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 / 우리 집 마당은 참 좋았다
혹시 기억하시나요? 오래전에 상영되었던 드라마 [시크릿 가든]이요. 거기에서 남자 주인공 역할을 맡은 현빈은 여주인공 '길라임'을 놀라면서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하곤 하죠. "이런 어메이징한 여자가 있나"라고요.
유아교사인 줄 알았더니 예술가요, 예술가인 줄 알았더니 편집자요, 편집자인 줄 알았더니 격렬한 육체노동을 하는 노동자요, 노동자인 줄 알았더니 작가인 사람, 오렌. 무지개의 일곱 가지 색을 한몸에 지닌 듯, 올리는 글마다 다른 색감을 선보이는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제가 종종 내뱉었던 감탄을 각색 없이 쓰자면 바로 그거였어요, '세상에, 이런 어메이징한 여자가 있나!'
그렇게 어메이징한 분이 제게 찬란한 '창조의 오렌지컵' 상을 주었을 때 제가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뿐인가요,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책을 같이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는 정말 뛸 듯이 기뻤답니다. 하지만 막상 참여하겠다고 말씀드리고 나니, 제가 책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건 아닐까, 엉뚱하게 남의 다리 긁는 잡문으로 민폐를 끼치면 어쩌나 걱정이 되더군요.
그래서 정말 궁금했어요, 작가님의 첫 시작이요. 이번에는 어떤 색의 바통을 택하실지, 어떻게 첫발을 떼실지요.
"우리 집 마당은 참 좋았다."(21쪽)
작가님이 택한 우리 책의 첫 문장이네요. 취재부 기자 시절, 기사 첫 문장인 '리드'를 잘못 써서 선배들로부터 자주 혼나서인지, 저는 첫 문장 쓰는 게 가장 힘듭니다. 반면 첫 문장을 마음에 들게 쓰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막힘 없이 쓸 때가 많지요. 작가님의 첫 문장을 읽으면서 전 이미 독자가 되어 위로를 받은 듯했어요. 잠시 우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해도 '참 좋은 우리 집 마당'에는 한결같이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앉을 것 같으니까요.
다음 문장은 "회색 시멘트로 된 마당은 넓고 따뜻했다."로 이어지고, 사진 속에서 해맑은 웃음을 띠고 있는 어린 작가님이 자라난 마당 이야기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작가님의 집 마당을 읽는데 머릿속에서는 제가 자랐던 마당이 떠오르더군요. 작가님은 자신의 마당을 열어 놓았는데, 왜 제가 그 글 안에서 묻어 두었던 제 어린 시절을 선명하게 보고 있을까요. 아마도 우리 모두가 각자 자신만의 마당에서 자랐기 때문이겠지요.
작가님이 그 마당에서 소환한 "인생 최초의 기억"(27쪽)이 당연히 제 경험과 같을 리 없지만, "이제는 내 의지로 선택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집이 아닌 길로"(29쪽) 가겠다는 선언, "이 마당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29쪽)이라는 결연함은 노년에 막 접어든 제게도 필요해 보입니다.
머물렀던 자리를 떠나지 못하면 그 순간 있어야 할 새로운 자리를 만날 수도 없을 거예요. "새로운 명랑함으로 길 위에 설"(33쪽 참조) 수도 없을 거고요.
그 새로운 길을 갈 때는 저도 명랑함을 장착해 보겠습니다, 작가님처럼요. 그 길이 어떤 길이었지는 또 한참을 가본 뒤에야 알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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