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덕분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습니다
2021년도였던가요. 전세계적인 감염병으로 오프라인 만남이 전면중단되어 '줌'이라는 낯선 화면 앞에 처음 앉았던 때, 저는 작가님을 줌 강의에서 뵈었습니다. 당시 저는 공동육아 어린이집 교사였는데, 제가 속해 있던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교사회가 줌으로 열었던 여름교사대회에서 작가님이 글쓰기 강의를 하셨거든요. 만약에 감염병이 아니었다면, 화상 강의가 열리지 않았더라면 제가 작가님을 만났을 일은 없었을 테지요. 저는 한국에 살고 있고, 작가님은 이탈리아에 살고 계시니 말입니다. 랜선을 타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인연의 끈은 감염병 시대를 겪으며 오히려 더 질기고 강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당시는 어색했던 줌 화면에 적응하지 못했던 때라 솔직히 작가님 말씀에 온전히 몰입하지는 못했습니다. 아니, 익숙지 못한 화상 강의 때문만은 아니고, 제 상황이 그랬습니다. 당시만 해도 저는 어린이집 교사를 조금 더 길게 할 줄 알았기에, 글쓰기에 관심을 쏟을 여력이 없었거든요. 여러 강좌 중에 작가님의 글쓰기 강좌를 신청한 이유는 단순한 호기심에서였고요. 도대체 '진짜 작가'라는 사람들은 어떻게 글쓰기 강의를 하는지 궁금해서요.
그때까지 제가 생각하는 작가란 문단에 데뷔했거나 책 출간을 했거나 국문과를 졸업한 사람이어야 했어요. 그런 타이틀이 없다면 적어도 속된 말로 책 읽기와 글쓰기를 미치고 환장할 만큼 좋아해야 작가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런 기준에서 저와 '작가' 사이에는 건너지 못할 강이 있었습니다. 한때 글을 쓰고 고치는 일로 밥 벌어먹고살기도 했습니다만, 저는 제 필력에 한 번도 만족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남들의 평가와는 별개로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있었던 일이 기억나는군요. 6.25를 맞아 반공 글짓기대회가 열렸어요. 입시를 앞두고 열린 교내 글짓기대회에 마음이 갈 리 있나요. 선생님은 반 아이들에게 강제로 한 편씩 써내라고 하셨습니다. 저 역시 투덜거리며 원고지 몇 장을 채워 냈지요. 그리고 얼마 후 담임 선생님은 제 글이 수상작으로 뽑혔다는 소식을 전해 주셨습니다. 그때 제가 선생님께 뭐라고 말씀드렸는지 아세요?
"선생님, 제 글 안 읽어 보셨죠? 제 글은 상을 탈 만한 글이 아닌데요."
선생님의 당황해하던 표정이 4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생생합니다. 상을 준다는데도 당돌하게 따져 물었던 건, 그렇게 아무렇게나(?) 써낸 제 글이 입상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저는 결코 글쓰기로 상을 탈 위인이 못 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런 제가 작년, 이 브런치에서 '오렌작가님'이 만든 '창조의 오렌지컵' 상을 탔습니다. 그게 인연이 되어 다른 열일곱 분의 브런치 작가님들과 함께 책을 내게 되었고요. 이 소식을 김작가님께 알려드리는 이유는, 바로 그날 줌으로 만난 작가님 덕분에 제가 브런치에 입문했기 때문입니다. 작가님이 말씀하셨던 강의 내용은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으면서, "글쓰기를 계속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브런치 작가에 도전해 보라"라고 했던 말씀이 제 머리에 콕 박혀서 강의가 끝난 날 바로 글 몇 편을 그러모아 브런치에 응모했거든요. 그렇게 제가 '작가님'이라는 부캐를 갖게 되었습니다.
오늘부터 연재를 시작하려는 이 브런치북 제목은 [알지만 모르는 브런치 작가님들께]입니다. 소개 글에도 썼듯이, 책의 공동저자인 작가님들에게 [글루미 릴레이]에 수록된 글을 읽으며 제가 느낀 점들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오픈채팅방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각자 갖고 계시는 글방에 들어가 올리신 글들을 읽으며 한분 한분의 성향을 조금은 알게 되었으나, [글루미 릴레이]와 관련된 내용은 서로 이야기를 나눈 바가 없으니, 그야말로 '알면서 모르는 작가님들'입니다.
그러나 김작가님은 조금 다른 의미에서 '알면서 모르는' 분이에요. 저는 작가님의 유튜브 채널도 구독하고 있고, 작가님이 내신 책은 다 읽어 보았어요. 코믹학습지 같은 만화책은 제가 수업하는 아이들에게 선물로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그뿐 아니죠. 작가님이 중개하시는 올리브유는 저희 집 밥상은 물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아껴가며 나누는 최애, 최고급 식재료이기도 합니다. 이쯤 되면 제가 김작가님을 조금은 안다고 해도 되려나요?
저는 작가님을 알지만 작가님은 저를 모르시므로, 이 글이 작가님께 결례가 되는 건 아닐까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누군가 나에게 이런 팬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면 저 역시 조금 놀라고 부담스러울 것 같기는 해요. 그래서 작가님께 앞으로 쓰게 될 이 브런치북과 또 다른 제 글들에 관심을 가져주시길 조심스럽게 부탁드립니다. 연재가 끝나는 날 즈음이 되면, 작가님도 저를 조금은 알게 되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예상치 않게 제게 브런치 작가의 길을 알려주셨듯 앞으로도 제가 더 글쓰기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자, 그럼 다음 주부터는 본격적으로 [글루미 릴레이] 작가님들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 대문사진/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