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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Feb 16. 2021

선배, 나는 독신주의거든요!

선배, 나는 독신주의예요. 결혼할 생각도 없고 애는 절대 안 낳을 거예요.

남편과 나는 같은 대학 같은 과 선후배 사이였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남편과 차를 마시면서 내가 한 말이다. 그날 우리는 찻값이 부족해서 한잔을 시켜서 마시고 있었다. 학교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얼굴만 아는 선배(후에 남편)가 왔다. 정말 우리는 얼굴만 아는 사이였다. 선배구나 하고 마주치면 고개만 숙여서 인사하는 정도의 사이. 그런데 내가 갑자기 선배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선배 아이스크림 먹을래요?


우리는 버스정류장 앞의 편의점에서 남편은 메로나를 나는 스크류바를 사서 먹었다. 정말 말도 안 해 본 사이였던 우리가 그러고 있었다. 그리고 버스가 오고 우리는 아는 사이에 따로 앉기도 뭐해서 나란히 앉아서 전철역으로 갔다. 전철역에서 내렸는데 내가 또 우리 커피 마시러 갈까요? 했다. 선배는 엄청 망설였다. 두 사람이 마실 찻값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때 선배는 제대 후에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용돈을 받았는데 용돈이 말도 안 되게 적었다. 사실 워낙 금욕적인 사람이라 그 정도의 용돈으로도 살 수 있는 사람이긴 했다. 그때 당시 선배는 정말 학교와 집을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했다. 그래서 차비 외에 별로 돈이 안 들긴 했다. 나는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지만 술값으로 대부분 탕진하고 아슬아슬 버티고 있던 중이었다.  그래도 자꾸 커피 한잔 하자는데 거절하기 힘들었던지 주머니에서 잔돈까지 모아서 우리는 근처 찻집으로 들어갔다.


찻집에서 차를 시키고 앉자마자 내가 한 말이다.


선배, 나는 독신주의예요. 결혼은 절대 안 할 거고 결혼한다고 해도 애는 낳을 생각이 없어요.


우리가 결혼 후에 지인들과 술자리나 여행을 갔을 때, 밤은 깊어가고 더 할 말도 없을 때 '그런데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났어요?'라고 누군가 물어볼 때마다 남편은  이 이야기를 한다. 처음 만나서 차 한잔 마신 것 것뿐인데 무슨 프러포즈라도 받은 사람처럼 정색하고 말했다고. 심지어 차도 자기가 먼저 마시자고 했으면서 그때 얼마나 황당하고 어이없었는지 웃으면서 말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다들 재미있어했다. 내가 지금 생각해도 웃음밖에 안 나오는 말이긴 했다. 그때 선배는 '저 얘기를 왜 하는 거지? 나는 쟤랑 사귈 마음도 없는데'라고 생각하면서 독신에 대한 나의 일장연설을 듣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웃기게도 우리는 썸을 타다가 그냥 사귀게 되었다. 그때도 우리의 관계는 심각하지 않았다. 결혼 후에 남편은 그때 어차피 한 달만 만나고 헤어질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는 6년을 만났다. 6년의 연애 중 3년은 피 터지는 시기였다. 얼마나 싸웠는지 만나서 인사하고 싸우고 화해하거나 화해하지 않거나가 데이트 코스였다. 남편은 정기적으로 이별을 통보했는데 나는 그때마다 갖은 방법으로 남편을 붙잡았다. 나머지 3년은 종전과 함께 평화가 찾아왔다. 어느 정도 서로를 파악한 뒤라 우리는 싸우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이 때도 남편은 생각했단다. 어차피 쟤랑 결혼할 건 아니니까. 나 역시 어차피 독신주의니까 결혼은 염두에 없었다.


남편을 잡은 것은 언제나 나였다. 버스정류장을 시작으로 남편의 많은 이별통보에도 나는 악착같이 남편을 붙잡았다. 내가 남편에게 매달린 것은 차가움 때문이었다. 남편은 나에게 어떤 열정도 없었던 것 같다. 보통 연애를 시작하면 서로가 서로에게 푹 빠져야 하는데 남편은 내가 싫진 않지만 빠져 있진 않았다. 그런데 그게 묘하게 나를 자극했다. 남편은 내가 부탁을 하면 '자기 일은 자기가 하는 거야'라고 했다. 연인끼리 해줄 수 있는 부탁도 잘 들어주지 않는 편이었다. 연애 시작부터 연인을 집에 데려다주고 헤어지기 싫어서 뭉기적대는 법이 없었다. 남편의 집 방향으로 가는 전철이 오면 전철역에 나를 두고 먼저 갔다. 그러면 아무도 없는 것처럼 텅 빈 전철역에서 나는 전철을 기다렸다. 내가 '집까지 데려다주면 안 돼?'라고 하면 '굳이?'라고 하면서 붙잡는 내 손을 놓고 갔다. 나는 이상하게 자꾸 남편을 붙잡고 있었다. 만난 지 4년 5년이 지나도 결혼 이야기가 없었다. 결국 내가 결혼하자고 말했다. 남편은 정말 심각하지 않게 '왜?'라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독신주의 나는 또래 친구들 중에 가장 먼저 결혼했다. 28살이었다. 친한 친구들은 한창 연애와 실연을 왕복하고 있었다. 친구들은 독신주의 나의 반전 같은 결혼을 놀리면서도 축하해줬다. 남편이 3년간의 직장생활에서 번 돈으로 우리는 방한칸 원룸에서 시작했다. 내가 모은 돈으로 가구를 샀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내가 결혼을 한 것이었다. 내 주변에 결혼해서 행복한 사람은 없다고 절대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겠다던 나는 차가운 남자에게 받지 못한 열정에 목말라서 덜컥 사고를 친 것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낯선 도시에서 낯선 집에서 살고 있었다. 엄마와 함께 살 때는 하지 않았던 사소하고 손이 많이 가는 집안일들과 낯선 곳에서 다시 얻은 직장에서 적응하느라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나는 결심했다. 이렇게 무너졌지만 절대 아이만은 낳지 않겠다고. 내가 얼마나 아이를 싫어하는지 세포가 기억하고 있으니 이번에는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는 딩크로 살기로 했다. 아니 애초에 아이를 낳겠다 낳지 않겠다 별다른 철학이 없던 남편은 나의 어이없는 선언에 마지못해 선서를 외치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또래에서 가장 나중에 임신을 한 독신주의 여자가 되었다. 나는 섣불리 미래를 다짐했던 가벼운 나의 인생관을 반성하면서 살고 있다. 어차피 계획대로 되지 않을 인생이라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는 사람처럼 살아야 했다. 그랬다면 내가 했던 말이 안주가 되어 취기가 오른 밤에 맥주와 함께 마시는 웃음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다. 나의 우스꽝스러운 객기가 어느 밤 늦게까지 이어진 파티에 노곤한 웃음을 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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