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국 블리야 / 아가별이 된 세진이
"엄마 뱃속에 오기 전에, 네가 원래 별이었던 건 알지?"
일곱 살 아이들과 같이 살 때, 아이의 생일이면 생일상 앞에서 늘 이렇게 똑같은 말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생일상이라고 해야 작은 책상에 고운 빛깔 천을 깔고, 나들이 가서 따온 들꽃들을 꽂아주고, 촛불 하나 켜놓는 게 전부였어요. 부모님이 써주신 편지를 함께 읽고 친구들이 가마를 태워주는 아주 간단한 축하였지만, 그 시작만큼은 언제나 같은 이야기로 했더랬죠.
"별이 하늘에서 내려다보니까 사람들이 사는 이 세상이 참 아름답고 재미있어 보이는 거야. 그래서 '나도 저기 가서 살고 싶다.' 생각해서 하느님에게 기도했지. 나를 가장 사랑해 줄 엄마 아빠가 누군지 보여 달라고. 그랬더니 저 아래 ***씨(아이 엄마 이름)와 ***씨(아이 아빠 이름)가 보이네? 별이었던 **이는 그 두 사람이 엄청 마음에 들었어. 그들과 살면 행복할 것 같았지. 하느님한테 부탁했더니 하느님이 그들 사이에서 **이가 태어날 수 있게 해 주셨단다. 자, 별이었던 **이가 태어난 날, 축하해 주자!"
겨드랑이 아래에 날개가 달렸던 아기 천사였다고 할 수도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정확히 알려주어야 한다는 성교육 차원에서는, 수억 마리의 정자들 중에서 가장 빠른 녀석 덕분에 태어난 거라고도 말할 수 있었겠죠. 그런데 저는 생명이 다하고 떠나면 별이 된다고 믿기를 바라는 마음에, 우리가 이 세상에 오기 전에도 실은 별이었다고 말해 주고 싶었어요.
이야기에서는 아이가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난 것처럼 지어내기는 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죠. 아이는 부모를 선택할 수 없었고, 부모 역시 아이를 선택할 수 없으니까요. 아무런 이유 없이 주어진 것, 이유 없이 벌어진 일들. 내 탓도, 네 탓도 아닌 그런 일들이 인생에서 일어나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할 때, 그것을 신앙의 언어로는 '십자가'라고 하는 거겠죠.
예기치 못한 사고로 별이 된 세진이로 인해 글의 화자인 연경이는 한동안 우주 안에 버려집니다. "나는 계속 우주에 있다. 그 우주의 모습은 늘 똑같다. 나는 네모난 별 사이에서 끊임없이 떨어지지만 내가 있는 우주는 바람이 불지 않는다.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도 살지 않는다. 수많은 색을 가진 수많은 별이 아주 가끔 몸을 흔들어 반짝이며 나 여기 있다고, 어서 오라고 손짓할 뿐이다."(74~75쪽)
아무런 이유 없이 맞닥뜨려진 사고일 뿐이지만 연경이는 한동안 말문도 막혀 버립니다. 연경이 앞에 놓인 어둠이 너무 무겁습니다. 그리고 그 어둠은 연경이보다 더 가슴이 무너졌을 세진이 엄마의 위로를 받으며 비로소 차츰 사라지네요.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이 타인을 고통에서 구원해 낼 수 있나 봅니다.
[글루미 릴레이]의 다른 글과 마찬가지로, 이 글 역시 작가의 실제 경험인지 아닌지 저는 모릅니다.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지요.
모든 게 내 탓 같을 때, 내 잘못으로 일어났다고 한없이 찌그러질 때, 그건 "어떠한 선택의 여지조차 없는 상황"(78쪽)을 마주한 거라고 받아들이며, "주어진 상황에서 또 다른 길을 찾"(79쪽)는 게 중요하지요. 작가의 말처럼, "인생은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 아니라 나를 '만들어가는' 여정"(79쪽)이니 말입니다.
Life is not about finding yourself.
Life is about creating your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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