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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찐파워 / 꿈의 독립

by 글방구리

흔히 공동육아 어린이집이라고 하는 부모협동보육시설은 대개 조합 형태로 운영됩니다. 부모, 교사, 아이를 동등한 세 주체라고 생각하며, 부모와 교사는 아이를 함께 키우는 보육 파트너로 지냅니다. 일반 어린이집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부모가 어린이집의 설립과 운영, 교육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기에, 부모와 교사의 관계 역시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교사도 부모를, 부모도 교사를, 그리고 아이들도 교사들과 다른 부모들을 별칭으로 부르는 것도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평등 문화를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이런 막역하고 친밀한 관계 안에서도, 교사는 부모가 어렵습니다. 부모 조합원으로 공동육아를 처음 만나, 이후 15년 가까이 교사로 살았던 저도 부모가 어려울 때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한 달에 한 번 평일 저녁에 열렸던 방모임은 모든 부모의 시선이 교사의 입만 바라보고 있으니 부담스럽기 짝이 없지요. 이제 와 고백하자면, 방모임이 있는 날에는 저는 저녁식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웃고 있으나 속에서는 끝날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기에, 저녁을 미리 먹고 나면 체하기 일쑤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방모임보다 더 힘들고 어려웠던 것은 졸업 직전에 개별적으로 만나는 부모 상담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자는 시간을 빼면 부모보다 훨씬 더 긴 시간 동안 어린이집에서 지냅니다. 어린이집 교사는 아이가 친구들 사이에서 어떤 행동양식을 갖고 있는지, 아이의 발달을 평균치와 어떻게 비교해 볼 수 있는지 객관적인 데이터를 갖게 됩니다. 그걸 부모에게 전달해야 하는데 그 데이터 안에는 긍정적인 부분뿐 아니라 아이에게 어떤 도움이 더 필요한지, 아이가 어떤 부분이 취약한지도 들어 있습니다. 아이에 대한 부정적 부분을 전달하기가 쉽지 않다고,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긍정적 피드백만 한 채 졸업을 시키면, 향후 초등학교나 방과후에 가서 문제가 되곤 합니다. 부모는 종종 이렇게 말하거든요, "어머나, 우리 아이가 어린이집 다닐 때는 그런 얘기 전혀 못 들었는데요? 혹시 초등학교나 방과후 문제는 아닌가요?"라고요.


부모는 자녀의 어떤 모습을 가장 힘들어할 것 같으신가요? 이해력이 떨어진다? 공격적이다? 산만하다? 대소근육 발달이 늦다? 한글 습득에 어려움을 겪는다? 제가 십수 년 동안 다양한 부모를 만나며 얻은 답은 이거였어요. 부모가 가장 힘들어하는 자녀는 '자신의 성향과 다르게 태어난 아이'라고요. 그러기에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상상하지 못했던 아이의 행동 특성을 말하면 엄마든 아빠든 돌아오는 대답은 늘 똑같았습니다.

"그건 걔가 남편(또는 아내)을 닮아서 그래요. 남편(아내)도 어릴 때 그랬대요."


부모가 자기를 닮지 않았고, 자신이 이해하기 어려운 성향을 타고난 아이를 어려워한다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부모들이 놓치는 것은, 아이 역시 자기의 성향과는 다른 부모를 몹시 어려워할 수밖에 없는데, 심지어 그 부모가 자신의 생존을 책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는 자신과 다르다고 하여 부모의 뜻을 거스를 수가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사랑과 인정을 받을 수 없을 테고, 이는 생명을 위협받는 것만큼이나 끔찍한 일이니까요.


제가 어린이집에서 만난 아이들뿐 아니라, 제 삶에서도 질퍽거리기만 했던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찐파워 작가님이 쓴 다음의 문장을 읽으며 통쾌하게 정리되었습니다.


"부모가 원하는 최고의 삶이 아니라 내가 행복한 길을 따라 최선의 나로서 살아갈 결심을 했다. 여전히 부모님을 사랑하지만, 서로를 위해서 부모의 사랑과 자식의 삶은 구분되어야 했다. 그것이 나와 내 공동체의 행복을 위한 장기적인 선택이라는 결론을 내렸다."(86쪽)


맞아요, 이랬어야 했습니다. 부모와 성향이 달랐던 찐파워 작가님은 이어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도 깔끔하게 정리해 주네요.

"부모와 자식관계의 정답은 서로를 이해하는 것에 있지 않았다. 부모와 자식이 함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는 것보다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로 나아가야 했다. 여전히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서로의 생각을 조금씩 존중해 주기 시작했다."(87쪽)


내 아이와 더불어 다른 아이들의 삶까지 고민하는 '사회적 부모'가 되겠다고 공동육아 부모조합원이 되었더랬습니다. 이후엔 내 아이를 조금 더 잘 들여다보고 살며, 내가 가진 재능을 다른 아이들에게도 나누겠다고 공동육아 교사로도 살았더랬습니다. 그러나 아이, 부모, 교사가 진정한 주체가 되기를 바라는 공동육아의 삶은 아이, 부모, 교사가 서로 의존관계가 아닌 '독립적으로' 주체가 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꿈의 독립을 선언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곳에 더 이상 엄마, 아빠, 자식은 없었다. 세 명의 어른이 서로의 어깨를 토닥이며 나란히 서 있었다."(87쪽)라는 찐파워 작가의 말처럼 내 아이를 내 아이로만 보지 않고, 나와 같은 방향을 보며 인생을 살아가는 동료로 대할 수 있을 때까지, 함께 성장해 가는 여정은 계속되어야 할 테지요.


https://brunch.co.kr/@jyjy0125

덧.

어머나! 그렇게 생각하니, 공동육아를 떠났어도 제게 공동육아는 아직 끝나지 않은 거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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