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니 Aug 22. 2022

그렇게 집사가 된다 -4

아주 중요한 일을 하기에 적당한 날이 있다면 그날은 그런 날이 아니었다. 산책을 하려고 집을 나서기도 망설여지는 날이었다.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면 다른 날로 미루고 싶어지는 그런 날이었다. 새로운 가족을 집으로 데리고 오기에 좋은 날이 절대 아니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불길한 사건이 일어나거나 귀신이 등장하기 딱 좋은 날이었다. 며칠째 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했다. 습기를 머금은 공기는 무거웠다. 현관을 나서자마자 턱 숨이 막힐 것처럼 덥고 습하고 불쾌한 날씨였다. 잠시 비가 그치긴 했지만 언제든 비가 쏟아질 것처럼 잔뜩 흐려있었다. 7시가 되기도 전에 이미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7월 10일, 일요일 저녁에 다시 집을 나섰다. 낮동안 더위와 비를 피하면서 휴식을 취한 뒤였다. 나는 끊임없이 몽땅이를 잘 데리고 올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머릿속으로 계획한 대로만 하면 된다고 나를 응원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번 우리는 몽땅이를 바로 만났다. 우리는 몽땅이가 스스로 들어갈 수도 있다는 헛된 희망으로 다시 포획틀을 설치하고 거리를 두고 기다렸다. 모기들이 기다렸다는 듯 물어댔다. 귓가에 모기소리가 공포스럽게 들려왔다. 한두 시간을 그렇게 기다렸던 것 같다. 우리는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어서 작전대로 행동하기로 했다.


이동장의 뚜껑을 위로 열어두고 담요와 둥글고 커다란 주머니 모양의 세탁망을 차례로 덮었다. 이동장에 들어가는 도중에 몽땅이가 발버둥 쳐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바닥에도 담요를 깔아 두었다. 나는 두꺼운 점퍼를 입고 장갑을 꼈다. 몽땅이는 그 와중에도 등을 돌리고 앉아 남편의 토닥임을 받고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남편은 몽땅이가 눈치채지 못하게 등을 토닥이면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나도 최대한 몽땅이와 이동장에 가깝게 자리를 잡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치고 손발이 저린 것처럼 떨렸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몽땅이 뒤에 섰다. 그리고 순식간에 몽땅이를 뒤에서 안아서 이동장에 넣었다. 몽땅이의 몸이 담요와 세탁망과 함께 이동장으로 빨려 들어갔다. 갑자기 당한 일에 당황한 몽땅이가 밖으로 나오려고 발버둥 쳤지만 세탁망 때문에 바로 나오지 못했다. 머리만 간신히 내미는 순간 나는 머리를 누르고 이동장 문을 닫았다. 마치 몇 분이 흐른 것 같지만 겨우 몇 초 동안 일어난 일이었다. 간신히 상황을 파악한 듯 몽땅이는 울기 시작했다. 담요로 이동장을 덮고 우리는 집을 향해 빠르게 걸었다.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쏟아지는 비 때문에 몽땅이를 데려오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마치 운명처럼 하늘이 몽땅이가 우리 가족이 되는 것을 돕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서둘러 집으로 걸어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던 주민이 고양이 울음소리에 무슨 일인가 돌아보았다. 순간 마치 도둑질을 하다가 걸린 사람처럼 떨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서야 온 몸이 땀에 젖었다는 것을 알았다. 갑자기 숨을 쉬기 힘들 만큼 덥고 바닥에 주저앉을 것처럼 온몸에 기운이 빠져나갔다. 몽땅이를 입양하기로 마음먹고 며칠 동안 느껴보지 못한 감정 때문에 괴로웠다. 죄책감이었다. 내가 몽땅이를 입양하는 것이 맞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몽땅이가 우리 집으로 가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없어서 두려웠다. 이제 와서 이러면 안 되는데 마음 한 곳이 불편하게 아파왔다. 엘리베이터에 몽땅이의 울음소리가 애처롭게 울려 퍼졌다. 그 울음소리가 내 심장을 파고들어서 아팠다.


집 현관을 들어서는 순간, 긴장이 풀리면서 이제야 크게 숨이 쉬어졌다. 몽땅이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남편과 내가 오는 동안 몽땅아 우리 집으로 가는 거야 우리 집에서 같이 살자라고 계속 말했지만 몽땅이의 불안과 공포를 없앨 수는 없었다. 몽땅이의 방에 이동장을 놓고 문을 열었다. 잠깐 망설이던 몽땅이가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왔다. 나와 남편의 얼굴을 확인한 듯 잠시 앉아서 숨을 고르는 것 같았다. 10분, 아니 20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몽땅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리번거리더니 화장실 앞에서 냄새를 맡던 몽땅이가 내 옆으로 와서 앉았다. 나는 몽땅아 여기는 우리 집이야. 이제 우리 여기서 같이 살자라고 말하면서 등을 토닥토닥해줬다. 몽땅이는 바닥에 눕더니 허공에 꾹꾹이를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우리가 누군인지 알아서 마음을 놓은 것 같았다. 골골송도 들렸다. 구석으로 들어가 숨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몽땅이는 우리 옆에 있고 싶어 했다. 30분 정도가 지나자 미리 놓아둔 사료를 먹고 물도 시원하게 마셨다. 믿어지지 않을 만큼 편안해 보여서 남편과 내가놀랄 정도였다.


이렇게 몽땅이는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다. 그 밤, 설레고 떨려서 잠을 잘 수가 없었던 밤이었다. 몽땅이를 입양하기로 하고 그 일주일 동안 나는 몽땅이를 만난 1년 반 동안 느꼈던 것보다 더 강한 불안을 느꼈다. 정말 피가 마르고 심장이 타들어가는 공포였다. 우리가 몽땅이를 입양하기로 한 그 일주일 동안 누군가 다른 사람이 몽땅이를 입양하면 어쩌나? 그래서 내가 몽땅이와 영원히 헤어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공포였다. 몽땅이 입장에서 다른 사람의 집에서도 행복할 테니 잘된 일이지만 나는 몽땅이가 입양된지도 모른 채 이 아이를 찾아다닐 생각을 하면 애가 타서 죽을 지경이었다. 입양이 아니더라도 그 며칠 사이에 몽땅이가 다치거나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다행히 몽땅이에게 내가 걱정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밤, 몽땅이는 나의 집에서 처음 잠을 잤다. 오는 동안 내내 울던 몽땅이는 방에 오자마자 울음을 그쳤고 마치 원래 살던 집인 것처럼 편안해 보였다. 나와 남편은 여전히 심장이 쿵쾅거려서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남편과 나는 밤이 늦도록 몽땅이 옆에서 요동치는 심장을 달랬다.

몽땅이를 위해 조명을 낮추고 옆에 있어주었다. 몽땅이는 의자밑에 앉아서 골골송도 하고 그루밍도 하고 허공 꾹꾹이도 했다. 납치(?)된 첫날이라고 믿기 어려울만큼 편안해보였다.


-메인 사진은 입양 둘째날 (11일)에 몽땅씨가 스크레쳐에서 낮잠자는 모습이다.

이전 12화 그렇게 집사가 된다 -3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