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참 좋은데, 뭐라 설명할 수가...

성령강림대축일 / 요한복음 20,19-23

by 글방구리

'원기소'를 아시나요? 씹어서 먹게 되어 있던 누르스름하고 큼큼한 냄새가 나던 어린이 영양제 말입니다. 플라스틱 통에 대용량으로 들어 있던 걸 보면 당시 그리 비싸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삼시 세끼 밥 말고 영양제를 먹는다는 것 자체가 부의 상징처럼 보였어요. 그걸 먹는 아이들이 부러웠어요. 집안 살림이 먹고살기에도 빠듯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으면서도 그걸 사달라고 조르기도 했요. 그때부터 시작된 '영양제 신심(信心)'은 나이가 들수록 더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감기약을 사러 약국에 갔다가도 여기저기 붙어 있는 영양제 광고를 지나치지 못하고 사 올 때가 더러 있으니 말이죠.


요즘 영양제는 굉장히 세분화되어 있고, 그 기능 역시 매우 자세합니다. 예를 들어 전에는 '비타민'이라고 퉁치고 팔던 것도, 지금은 비타민 B, C, D 등 세분화해서 팝니다. '그냥 몸에 좋은 것'이 아니라, 눈이면 눈, 무릎이면 무릎 이런 식으로 효과도 콕 짚어 줍니다. 그러니 식탁에 놓이는 영양제 개수도 자꾸 늘어날 수밖에요.


성령강림대축일과는 하등 관계가 없어 보이는 영양제가 떠오른 것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성령 칠은(七恩) 카드 뽑기'에 대한 기억 때문입니다.


먼저 성령의 일곱 가지 은총과 아홉 가지 열매에 대해 예비신자 교리서에 나온 부분을 인용해 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라 살 수 있도록 지혜, 통달, 지식, 식견, 공경, 용기, 경외의 일곱 가지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데, 이를 '성령 칠은'이라고 부릅니다. ... 이러한 성령의 일곱 가지 은총은 우리가 세례를 통하여 받게 되는 선물이며 견진성사를 통하여 더욱 굳건해집니다. 또한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성령의 은총으로 마음과 행실이 변화될 때,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갈라 5,22-23)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게 된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천주교 서울대교구/137쪽]

성서에서 성령은 불이나 혀, 비둘기, 바람 등으로 은유됩니다. 그래서 칠은이나 성령의 열매를 적은 작은 카드 역시 불꽃이나 비둘기 모양 등으로 만들곤 하죠. 카드를 뽑지 않는다고 해서 성령의 은총을 받지 못하고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는 내게 어떤 선물을 주시려나?' 하는 기대에 부풀어 카드를 뽑는 재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원하는 은총이 아닌 다른 것이 나오면 살짝 실망한다는 데 있지요. 하느님이 어련히 알아서 주시랴, 하는 마음보다는 내가 청하고 바라는 것을 뽑았으면 하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혜의 은사를 받으면 지혜만 좋아지고, 통달의 은사를 뽑으면 통달할 수만 있다고 생각했으니, 성령의 은사를 부위별로 챙겨 먹는 영양제 정도로 여겨 왔던 것 같아요. 이미 세례와 견진, 매주 이루어지는 성체성사의 은총으로 몸에 좋은(실은 몸에만 좋은 게 아니라 마음과 영혼에도 좋은) 성령을 충만히 받았으면서도, 일 년에 한 번씩 뽑은 카드로 그 해의 특별한 영양소를 보충한다고 생각했달까요.


오늘 복음은 짧지만 성령을 받게 되는 과정과 내적인 변화를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화와 기쁨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에게 용서를 선포하라는 사명을 받습니다. 내 몸만 좋아지고, 내 마음의 평화만 누리라고 성령을 보내주시는 게 아니라, 죄에 눌리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죄로부터 해방시키라고 주시는 것임을 알 수 있어요.


성서에서 성령을 한마디로 정의하지 못하고 여러 상징적인 단어로 표현한 것은 우리 각자가 경험하는 성령이 다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어떤 이는 열정이 솟아오르는 불의 이미지로, 어떤 이는 한없이 자유로운 바람의 이미지로, 또 어떤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평화로운 비둘기의 이미지로 각각 다르게 느끼겠지요.


제게 성령 체험은 오래전에 유행했던 어느 건강식품 광고 문구와 비슷해요. 광고는 이렇게 말하죠, "산수유, 이게 남자한테 참 좋은데, 뭐라고 명할 방법이 없네.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

요걸 살짝 패러디 해볼까 합니다.

"성령, 이게 사람들한테 참 좋은데, 뭐라고 설명할 방법이 없네. 눈앞에 보여줄 수도 없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사명을 부여하시다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Die Vollmacht der Jünger
Am Abend aber dieses ersten Tages der Woche kam Jesus dorthin, wo die Jünger versammelt waren, und trat mitten unter sie, obwohl die Türen aus Frucht vor den Juden verschlossen waren, und sprach zu ihnen: Friede sei mit euch! Und als er das gesagt hatte, zeigte er ihnen die Hände und seine Seite. Da wurden die Jünger froh, daß sie den Herrn sahen. Da sagt Jesus noch einmal zu ihnen: Friede sei mit euch! Wie mich der Vater gesandt hat, so sende ich euch. Und als er das gesagt hatte, blies er sie an und sagte zu ihnen: Nehmt den heiligen Geist! Wem ihr die Sünden erlaßt, dem sind sie erlassen; und wem ihr sie anrechnet, dem sind sie angerech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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