까워오자 그는 당신을 오래 기억할 방법을 찾습니다. 마지막 만찬을 차리는 과정을 세세히 알려주지요. 그리고 사는 날 동안에는 먹고 마실 수밖에 없는 빵과 포도주, 즉 밥상을 차릴 때마다 당신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합니다. 우리가 잊을까 봐 그랬는지, 이 음식이 내 살이고, 이 음료가 내 피다,라고 임팩트 있게 말씀하시지만, 그 안에 담긴 속뜻은 밥상을 차릴 때마다 감사하고 찬미하며 함께 나눠먹어라. 그러는 과정 안에 내가 현존하겠다,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내가 한 끼 밥상을 차린다고 해도 그 안에는 김장김치와 된장과 밥그릇과 수저와 마주 앉는 식구들의 서사가 버무려지듯이, 한 번의 성체성사 안에서도 스승님의 삶과 말씀과 약속이 실현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내가 엄마 곁으로 가고 나면, 우리 아이들은 나를 어떤 음식으로 추억할지 궁금해집니다. 자주 끓인 김치찜 맛으로도 기억하려 하겠지만, 아마도 식탁에 앉을 때마다 했던 말이나 행동을 더 떠올리지 않을까 싶네요. 음식을 싹싹 먹어치우고 그릇을 종류별로 쌓아놓던 것, 굳이 식탁 매트를 고집해서 놓았던 것처럼 아주 사소한 것들이겠지만, '엄마의 밥상'은 아이들에게 자신들을 사랑하고 잘 자라게 하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저에게 그렇듯.


엄마.

오늘 미사 시간에는 예수님이 사제의 도움을 받아 손수 차린 밥상을 받으며 그분의 마음을 기억해 볼게요. 그리고 제게 밥상을 차릴 기회가 남아 있는 한 그 마음을 자주 헤아리도록 할게요. 그렇게 몇 번이 될지 모르는 밥상을 차려내다가 부르시는 날이 되면 저도 엄마한테 갈게요. 그때 반갑게 겸상해요, 우리.

오늘은 이만 안녕.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다
무교절 첫날 곧 파스카 양을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가서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 두 사람을 보내며 이르셨다. "도성 안으로 가거라. 그러면 물동이를 메고 가는 남자를 만날 터이니 그를 따라가거라. 그리고 그가 들어가는 집의 주인에게, '스승님께서 '내가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음식을 먹을 내 방이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하여라. 그러면 그 사람이 이미 자리를 깔아 준비된 큰 이층 방을 보여줄 것이다. 거기에다 차려라." 제자들이 떠나 도성 안으로 가서 보니, 예수님께서 일러주신 그대로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성찬례를 제정하시다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또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니 모두 그것을 마셨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 그들은 찬미가를 부르고 나서 올리브 산으로 갔다.
Das Abendmahl
Am ersten Tage der Ungesäuerten Brote, als man das Passalamm opferte, fragten ihn seine Jünger: Wohin sollen wir gehen und das Passalamm bereiten, damit du es essen kannst? Und er sandte zwei seiner Jünger und sagte zu ihnen: Geht in die Stadt, und es wird euch jemand begegnen, der einen Krug mit Wasser trägt; folgt ihm, in wo er hineingeht, das sagt zu dem Hausherrn: Der Meister läßt dir sagen: Wo ist der Raum, in dem ich mit meinen Jüngern das Passalamm essen kann? Und er wird euch einen großen Saal zeigen, der mit Polstern versehen ist und bereitsteht, dort richtet es für uns her. Und die Jünger gingen weg und kamen in die Stadt und fanden alles, wie er´s ihnen gesagt hatte, und bereiteten das Passalamm zu.
Und als sie aßen, nahm Jesus das Brot, dankte und brach´s und gab´s ihnen und sprach: Nehmt; das ist mein Leib. Und er nahm den Kelch, dankte und gab ihnen den; und sie tranken alle daraus. Und er sprach zu ihnen: Das ist mein Blut des Bundes, das für viele vergossen wird. Wahrlich, ich sage euch, daß ich nicht mehr von der Frucht des Weinstocks trinken werde bis zu dem Tag, an dem ich von neuem davon trinken werde im Reich Gottes. Und als sie den Lobgesang gesungen hatte, gingen sie hinaus zum Öl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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