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둘레의 이쁜 것들

- 봄볕에 손잡고 자는 이모와 조카냥이

by 글방구리

역사적인 날이다.

우리집 세번째 냥이자 부디 마지막 냥이이기를 바라는 '막내'가 드디어 내 품으로 스스로 들어왔다. 너부데데한 얼굴, 짤막한 다리, 분홍색 코, 너구리 같은 꼬리, 게다가 조용히 우는 '야아옹'까지 어느 한 군데도 귀엽지 않은 곳이 없는 막내가 내 팔을 베고 코를 골았다.


어느날 이 녀석은 평범한 길냥이들만 배회하던 우리 동네에 그야말로 혜성처럼 나타났다. 산책하던 딸내미와 남편의 눈에 띈 때가 2020년 가을. 강아지처럼 사람을 잘 따르던 녀석을 본 딸내미는 '심장폭격'을 당했다며 그 날 이후 밖에서 녀석과 놀고 들어오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녀석은 동네 아이들은 물론,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는데, 딸내미는 자기에게 손발을 내주며 따르던 녀석이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자, 심지어 질투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일주일쯤 지났을까, 병에 걸려 있던 녀석이 여기저기에 똥을 싸놓고 다니자, 누군가 신고를 했단다. 녀석이 신고를 받고 출동한 동물보호기관에 막 포획되려는 순간, 외출하고 돌아오던 남편과 우연히 마주쳤고, 남편은 안락사로 갈 수도 있음을 직감하여 우리집에서 임시보호를 하기로 했다. 급히 병실(?)을 마련하여 병원에 데려가고, 약을 먹이고, 지극정성으로 돌보며 열흘간 주인을 기다리기로 했다. 나타나기를, 나타나지 않기를. 나타나야지, 아니 나타나지 않았으면. 우리 식구는 모두 똑같은 마음이었다.

...

이미 실내에서 키우는 냥이 두 마리가 있었다. 그런데 세상에 저절로 크는 것은 없더라. 한 마리에서 두 마리가 되고 나니, 사료 주문도 두 배로 빨라지고, 내다버려야 하는 모래도 두 배로 많아지고, 집안에 돌아다니는 털뭉치도 두 배였다. 그런데 거기에 한 마리를 더 데려오자고 하는 건, 아무도 감히 먼저 꺼낼 수 없는 말이었다.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임시보호자가 걔를 데려올 수 있는 일순위인 거지?"

"그렇지. 주인 찾는다는 공고를 냈으니 잃어버렸던 거면 찾으러 오겠지."

"주인이 아니면서 주인이라고 우기면서 데려가면 어떻게 해?"

식구들은 복잡한 속내를 감추고 이런 대화를 나누곤 했다. 마치 아까시잎을 떼며 사랑한다, 하지 않는다, 하고 사랑점을 치듯이, 주인이 온다, 안 온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열흘을 보냈다. 그렇게 막내가 우리집 세 번째 냥이가 되었다.


마치 늦둥이 자식을 본 듯, 요 녀석은 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나는 그 마음을 이기지 못해, 이 털북숭이를 억지로 끌어안고 비벼대곤 했는데, 바로 그런 우악스러운 행동 때문에 나는 2년 가깝게 녀석이 회피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 뒤로는 츄르를 주고 아부를 떨어도 막내는 쉽게 다가와주지 않았다. 딸내미가 소파 위에 누워 있으면 은근슬쩍 배 위로 올라가 자는 녀석이건만, 내가 가까이 가려고만 하면 슬슬 뒷걸음쳐 도망을 치곤 했다. 그러던 녀석이 어제, 드디어 무장해제를 하고 내 손에 얼굴을 비비며 겨드랑이 밑으로 파고들어온 것이다. 긴 기다림 끝에 고양이 마음 하나를 얻었는데, 세상을 얻은 듯한 기쁨이라니.

심장폭격했을 때 막내 모습. 귀여움이 세상을 구원한다!

그렇게 안에서 세 마리가 살아가고 있다면, 밖에도 세 마리가 있다. 이 녀석들은 족보가 하도 복잡해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 중 한 녀석은 분명히 우리집 베란다에서 태어난 녀석이다. 그냥 세들어 사는 줄 알았던 '발랄이'가 부활절 아침, 깜짝선물로 네 마리의 새끼들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너무 놀라 그 네 마리의 새끼에게 '오마이갓'이라는 외자 이름을 붙여주었는데, 나중에 '깻잎'이라는 정식 이름을 얻은 한 녀석이 동네를 주름잡고 다니는 대장이 되었다. 족보로 따지자면 깻잎이와 손발을 마주 잡고 자는 '젖소'는 이모다. '코점이'는 젖소의 아들인데, 젖소는 자기 아들보다 조카인 깻잎이와 훨씬 친하다. 이해할 수 없는 동물의 세계.

발랄이와 오마이갓. 저 어리고 귀엽던 녀석이 폭풍성장해서 이제 늠름하게 집 앞을 지킨다.
체격은 커졌으나 깻잎 머리 내린 듯한 이마는 나이가 들어도 그대로다. 젖소는 자기 아들 코점이보다 조카인 깻잎이와 훨씬 친하다.



눈이 무서워서 고양이라면 질색을 했던 내가 삼남매 냥이의 엄마가 되어 산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우리집을 다녀갔나. 대부분 길에서 만난, 버려진 생명들이었다. 아파트에서 민원이 들어가 땅끝마을로 데려다 줄 수밖에 없었던 강아지 콩이도, 캠핑장에서 떠돌던 고슴도치도, 누군가 키워달라고 먹이까지 얌전히 문 앞에 갖다놓고 간 햄스터도, 역전에 앉아 박카스 상자에 넣고 누군가 데려가주기만을 바라는 할머니의 눈빛을 외면하지 못해 데려온 토끼도, 하다 못해 장수풍뎅이 애벌레들까지도 우리집에 와서 오래오래 살면서 천수를 다했다. 그래서 반친구가 알러지 때문에 못 키운다고, 누군가 데려가달라고 했다고, 아들내미가 손 번쩍 들어 덥석 안고온 첫째 냥이 가을이도, 햇볕마당에서 슬그머니 냥줍한 둘째 냥이 메이도, 마지막 녀석이기를 바라는 막내도, 우리집에서 나름 행복하게 잘 살다가 부디 여기에서 천수를 다했으면 좋겠다. 아니, 집 밖에서 살아가는 깻잎이와 젖소와 코점이도, 부디 동네 아이들에게 사랑받으면서 잘 살다가 이 동네에서 천수를 다하기를 바란다.

...

생명에는 하찮은 것이 없다. 그리고 하찮게 보지 않으면, 생명은 그 자신이 가진 힘으로 둘레를 따뜻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 꽃도, 풀도, 나무도, 새도, 곤충들도, 그리고 우리 둘레에 사는 많은 길냥이들도.

메이도 요렇게 솜털이 보송보송한 시절이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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