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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Sep 22. 2022

어느 날 고양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고양이와 사는 사람과 고양이와 살지 않는 사람. 아니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과 앞으로 고양이를 좋아하게 될 사람. 나는 45년을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았다. 그리고 1년 반 동안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몽땅이가 길에서 생활하던 일 년 반 동안 나는 몽땅이를 모르고 살았던 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 아이를 몰랐다면 나는 고양이라는 생명체가 지구에 살고 있고, 우리 동네에도 살고 있다는 것 외에, 가끔 아주 이상한 울음소리를 낸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모른 채 잘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이 아이가 지나가는 나를 불러 세웠다. 내 목소리가 들리거나 내가 보이면 나타나 반가워했다. 장난처럼 이름을 지어주고 보니 아는 사이가 되었다. 거기까지였어야 했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냥 아는 고양이, 지나가다 안녕 인사하는 고양이로 거리를 두고 살아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거리두기에 실패한 것이 나였는지 몽땅이였는지는 모르겠다.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길에서 잠드는 이 아이 때문에 나는 집에서도 마음 편히 잠들지 못했다. 추우면 추워서, 더우면 더워서 이 아이가 겪게 될 길생활의 고초가 마음에 걸려서 많이도 울었다.


몽땅이가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남편과 나는 몽땅이를 보기 위해 새벽 일찍 일어났다. 궁둥이를 토닥토닥해주고, 물과 사료를 채워줬다. 몽땅이가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장면을 남편과 나는 신기하게 지켜봤다. 드디어 쉬야를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화장실에서 고양이의 쉬야, 감자를 캐던 나는 깜짝 놀랐다. 감자가 자그마치 세 개였다. 우리가 잠든 사이에 몽땅이는 열심히 농사를 짓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은 저녁에 같이 병원에 가자는 말을 남기고 일을 나갔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잠시 고양이와 시간을 보내던 나는 충동적으로 고양이를 안아 이동장에 넣었다. 고양이가 어깨에 가벼운 상처를 남겼다. 피가 송골송골 맺혔지만 이상하게 아프지 않았다. 이동장에서 고양이는 울었다. 길생활을 할 때 몽땅이는 다른 고양이나 강아지와 자주 싸워서 쌈냥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집에서 몽땅이는 애기냥 같았다. 이동장에서 가련하게 우는 몽땅이의 울음은 엄마를 찾는 애기 고양이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동물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접수를 하고 대기하면서 이런 내가 낯설었다. 세상에 내가 동물병원에 오다니, 내가 반려인이 되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동물병원에서 몽땅이의 몸무게를 재고, 한참을 기다렸다. 몽땅이의 몸무게는 4.8kg이었다. 월요일이라 사람이 아니, 동물들이 많았다. 대기를 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의사 선생님이 아주 꼼꼼하게 환자, 아니 동물, 아니 동물 환자를 진찰하시는 것 같았다. 오면서 애견샵에 고양이 목욕을 예약하고 온터라 일을 하러 가기에는 시간이 안 될 것 같아서 일을 하루 쉬기로 했다.


몽땅이를 진찰하면서 의사 선생님은 드문 경우네요라고 했다. 다 큰 성묘 길고양이를 입양하는 일이 흔하지 않다고 한다.  몽땅이가 중성화 수술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더니 의사 선생님은 몽땅이의 배를 만져보고 말했다. 중성화 수술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배에 수술 흔적이 있다고. 치아 건강이 아주 좋다고 했다. 몽땅이가 소문대로 파양 이력이 있는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전 보호자가 치석제거를 하지 않았다는 가정하에 추정한 몽땅이의 나이는 3살이다. 몽땅이의 귀는 귀진드기 없이 깨끗하다고 했다. 응꼬 검사 결과 몸에 기생충도 없다고 했다. 믿어지지 않는 건강상태였다. 나는 당연히 어느 정도의 진드기와 기생충을 각오했다. 내가 이 아이를 일 년 반 넘게 길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길고양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할 만큼 건강하고 깨끗한 상태였다.


그래도 약을 바르고 가라는 의사 선생님 말에 애견샵에 목욕을 하러 가야 하니 약을 처방해 달라고 했다. 그때 의사 선생님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벌써 애견샵을 예약했어요. 병원에 애견샵까지. 스트레스가 심할 텐데. 이미 예약했다니 어쩔 수 없지만 이제부터는 당분간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아까 고양이가 집까지 자꾸 따라와서 입양했다고 했지만 고양이 입장에서는 그냥 놀자고 따라갔을 뿐 같이 살자는 뜻은 아닐 수도 있는데 갑자기 모든 것이 바뀐 상황이 힘들 거예요."

의사 선생님은 정말 내가 두려워하는 부분을 언급했다. 몽땅이를 데리고 오면서 마음속으로 수십 번 생각했다. 정말 이 아이가 우리와 살고 싶어 할까? 이 아이에게 길보다 우리 집이 더 안전하고 행복한 공간일까? 의사 선생님의 입으로 다시 나에게 물었다. 여전히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마음을 굳게 먹고 몽땅이가 우리 집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기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병원에 애견샵까지 힘들었는지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몽땅이는 갈 때와는 달리 조용했다. 마치 나 혼자 차를 타고 오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병원에서도 애견샵에서도 몽땅이는 얌전했다. 애견샵 사장님의 칭찬을 뜸뿍 받을 만큼. 아마도 너무 무섭고 긴장돼서 저항을 못한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이동장에서 나온 몽땅이는 금세 잠이 들었다. 그로부터 거의 2주 동안 몽땅이는 아주 많이 잤다. 사료를 먹거나 화장실에 가는 것 외에 대부분을 잠을 자면서 보냈다. 왜 저렇게 자는 걸까 걱정될 정도로 잠을 잤다. 잠든 몽땅이를 보면서 길생활의 고단함이 느껴져서 짠했다. 이렇게 편하게 잠을 자주는 것이 고마웠다.


몽땅이가 우리 집에 오고 75일이 지났다. 세 달도 안된 그 시간이 나는 삼 년처럼 느껴진다. 마치 몇 년 전부터 같이 살고 있었던 것처럼 이제는 몽땅이가 우리 집에 있는 것이 당연하고 익숙하게 느껴진다. 나는 이제 몽땅이를 생각하면서 잠을 설치지 않는다. 눈물을 흘리지도 않는다. 남편과 나는 자주 몽땅이를 바라보면서 고양이멍을 즐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만 자고 있는 고양이를 바라보면서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눈다. 고양이가 자면서 귀를 살짝 움직이거나 자세를 바꾸기만 해도 신기해서 우리는 마주 보면서 웃는다. 요즘 나는 몽땅이를 만나지 않았으면 어쩔뻔했냐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이런 행복을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존재한다. 고양이를 만나 행복한 사람과 앞으로 고양이를 만나 행복해질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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