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는 메이를 싫어한다. 메이가 어릴 때는 가끔 그루밍도 해주던 가을이였는데, 클수록 밉상인가 보다. 메이가 가까이 오는 것조차 싫은지, 메이가 자기 옆에만 지나가도 하앍, 쳐다보기만 해도 하앍. 하긴, 이유없이 목덜미를 물어뜯으며 공격을 하기도 하고, 자기 자리를 넘보기도 하는 메이가 싫기도 하겠지. 나는 '고양이계의 정우성'입네 하면서 데려왔던 아깽이 시절의 메이를 기억하면서 다 큰 메이의 진상짓을 견딘다 해도, 가을이 입장에서는 어느날 갑자기 자기 영역에 나타난 원수일 뿐일 테니, 메이에게 다정하게 대하라는 건 아예 기대하지 않는 게 나을 것도 같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 그럭저럭 맞춰 살아가던 어느 날, 집안에 또 한 마리의 못 보던 냥이 들어오게 됐으니, 가을이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아깽이 때 메이는 정우성이었다!
오직 집사의 판단과 결정에 의해 본의 아니게 모든 것을 나눠 가져야 하는 상황에 처한 가을이를 생각해 보면, 어느 날 갑자기 동생이 생긴 아이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원한 게 아니라고, 내가 만든 것도 아니라고, 나는 저 작은 아이가 싫다고, 내 모든 것을 나눠야 하는 저 아이가 밉다고, 나한테 사랑을 강요하지 말라고 아이들은 온몸으로 부모에게 저항하곤 한다. 부모가 물고빠는 아기처럼 행동하기 위해 퇴행을 하기도 하고, 아기보다 부모의 마음에 들기 위해 천사처럼 행동하기도 하면서.
가을이는 '공간'에 진심이다. 이불이나 담요는 물론, 발 매트 하나를 새로 깔아놓아도 가장 먼저 자기 흔적을 묻히느라 바쁘다. 택배 상자를 뜯으면 호기심을 보이고, 고양이들이 좋아할 만한 모든 장소는 자기가 찜해 놓는다. 몇 년 전 생일에 남편이 큰맘 먹고 선물해준 안마의자는 가을이의 최애 장소 중 하나다.
그런가 하면 메이는 '먹을 것'에 진심이다. 참치 캔 따는 소리에 가장 빨리 반응하고, 식구들이 식탁에 앉으면 늘 주변을 맴돈다. 그러다 식구 중의 누군가 자리에서 일어나면 재빨리 의자 위로 올라와 코를 벌름거리며 먹을 것을 찾는다. 길냥이 출신을 티내느냐고 구박을 먹으면서도 다른 냥이들의 밥그릇까지 넘본다. 가끔 가을이나 막내에게 발톱을 세워서 가장 힘이 셀 것 같지만, 큰소리가 나면 가장 먼저 꽁무니를 빼고 달아나는 겁쟁이다.
막내는 '놀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먹지는 않아도 놀지 않으면 못 사는 냥이다. 맨날 똑같이 흔들어주는 실꼬리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놀이감 위에 발을 얹어 놓고 빤히 쳐다보는 간절한 눈빛은 사춘기 귀차니즘이 충만한 딸내미까지 일으켜세우는 능력이 있다.
날마다 같은 사료를 먹고, 같은 화장실을 사용하고, 같은 집사의 돌봄을 받고 있지만, 세 마리의 성격이나 취향은 완전히 다르다. 고양이가 이럴진대 사람은, 아이들은 하나하나가 얼마나 다를까.
부모님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내가 맡은 아이만 아니라 형제 관계에 대해서도 자주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야기도 각각이다.
"같은 속으로 낳았는데 첫째와 둘째가 완전히 반대예요."(같은 속으로 낳았어도 다른 개체랍니다.)
"첫째 키울 때는 몰랐는데, 둘째가 더 힘들어요."(어쩌면 둘째도 엄마를 더 힘들어할지 몰라요.)
"첫 아이는 예민해서 힘들었는데 둘째는 거저 키우는 것 같아요."(엄마가 둘째의 육아에 덜 민감하시니, 예민한 첫째의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겠네요.)
"동생 생겼다고 큰 애가 엄청 좋아해요."(과연 그럴까요? 남편이 첩을 데려왔을 때 심정이라던데요?)
형제지간에 생기는 갈등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머릿속에서는 같은 상황을 가을이와 메이, 막내에 대입해 보곤 한다. 아마 고양이와 아이들이 서로 비슷하게 느껴지는 건, 고양이도 아이들도 자기 이야기를 알아듣게 꺼내놓지 못하는 언어 체계를 갖고 있기 때문일 거다.
고양이와 아이들의 비슷한 점은 또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자기가 놀고 싶은 곳에서 노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거다. 맛있는 츄르를 들고 꼬드겨도 밭에서 나오지 않고 뛰어다니는 냥이들이나, 다른 놀이 하자고 불러도 마른 갈대밭을 헤치고 다니면서 자기들끼리 몰려다니는 아이들이나.
아슬아슬 위험해 보이는 곳이면 꼭 올라가 보고 싶어하는 심리도 고양이나 아이들이나 마찬가지.
사실 아이들은 안전한 놀이터보다 훨씬 더 위험해 보이는 공간에서 모험을 즐기고 싶어하지만, 어른들의 불안감이 그들의 모험을 막곤 한다.
텃밭을 다녀오는 길에 텃밭 근처에 살고 있는 두 마리의 고양이를 만났다. 우리 집 밖에서 밥을 얻어먹는 녀석들과 비슷하게 생겼다. 근처 복숭아나무 밭 안으로 또 한 마리의 고양이가 달려간다. 고양이 달려가는 소리가 들려도 나무에 앉아 우는 물까치들은 날아가지도 않는다. 고양이와 새가 그냥 한데 어울려 산다. 마치 텃밭에 심어 놓은 작물들이 자라듯, 주변을 오가는 고양이들도 텃밭에서 자라고 있다. 따뜻한 초여름,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