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길고양이 말고 우리집 고양이. 얘네들은 하루종일 먹고자고, 걱정도 없고 얼마나 좋아."
시험 때만 되면 동생과 함께 유치하기 짝이 없다던 '명탐정 코난'이나 '도라에몽'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던 아들이 '재수'라는 막바지 상황에 와서는 마침내 고양이를 부러워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그러던 녀석이 군대에 가서 명실공히 나라를 지키는 군인아저씨가 되었는데도, 아들내미는 여전히 우리집 고양이가 되는 내세의 소원을 내려놓지 못했다. 첫 번 면회를 가기 전에 아들내미는 "고양이 사진이랑 영상 좀 많이 찍어주세요."라는 부탁을 했다. 녀석은 저를 키워준 엄마아빠보다 저 털북숭이들이 더 보고 싶은가 보다.
고양이가 서로 목덜미를 물고 뜯으며 싸울 때도 있지만, 잠깐동안 그들이 자는 모습을 보면 세상 편한 팔자가 따로 없다.
집안에서 사람들의 잠자리를 넘보는 아이들도 있지만, 밖에 사는 아이들도 나름 편안한 잠자리를 찾아서 마음 내키는 대로 잔다. 추우면 추운 대로 서로 몸을 맞대고 자기도 하고, 박스만 갖다놓아 줘도 원룸처럼 자기 박스에 찾아들어가 자는 것도 신기하다. 아들내미는 저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집고양이, 아닌 길고양이까지 부러워할는지도 모르겠다.
*
얼마 후면 시어머니 기일이 돌아온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며느리살이'를 시켜드린 죄과가 커서 기일이 가까워오면 어머니가 그립다. 친정식구들보다도 시월드를 더 가깝고 편안하게 느끼게 된 건, 어머니 생전엔 명절이나 생신 때 싫거나 좋거나 꼬박꼬박 만났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시댁이든 친정이든 형제들끼리 서로 사는 형편이 다른 상황이다 보니, 만나면 본의 아니게 불편한 대화도 오가곤 했다. 그 중 가장 예민한 부분은 나잇대가 고만고만한 자식들 이야기다.
부모가 각자 자기 나름대로 자식 키우는 철학이 있기 마련인데, 자식 교육만큼이나 터치하기 어려운 것도 없기에 섣불리 이게 맞네 저게 틀리네 할 수도 없다. 아이들에 관한 얘기는 이렇게 친척뿐 아니라 동료, 친구나 이웃간에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까지는 편안하게 "어느 학교 다녀요? 몇 학년이죠?"라고 물을 수 있지만, 대학 입시를 앞두고는 아이들에 대해서는 먼저 묻지 않는 것이 예의란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어머니도 돌아가신 지 여러 해가 지났다. 결혼이 많이 늦은 우리는 아직 아이들이 어리지만 시누이네, 아주버니들은 자식들을 다 키워 독립시켜 내보냈다. 그러곤 허전한 빈 집에서 다들 고양이, 강아지를 데리고 산다. 그 중에서도 큰 시누이는 우리처럼 고양이를 키운다.
"얘 좀 봐. 우리 루비가~"라고 시작하면서 사진을 꺼내 보여주면, 우리도 질세라 가을이, 메이, 막내 사진을 보여준다. 강아지를 키우는 작은 시누이와 아주버니는 그네들의 사진을 서로 열어보이면서 자랑한다.
작년 겨울인가, 결혼이 가장 빨랐던 작은시누이가 우리 중에 가장 먼저 손주를 봤다. 손주 사진이 강아지 대신 프로필 사진으로 올라왔다. 손주 보고 첫 모임이 된 이번 기일 모임에서는 강아지, 고양이 사진들을 가볍게 물리치고 그 손주가 모든 대화를 평정하리라. 또다른 아기들이 태어날 때까지는 그렇겠지. 그러나 다른 조카들이 결혼을 하고 줄줄이 아이를 낳게 되면, 손주들 얘기는 또 함구해야 하는 상황이 될 거다. 사람은 그러고 싶지 않아도 자꾸 서로 비교하게 되는데, 고양이나 강아지는 그런 일로 맘 상할 일을 만들지는 않는다. 그네들은 집사들에게 효도만 한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고양이]나 [문명]을 읽어보면, 우리 가을이도 자신이 여신 바스테트라고 생각하고 있지나 않을까, 하는 눈초리로 보게 될 때도 있다.
'참치캔보다 꽃향기를 더 좋아하는 것만 봐도 얘는 좀 남달라.'
'무슨 고양이가 꽃꽂이만 해 놓으면 와서 인증샷을 찍어달라고 하지? 얘는 어쩌면 사람처럼 생각이란 걸 하는지도 몰라.'
얼토당토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퉁박을 먹기도 하지만, 나와는 너무 다른 그들의 세계가 궁금하기도 하다. 저 작은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할까, 쟤는 왜 저런 자세로 잘까.
*
엊그제 아들내미가 보내온 카톡에 고양이가 노는 짧은 영상이 올라왔다.
"와, 너 군대에서 카메라 막혀 있다고 하지 않았어? 거기서 키우는 아이야?"
군대에서 짠밥먹는 계급 높은 냥이 있다더니, 저 녀석이 군생활에 지친 아들내미를 좀 위로해 주려나, 싶어 질문을 남겼다. 아주 귀엽고 예쁘게 생겼네, 저 정도면 꽤 사랑받겠는걸. 가까운 곳에 고양이들이 살고 있으면 덜 심심하고 위로가 될 텐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아들의 카톡 메시지가 땡,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