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가던, 혹은 길 잃은 나그네가 하룻밤 재워달라고 문을 두드리는 장면은 옛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플롯이다. 이때 대개 부잣집 욕심쟁이 영감은 나그네를 재워주지 않지만, 가난한 사람은 허름한 방이지만 기꺼이 공간을 내어준다. 이야기 말미에는 그 환대 여부로 복을 받기도 하고, 벌을 받기도 한다. 간혹, 나그네가 들어갔더니 천년 묵은 여우가 소복 입은 할머니로 변신하여 복수에 칼을 갈고 있더라,는 무서운 전개도 있지만, 그럴 때도 여우에게는 나름 납득할 만한 사연이 있다.
방학을 한 딸내미가 우리보다 더 먼 지방으로 전학 간 중학교 친구와 1박 2일 서울여행을 계획했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40대 중반까지 서울을 떠나본 적이 없는, '뼛속까지 서울여자'라지만, 두 살 때부터 대전에서 산 딸내미나, 서울은 처음이라는 딸내미 친구를 둘만 보낼 수는 없었다. 눈 뜨고 코 베이는 곳이라잖은가. 그렇다고 여고생 둘이 하하 호호, 티키타카 하면서 다니고 싶을 여행에 엄마를 끼워달라고 할 수도 없고. 보호와 동행 사이. 그 어중간한 자리에서 '낄끼빠빠' 하기로 했는데, 가장 신경이 쓰이는 건 하룻밤 묵을 장소였다.
사실 서울만큼 하룻밤 묵어가고자 하는 나그네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는 곳은 없다. 호텔 스위트룸에서 룸서비스받으며 서울 야경을 즐길 수도 있고, 회사 사업차 올라간다고 해도 전혀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는 비즈니스호텔도 있고, 연인들이 낮이나 밤이나 드나드는 모텔은 동네마다 발에 채일 듯 많다. 그러나 앞서 썼듯이, 과년하지만 미성년자인 여고생 둘, 그리고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그를 보호해야 할 늙은 어미 하나가 하룻밤을 보낼 만한 곳을 찾는 건 그리 쉽지 않았다. 검색 조건에 단, '저렴한'이라는 형용사 때문이기도 하지만.
물론 남편이 일찌감치 잡아준 곳이 있었다. 강북에서 꽤 깨끗하지만 그리 비싸지 않은 비즈니스호텔의 트리플 룸. 이미 전에 묵어 본 적이 있어서 주변 환경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익숙한 곳이었다. 여행 떠나기 전날까지도 당연히 그곳에 묵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숙소에 대해 별다른 고민이 없었는데, 딸내미의 한마디가 나를 흔들었다.
"엄마, 걔는 호텔이 가장 기대된대. 그리고 맛집만 찾아보고 있어."
호텔에서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오랜만에 만난 절친과 밤새 이야기하고 싶다는 건데. 아, 나란히 붙은 세 개의 침대, 그중 하나에 늙은 엄마가 있다니. 딸내미는 "괜찮아. 난 상관없어."라고 하지만, 서울이 처음이라는, 친구와 둘만 가는 여행도 처음인, 그 아이에게도 내 존재가 과연 괜찮을지.
그래서 그때부터 휴대폰의 연락처를 들여다보기 시작한 거다.
"서울에 온 나그네인데, 하룻밤 재워줄 수 있겠소?"라고 마음 편하게 문을 두드릴 수 있는 곳을 찾아서.
그런 곳은 없었다.
아니, 그런 사람은 없었다.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남긴 집은 상속세 내느라 헐값에 팔아버렸고, 친정 언니가 사는 곳은 아이들이 머물 호텔에서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다. 친척처럼 가깝게 지냈던 지인도 없진 않지만, 갑자기 하루 전에 재워달라고 통보할 수는 없다. 남에게 신세 지고 싶어 하지 않는 내 성격 탓이기도 하다.
다음에는 근처 다른 호텔을 검색한다. 미리 예약한 것이 아니니 아이들이 자는 방값 정도는 더 내야 한다. 게다가 독방은 찾기 어렵고 기본이 2인부터 시작한다. 아이들 방에 침대 하나 비워놓았는데, 방 하나 더 잡고 거기에도 하나 비워놓아야 한다니. 낭비다.
다음엔 근처 찜질방을 검색. 아마 옛이야기에서 돈 없는 나그네가 묵었을 주막이 현대에서는 찜질방이 아닐까. 봇짐을 베개 삼았던 시절에는 자그마한 방이었겠으나 지금은 수십 명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묵을 수 있는 큰 방이 되었고, 주모가 개다리소반에 가져다주던 탁주 한 사발이 지금은 텀블러에 담아주는 식혜로 진화했을 수도 있겠으나. 그런데 그렇게 너무나 개방적인 공간이라는 게 겁 많고 걱정 많은 할매에게 오히려 선뜻 다가서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심야 영화를 보고 새벽 두 시쯤 들어오면 아이들이 잠들어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것도 현실성이 없어 탈락. 심야 영화가 시작되는 시간이 이미 내가 한참 잠들어 있을 시간이다. 어찌어찌 버텨 간다고 해도 극장에서 코 골며 자겠고, 영화 끝나는 시간에 누가 깨워줘서 비틀비틀 일어나 나오는 걸 상상하니 내가 너무 한심하다. 추운 겨울, 이 무슨 청승?
그래서 그냥 트리플룸에서 셋이 같이 잤다. 밤새 하하 호호할 줄 알았던 두 아이는 내가 깨어 있는 동안에는 둘이 따로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둘이서만 살짝 나가 산책을 하고 왔다. 나는 호텔 앞으로 야식을 시켜주고, 돈을 내주고, 한 조각 같이 먹어주고, 맨 끝 침대에서 잤다. 딸내미는 잠자리가 바뀌었다고 자주 깼는데, 딸내미 친구는 내 옆 침대에서 내가 깨워주기 전까지 세상모르고 잤다. 누가 내 딸이더라? 누구를 위한 검색이었나?
톨스토이 소설이 생각난다. 한평생 땅을 차지하려고 돌아다녔는데, 결국 마지막에 얻은 것은 죽은 자기 몸 묻을 땅 한 평이 전부였다는. 그러니 너무 많은 생각을 할 필요도 없고, 사실 너무 열일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뷰~'가 끝내주는 수십 억대 아파트에 살든, 하나를 두려면 다른 하나를 치워야 가능한 좁은 집에 살든, 한 생이 끝나고 나면 뼛가루 담을 단지 하나 크기의 공간만 필요하다. 산에, 강에 뿌려버리면 그나마도 없어도 되고.
그러므로.
그저 이 세상에 올 때 벌거벗은 채 왔어도 환대받으며 왔던 것처럼, 저 세상에 갈 때도 그곳에서 환대해 줄 거라는 믿음 하나. 그것 하나만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자.
넓으면 넓은 대로, 좁으면 좁은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자기 한 몸 누운 대로 늘 꿀잠 자는 그들. 고양이들은 가끔 깨달음의 경지를 보여준다. 그것도 귀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