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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Aug 12. 2022

그렇게 집사가 된다 -3

금요일이 아침이 밝았다. 아니 그날은 흐리고 비가 왔다. 벌써 한 달 전의 일이지만 기억이 난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는 우산을 쓰고 나갔다. 비가 오는데 설마 몽땅이를 만날 수 있겠어?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래도 나가서 걸어보기로 했다. 몽땅이가 자주 가는 산책로를 우산 쓰고 걸으면서 몽땅이를 불렀다. 설마 했는데 이 녀석이 나타났다. 산책로 옆 산에서 비를 맞아 털이 젖은 채로. 왜 비를 맞고 다니냐고 나는 걱정 섞인 잔소리를 하며 비를 피해 정자 안으로 갔다. 몽땅이는 엉덩이를 보이며 앉았다. 젖은 털이 내 손에 잔뜩 묻었다.


나는 집으로 달려갔다. 전날 대여한 포획틀을 가지고 왔다. 밤에 미리 검색해서 포획 실패가 없다는 꽁치통조림도 준비했다. 이제는 실패가 없다. 비가 오는 거리에 너를 두고 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다시 포획틀을 설치하고 기다렸다. 몽땅이는 강렬한 냄새에 이끌려 가까이 갔다. 살짝 얼굴을 들이밀기도 했지만 역시 빛의 속도로 돌아섰다. 10시 30분까지만 기다릴게 아니면 나는 일하러 갈게라고 말하면서 포획틀을 두고 집으로 갔다. 다시 확인하러 갔을 때 포획틀 바로 옆에서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12시 30분까지만 기다릴게라고 말했다. 나는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일하러 갈 채비를 마치고 다시 포획틀을 확인하러 갔다. 여전히 몽땅이는 자는 건지 고민하는 건지 포획틀 근처에 있었다.

이동장에 들어가기는 싫고 내 무릎에서 자겠다는 몽땅이가 잠들면 안 될 것 같아서 책을 펼쳤다. 그랬더니 옆에서 이러고 주무신다. 나는 속이 타는데 아주 속이 편한 분이다.


나는 아쉬움과 허탈함을 뒤로하고 일을 하러 갔다. 비가 오는 길에 다시 몽땅이가 나가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왜 저 아이는 비가 와도 비를 피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캣맘도 이 아이는 비가 와도 사람들이 다니는 산책로를 걷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본다고 했다. 장마의 시작, 비가 쏟아지는 거리를 몽땅이가 걷고 있을 생각을 하면 마음이 좋지 않았다. 비가 와서 사람들은 산책을 나오지 않는데도 이 아이는 누구를 기다리는 건지, 그 마음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날씨와 상관없이 이 아이가 편안하고 안전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 아이가 다른 길고양이들처럼 비가 오면 비를 피해 숨고, 사람들이 다가가면 도망가는 고양이라면 내 마음이 조금 더 편했을까?


밤에 비가 그친 시간에 남편과 나는 다시 몽땅이를 찾아갔다. 여전히 스스로 포획틀이든 이동장이든 들어갈 마음이 없어 보였다. 몽땅이는 아무리 좋아하는 간식도, 펫밀크도 짜장면도 이겨낼 수 있는 아이였다. 몽땅이의 자제력이란 내가 배우고 싶을 만큼 강했다. 결국 밤이 늦도록 몽땅이의 등을 두드리고 사냥놀이를 했다. 깨끗한 물을 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몽땅이가 따라왔다. 공동현관문 안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그대로 유인해서 집까지 가고 싶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나 계단으로 가기에는 우리 집이 너무 높았다. 도중에 다른 사람이라도 만나면 놀란 몽땅이가 놀라서 도망가다가 위험할 수도 있었다.


남편이 공동현관에서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보면 안 좋을 것 같다며 몽땅이를 다시 산책로까지 데려다주고 왔다. 몇 번이고 다시 따라와서 산책로를 몇 바퀴 돌았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과 나는 헛헛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간식을 먹어댔다. 먹어도 먹어도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다. 그냥 들고 올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예전에 몇 번 몽땅이를 안았을 때 바둥대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대로 이동장이든 포획틀이든 넣었다가는 다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 기다려보자 우리는 또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잠을 자려고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다. 뱃속이 텅 빈 것처럼 자꾸 허기가 졌다. 쉽지 않은 고양이 몽땅이를 어떻게 집으로 데려올 수 있을까? 선배 집사들에게 정보를 얻기 위해 고양이 카페를 밤새 헤매고 다녔다. 몽땅이를 데려오기로 하고 매일 데려오는데 실패했던 4일 동안 나와 남편은 정말 영혼까지 탈탈 털렸다. 이동장에 들어가지는 않으면서 새벽마다, 밤마다 우리 동 앞에서 기다리는 몽땅이의 표정은 참으로 평온해 보였다. 애가 타고 속이 타는 것은 우리였다.


다음날도 다르지 않았다. 계속되는 실패에 남편이 말했다. 아마도 이 아이는 우리와 인연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떻게 찾아온 기회인데 내가 이렇게 날려버리려고 하나 정신 차리자. 포획이 어려운 길고양이 포획방법을 검색하고 그물로 포획하면 더 안전하다는 것을 알았다. 검색 결과 세탁망을 이용해서 포획하면 고양이가 다치지 않는다는 글을 찾아냈다. 전문가용 그물은 무겁고 오히려 어설프게 시도하다가 고양이가 다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세탁망을 샀다. 남편에게 작전을 설명했지만 안될 것 같다며 의심했다. 상관없었다. 난 이제 무조건 행동하기로 했다. 몽땅이와 내가 인연이 아니라면 인연을 만들면 된다.


 머릿속으로 수없이 그림을 그렸다. 이동장의 위치와 세탁망 사용법과 몽땅이를 안아서 이동장에 넣기까지의 시간과 변수까지. 생각만으로 심장이 뛰었다. 무서웠다. 내가 정말 이아이를 다치지 않게 데려올 수 있을까? 정말 이 아이와 나는 인연이 아닌 걸까? 내가 이 아이에게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도 길거리에서 추위와 위험에 노출되면서 살아가는 몽땅이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마음이 굳게 먹었다. 기회는 단 한번, 한 번의 시도로 반드시 성공시킬 생각이었다. 나에게도 몽땅이에게도 두려움과 충격을 줄이기 위해. 주말 내내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온몸이 긴장으로 저릿저릿하게 떨렸다. 거실을 빙글빙글 돌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몸에서 힘이 생겨도 성공이 어려운데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기운을 차리기 위해 뭐든 먹었다. 많이 먹었다.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채우기 위해.


- 메인 사진은 간식 냄새가 솔솔나는 포획틀 바로 위 정자 난간에서 견디고 계신 몽땅님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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