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이 가톨릭 교리를 안다고?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 마태오복음 28,16-20

by 글방구리

천주교 신자임을 드러내는 트레이드 마크는 단연코 십자성호입니다. 식당에 가서 밥을 먹기 전에 손을 들어 십자성호를 긋는 사람을 보면 '아, 천주교 신자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축구선수가 골을 넣고 십자성호를 긋거나, 경기에 임하기 전에 십자성호를 긋는 운동선수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면 반가운 마음이 들곤 하지요.


모태신앙인 저도 어릴 때부터 십자성호 긋는 것이 몸에 뱄습니다. 그래서 성당을 다니지 않는 친구들이 십자성호의 뜻을 묻기도 하고, 짓궂은 남자아이들은 파리를 쫓아 버리는 시늉으로 저를 따라 하기도 했지요. 그럴 때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이라는 '삼위일체(三位一體)' 교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어요. 저 역시 잘 알지도, 이해하지도, 믿지도 못했으니까요. 그러니 제 답은 늘 같았죠.

"나도 왜 하는지 몰라! 성당에서 그냥 그렇대!"


커가며 만나는 신부님들께 물어봐도 뾰족한 답을 얻기는 어려웠어요.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은 세 위격(위격이라는 말조차 이해하기 힘들었지요.)이자 한 하느님이다, 같은데 다르다, 한 사람이 세 역할을 하는 거라고 생각해도 안 된다, 이해가 안 되면 그냥 믿어라.' 대부분 이런 식이었어요.

일 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삼위일체 대축일 강론 때 단골로 등장하는 '아우구스티누스 성인 일화'는 삼위일체에 대한 믿음을 강화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이 어리석은 짓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어요. 하도 자주 인용되는 일화여서 삼위일체 대축일이면 강론을 듣기 전에 속으로 '제발 그 일화는 이제 그만!'이라고 바라게 되더라고요.


그렇다고 제가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신비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는 것은 아니에요. 뭔가 있기는 한데 그걸 말로 표현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었다는 거죠. 그러던 중, 아이들에게 한글교육을 가르치면서 드디어 삼위일체 신비를 가깝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세종대왕이 천지인(天地人)의 사상을 토대로 모음(母音)을 창제했다는 내용을 찾아보다가, 천지인이야말로 하늘(하느님)과 땅(성령)과 사람(예수)의 삼위일체를 가장 가깝게 드러내는 원리라고 느끼게 된 거죠. 하늘의 속성은 하느님과, 땅의 속성은 성령과, 사람의 속성은 예수님과 빗대어 보니, 천지인 원리도 더 쉽게 이해가 되었고, 삼위일체 신비도 무조건 믿어야 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믿을 수밖에 없는 교리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물론 그것을 논리적, 신학적으로 설명할 능력은 없지만, 한 분이신 하느님의 완전성은 '셋'이라는 삼위 안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결론도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세종대왕이 가톨릭 교리를 알았을 리 만무하지만, 우주를 섭리하시는 하느님은 가톨릭 교리가 전해지지 않은 동방의 나라에도 천지인이라는 원리로 그 빛을 비춰주고 계셨다고 생각되더라고요.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목국에서 발행한 예비신자 교리서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은 삼위일체의 신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에 대한 신비는 인간이 사색을 통하여 만들어 낸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신 하느님의 업적들을 통하여 체험하고 깨닫게 된 진리입니다. 성부께서는 이 세상을 당신의 사랑으로 창조하시고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성자께서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써 구원을 완성하셨고, 하느님이 누구이신지 온전히 밝혀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의 약속에 따라 이 세상에 오시어 교회와 모든 믿는 이들을 새롭게 하시며 거룩하게 하고 계십니다. (중략) 성경이 증언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각기 다른 분으로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지만, 하느님은 언제나 한 분이시며 일치를 이루며 활동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중략)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을 삼위일체로 고백할 때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언제나 사랑으로 일치를 이루고 계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으로 일치해야 하며 또 그분의 은총으로 일치할 수 있다는 믿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 147-148쪽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일치를 체험한 사람은 위 내용에 고개를 끄덕이겠으나, 저처럼 체험을 하기에 앞서 먼저 '무조건 믿어야 할 신비'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머리에 그려지지 않을 수도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오두막](2017/미국)이라는 영화를 추천하고 싶네요. 이 영화는 같은 제목의 책(윌리엄 폴 영 장편소설/ 세계사)을 영화화한 것인데요, 영화나 책이 말하려는 주제와는 거리가 있을지 몰라도 저는 이 영화를 통해 삼위일체의 관계를 더 잘 연상할 수 있게 되었니다.


이번 주간은 제가 게으름을 부리는 바람에 본당 미사를 하고 나서야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미사 때 신부님께서 또 아우구스티노 일화를 말씀하시면 어쩌나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신부님은 십자성호를 주제로 강론을 해주셨어요.


아이들에게 하늘 땅 사람 모양을 본떠 만든 모음, 글자보다 앞선 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이도록 알려주었던 것처럼, 저 역시 가장 기본이 되는 신앙고백이자 간단하고 단순한 몸과 마음의 기도인 십자성호부터 자주 그어 보자고 다짐해 봅니다. 중요한 일을 해야 할 때는 물론, 하느님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순간마다 부끄러워하거나 주저함 없이 당당히 그으며 기도하자고요. 제가 운동선수가 아니어도 그 기도는 제게 힘을 줄 것이며, 저를 따라다니는 카메라가 없어도 제 행동이 작은 선교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사명을 부여하시다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Der Missionsbefehl
Aber die elf Jünger gingen nach Galiläa auf den Berg, wohin Jesus sie bestellt hatte. Und als sie ihn sahen, fielen sie vor ihm nieder; einige aber zweifelten. Und Jesus trat heran und sprach zu ihnen: Mir ist alle Macht gegeben, im Himmel und auf Erden. Darum geht hin und macht alle Völker zu Jüngern: Tauft sie auf den Namen des Vaters und des Sohnes un des Heiligen Geistes, und lehrt sie alles zu halten, was ich euch befohlen habe. Und siehe, ich bin bei euch alle Tage bis an das Ende der We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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