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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an 20. 2023

고양이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몽땅이가 우리 집으로 온 지 어느새 6개월이 지났다. 첫날부터 그랬던 것처럼 몽땅이는 우리 집이 마치 처음부터 자기 집인 것처럼 잘 적응하고 있다. 밤새 울면서 현관문을 나갈 기회만 노리고 있을까 걱정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몽땅이는 많이 울지 않고 금방 적응했고 이제는 밥 달라는 소리나 간식 달라는 소리(고양이 언어를 알지 못하지만 이상하게 꼭 그렇게 들린다.) 외에 우는 날이 거의 없다. 매일 몽땅이를 보면서 신기하고 고마워서 얼굴이 나도 모르게 웃는 모습이 된다.


몽땅이는 집에 오고 한 달 후부터 나와 남편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길에서 살 때는 우리 가족 누구보다 나를 좋아했다. 내 목소리를 들으면 멀리 산에서 뛰어 내려왔다. 유일하게 내 무릎에만 올라와서 잠을 잤다. 물론 길에 살 때도 남편과 아들을 좋아했다. 나를 따라오는 것처럼 남편과 아들을 따라 집 앞까지 오곤 했다. 하지만 몽땅이가 나를 대하는 태도와 남편과 아들을 대하는 태도는 달랐다. 누가 봐도 나를 더 좋아했다. 물론 내가 몽땅이와 몇 시간을 길에서 같이 있어주고 추운 날에도 몇 시간씩 무릎에 안아 재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몽땅이가 달라졌다. 차츰 나보다 남편을 더 좋아한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것은 몽땅이가 우리 집에 오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부터였다. 몽땅이는 남편이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서 현관 앞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남편이 출근하는 새벽에 방문 앞에서 남편이 깨기를 기다렸다. 남편이 쓰다듬어주면 바로 발라당 누워서 꾹꾹이를 하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길에서 해주던 꾹꾹이, 집에 들어오고부터는 가뭄에 콩 나듯 해주는 꾹꾹이를 남편에게는 하루에도 몇 번씩 해주는 것이다. 게다가 몽땅이가 남편의 손베개를 하고 누워있는 모습은 아빠품에서 곤히 잠든 애교 많은 딸의 모습이다.  


아빠팔 베개도 모자라 꼭 붙잡은 몽땅이 두 손!


나는 질투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지인에게 이런 내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 지인은 내 말을 듣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고양이는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는 것이라며 남편과 고양이의 관계를 인정하라고 했다. 물론 나도 우리 가족 모두와 몽땅이와의 관계를 인정한다. 하지만 몽땅이의 마음속에서 3순위로 밀린 것 같은 이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며칠 후 그 지인이 말했다. 처음에 내 말을 들었을 때는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 알 것 같다고. 매일 지인 옆에서 자던 지인의 고양이가 하루는 남편 옆에서 자더라는 것이다. 순간 어찌나 서운하던지 울뻔했다고 한다.


6개월이 지나는 동안 나는 자주 몽땅이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몽땅이는 직설적인 고양이다. 돌려 말하는 법이 없다. 몽땅이의 선택은 언제나 아빠가 좋아였다. 몽땅이는 눈빛으로 행동으로 매일 그 사실을 나에게 말해주고 있다. 책을 읽던 남편이 일어나서 물을 마시러 가면 누워있던 몽땅이는 일어나서 부엌으로 남편을 따라간다. 남편이 다시 책을 읽으러 가면 몽땅이는 남편을 따라 책상으로 간다. 남편이 거실에서 움직이면 몽땅이의 눈은 남편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간다. 마치 한시도 남편의 모습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몽땅 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 몽땅이 입장에서는 내가 곱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마치 예전의 광고 속의 정우성처럼 몽땅이는 나에게 외치고 싶을 것이다. 가! 가! 너 만나고 되는 일이 없어! 이렇게 털을 뿜어대면서 나에게 소리치지 않은 것만도 감사할 일이다. 몽땅이가 집에 오던 날, 믿었던 나에게 강제로 들려서 이동장에 들어가야 했다. 그때 몽땅이가 빠져나오려고 머리를 내밀었는데 나는 본능적으로 몽땅이의 머리를 눌러서 다시 이동장에 넣었다.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몽땅이는 다시 비슷한 과정을 거쳐 이동장에 들어가고 병원에 가야 했다. 병원에 가는 동안, 병원에서 겁에 질려 울던 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내가 몽땅이를 위해서 했던 많은 일들, 예를 들어 목욕과 발톱깎기, 양치 같은 것들이 몽땅이는 아마 많이 불편할 것이다. 그러니 몽땅이는 나만 보면 걸으면서도 경계하듯 뒤를 돌아보는 것이리라. 나는 지금도 몽땅이가 털을 뿜으면서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가! 너 만나고 되는 일이 없어!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해! 그러면서 몽땅이는 구원자처럼 나타난 남편에게 마음의 위로를 받고 있는 것이리라.


그렇다고 몽땅이가 나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우리 몽땅이는 직설적인 성격이다. 내가 가족 중에 세 번째 좋은 것이지 싫은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내가 이마를 만져주면 내 손을 정성스럽게 그루밍해 준다. 간지러워서 손을 빼면 잡아끌어서 그루밍한다. 몽땅이는 잘 때  내 옆에서 자는 것을 좋아한다. 정확하게는 내 다리나 발을 베고 자기를 좋아한다. 요즘에는 내가 잘 시간이 되면 이불 끝에 앉아서 이제 그만 자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불 끄고 잘 수밖에 없다. 내가 누우면 몽땅이는 바로 내 다리를 베고 눕는다. 작은 머리가 내 다리에 누울 때 느껴지는 무게, 그 무게가 참 좋다. 잘 때는 내 옆에서 자니까 그래도 참 좋다고 나는 나를 위로한다. 남편도 아들도 방에 들어가서 자니까 몽땅이와 자기 위해 거실에 자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래서는 아닐 것이다. 분명 몽땅이는 내 무릎에서 잠들던 6개월 전의 기억을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매일 밤이면 아무도 몰래 내 무릎에 몸을 기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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