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집사에게 먼저 온 봄
2월의 마지막 날,
오늘 천천히 살금살금, 깨금발로 봄이 왔다. 독서모임을 마치고 도서관에서 김금희님의 식물적 낙관을 빌려왔다. 점심을 먹고 책을 펼쳤다. 서문 : 식물 하는 마음-살면서 나는 종종 식물 기르기에 빠졌다가 다시 나와 그 취미를 접어두곤 했다. ”- 을 읽자마자 거실에서 겨울을 나고 며칠 전 베란다로 나간 내 식물에 눈길이 갔다.
2020년 갑자기 보도듣도 못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의 삶을 지배해 버렸다. 일상이 멈추었던 그때도 봄은 땅 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심도 없이 무심히 우리 곁에 왔고, 나는 따뜻한 햇빛 아래에서 갑자기 남아도는 시간을 식물을 돌보는 데 사용했다. 다육이가 뭐가 좋다고 키우는지 이해를 못 했던 내가 지인들이 나눠준 다육이들을 들여놓고, 이쁜 다육이를 보면 구입하고, 햇빛에 달달 구워지면 끝부터 발그레 빨게지는 다육이를 이리 돌리고 저리 보며 돌봤다. 이파리가 초록초록한 관엽식물들에게도 마음이 갔다. 같은 초록색이지만 다 다른 색과 무늬와 질감들. 떡갈고무나무의 투박한 잎도 좋았고 볕에 따라 연해지고 진해지는 유록과 초록의 색을 함께 가진 뱅갈고무나무도 좋았다. 스파티필름의 백합 같은 흰 꽃(사실은 잎의 변형)도 사랑스러웠다. 밤새 뾰족하게 돋아난 새잎의 기도하는 손같은 모습에 호들갑을 떨고 분갈이 후 떨어져 나온 잎과 가지를 소중하게 물꽂이했다. 언제 뿌리가 나오는지 기다리다 지치면 폭풍검색하며 날짜를 헤아렸다.
진잎을 떼어내고 물이 마르지는 않았는지 벌레가 생기지 않았는지 살피다가 끈적한 분비물이 나오는 깍지벌레를 처음 본 날은 혼비백산했다. 징그러운 벌레는 질색팔색하던 내가 해피트리에 약도 뿌리고, 퇴근하면 만사제치고 베란다로 나가 한 시간씩 이파리들을 이리저리 뒤집어 가며 깍지벌레를 면봉으로 눌러 전멸을 시켰다. 내가 해냈다.
초록잎들이 좋았고 야들야들 부들부들 자라나고 꽃 피우는 모습이 좋았다. 그러다 보니 화분들은 내 베란다를 점령해 버렸다. 그럼에도 갖고싶은 식물들의 목록은 늘어만 갔다. 베트남에서 만난 핫핑크색꽃을 가진 일명 페이퍼플라워 부겐베리아도 갖고 싶었고, 백일동안 핀다고해서 백일홍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배롱나무도 내 발코니에 놓고 나만 보고싶었다. 보라색꽃으로 피었다가 흰꽃이 되는 브룬펠시아 재스민도 신기했다. (부룬펠시아 재스민은 향기속에 섞인 미묘한 거름냄새가 지독해서 바로 포기했다.)
이사 가는 날 크고 보기 좋은 화분 몇 개를 당근으로 떠나보내고도 결국 1톤 트럭 한 대를 추가해서 식물을 옮겨왔다. 이사 온 첫 해 식물을 거실로 옮겨놓았는데 베란다서 월동한 큰 화분들은 추위를 견디지 못했다. 남쪽지방에서는 잘 견뎠는데… 두 번째 겨울 거실을 장악해 버린 식물들을 따뜻한 날이면 베란다에 꺼내놓고 물을 주고 다시 거실로 들여놓던 남편이 힘들었는지 청천벽력 같은 선언을 했다. “화분 이제 정리하지~!!!(정리해!!!)” 미안한 마음에 그만 “알았어. 내년엔 나눔 할게”라고 약속해버렸다.
햇빛이 너무 좋았던 오늘,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고 따뜻한 햇빛을 쪼여주다가 갑자기 정말 갑자기, 한 개 또 한 개 분갈이를 하다 보니 해 질 무렵에야 분갈이가 끝났다. 보내려면 분갈이는 해줘야 할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해놓고 보니… 못 보내겠다. 이제 분갈이한 식물이 뿌리가 잘 정착되었는지 기다려야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