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하글 / 당신의 딸이라는 이유로 고통받았던 시간
한밤중, 엄마의 비명 소리에 놀라서 눈을 떴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엄마 사이에 자고 있었는데 누운 채 고개를 돌려 보니 베고 있던 베개 바로 옆에 과도가 꽂혀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삼단요라고 부르던 매트를 찢고 박혀 있던 거였지요. 엄마의 비명에 놀라서 깬 제가 울음을 터뜨렸는지, 엄마는 품에 저를 끌어안았고 아버지도 꺼이꺼이 울었어요. 제가 아홉 살 정도 되었을 때였어요.
아버지가 저를 죽이려 했던 건 아니었을 거예요. 엄마와 워낙 자주 싸우던 때라 엄마를 죽이려 했나 생각했어요. 아니면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나 추측하기도 했고요. 그러나 식구들 중 누구도 그 밤에 일어난 일에 대해 제게 설명해 주지 않았습니다. 아마 어린 제가 매트에 박힌 칼을 보지 못했고, 기억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 일은 그렇게 의문점만 남긴 채 잊히는 듯했지만, 저는 술에 취한 아버지가 엄마에게 폭력을 행사할 때마다 그 일이 머릿속에 떠오르곤 했습니다. 아버지가 무서워 장롱에 숨기도 하고, 밖으로 도망을 가기도 하고, 가끔은 아버지에 악을 쓰며 맞서다가 거품을 물기도 했던 엄마. 엄마는 그럴 때면 몸에 강직이 오곤 했어요. 엄마가 숨이 넘어갈 듯 몸을 뒤틀면, 아버지는 그제야 정신이 들어 엄마를 주무르며 사과를 했습니다.
전 그런 아버지가 너무 무섭고 싫었어요. 아버지가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는 건 알지만 아버지의 폭력성에는 진절머리가 났거든요. 더욱이 그 폭력은 엄마에서 그치지 않고 아버지 마음에 차지 않은 신붓감을 데려온 오빠에게 이어졌고,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란 언니와 저는 아버지 그늘을 빨리 벗어나려고 각자의 방법으로 길을 택했습니다. 언니는 결혼으로, 저는 수녀원으로.
이러구러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버지는 늙어 병을 얻었고, 엄마는 그런 아버지를 십 년 넘게 간병하다가 먼저 세상을 떴습니다. 아버지도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살다가 외롭게 세상을 떴습니다. 그날 밤 기억 역시, 아버지가 누굴 죽이려 했거나 스스로 죽으려던 게 아니고 단지 화를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우발적으로 매트를 찔렀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 기억은 진짜 일어난 일이 아니고, 부모의 싸움에 울다 지쳐 잠든 제가 꾸었던 아주 나쁜 꿈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승하글 작가님의 글을 다시 읽었습니다. 읽을 때마다 가슴 저 밑바닥 어딘가 찌릿찌릿 아픕니다. [글루미 릴레이]에는 픽션과 논픽션이 구별되지 않고 실려 있기에, 이 글은 픽션이길 바랐습니다. 독자들의 공감을 원하며 글을 쓰면서도, 이 글만큼은 차라리 공감이 잘 안 되었더라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공감을 하는 독자들은 작가만큼이나 아프고 괴로울 테니까요.
"용서란 누군가를 다시 마음에 두는 일이지만, 내게 아버지는 이미 오래전 사라진 그림자였"(51쪽)던 작가는 더 이상 "그 흉터를 들여다보며 아파하지 않는다. 나는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51-52쪽)라고 다짐합니다. 저는 독자로서 작가의 다짐을 응원했습니다.
부모 자식 간이라고 반드시 관계가 좋으란 법은 없지요. 가정폭력처럼 대물림하기 쉬운 경험을 했다면, 그 대물림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거리는 필요합니다. 살아남기 위해 끊어내야 하는 관계, 회복되기 위해 단호한 절연이 필요한 관계도 있을 겁니다. 어느 한쪽이 죽어 없어져야 비로소 치유와 용서의 첫 발을 뗄 수 있게 되는 관계도 있겠고요. 그러니, 모든 관계가 편치 않다고 해도 너무 속상해하지 말기로 해요. 안 되는 걸 억지로 맺으려 애쓰지도 말아요. 단단히 꼬이고 얽혀 풀리지 않는다고 하면 그냥 오래오래 놔둬 보기로 해요. 시간의 힘으로 매듭이 저절로 삭아 없어질 때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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