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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쿠 Aug 06. 2023

자랑보다는 아재개그

청소하느라 카운터에서 멀어져 있었다.

"여기요"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매장 전체에 울렸다. 바닥을 닦던 걸레를 내려놓고 카운터를 향해 뛰었다. 기다리는 손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담배 드릴까요?"

매일 레종 블랙을 사러 오는 중년의 손님이다.

"자리에 없어서 아주 애타게 불렀소!"

담배 이름을 말하는 대신 농담을 걸어온다.

"죄송해서 저도 애타게 뛰어왔네요."

손님은 기가 막혔는지 육성으로 터져 웃었다. 뛰길 잘했다. 농담을 받아칠 수 있었으니.  유쾌하게 웃는 아저씨를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또 다른 중년의 손님이 아이스크림을 골라 계산한다. 매일 붕어싸만코 3개를 사는 손님으로 대화는 없지만 단골이라 말할 수 있다. 어쩐 일인지 오늘은 말을 걸어온다.

"날씨가 너무 덥네. 가다가 녹으면 다시 바꿔줘요?"

50대 이상의 아저씨들은 실없는 농담을 참 좋아한다. 그리고 자신의 농담을 받아쳐 주길 은근히 기대한다.

"녹지 않게 최대한 빨리 뛰어가세요."

비슷한 연령대의 아짐(아주머니의 사투리)으로서 아재 개그는 딱 내 수준이다. 맞받아치는 건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 아짐 개그가 맘에 들었는지 아재 손님은 헛웃음인지 코웃음인지 찐 웃음인지 모를 호탕한 성량을 뽐내었다. 몇 년여에 걸쳐 축적된 나의 손님 분석 데이터에 의하면 아재들은 참으로 유머를 좋아한다. 개그에 진심이다.


붕어싸만코 아재가 나간 길로 아주머님 한 분이 들어오셔서 쓰레기봉투를 산다. 인근 건물을 청소하는 아주머니로 주기적으로 대형 쓰레기봉투와 청소용품을 산다. 매번 사가는 물품으로 새로울 것도 없는 쓰레기봉투를 왜 사는지 오늘따라 부연 설명을 시작하더니 어느새 휴가 다녀온 이야기로 연결된다. 적절한 말로 맞장구를 치며 손님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여러 사람과 함께 한 휴가 기간 내내 먹은 음식들이 하나같이 비싸고 좋은 것들이라 배부르게 잘 먹고 잘 놀았다는 내용이었다. 모두가 흡족해한 비싼 음식은 자기 남동생이 주문해서 싸 왔으며 귀한 음식을 살 수 있었던 건 동생의 직업이 의사라 돈을 잘 벌기 때문이라는 상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동생분이 의사세요?"

알아주길 바라는 아주머니의 마음에 화답했다. 적절한 반응에 흡족해진 손님은 본격적으로 의사 동생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동생의 현재 삶은 물론이고 어느새 학창 시절로 이어졌다. 듣고 보니 휴가 이야기로 포장된 동생 자랑이었다. 주기적으로 오는 손님이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자랑이라 이 정도는 나도 호감을 가지고 재미있게 들을 수 있다.


그에 비해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 네 번 자동 재생 되는 자랑은 솔직히 불편하다. 70대 아저씨 손님이 들어오면 의도적으로 바빠진다. 올 때마다 자식들 자랑을 하느라 10분은 기본이고 길게는 30분 동안 나를 붙잡고 얘기하는 손님이다. 처음엔 대단하다는 말을 연신 내뱉으며 부럽다는 표현을 했지만, 매번 같은 이야기에 이제는 조금 곤욕스럽다. 다행히 다른 손님이 계산할 때면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기다려 주는 센스를 발휘한다. 그렇다고 쉽사리 가시지는 않는다. 내 몸을 바삐 움직이는 일이 생겨야 퇴장하시니 자식 자랑이 시작된다 싶으면 일을 만들어서 한다. 미안하지만 어느새 부담스러운 손님이 되었다.


점잖은 할머니의 자녀들은 그야말로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다. 아들딸, 며느리 사위가 '사'짜 직업으로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러울 만하다. 그래서일까? 매번 그 사실을 드러낸다. 조곤조곤한 말투로 아들이 어느 병원에서 의사를 하는지, 딸은 어느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지 알려주는데 매번 듣는 이야기라 외울 지경이다. 이미 아는 내용이라 점점 작아지는 나의 반응에 내가 못 들었는지 확인차 다시 한번 말씀하신다. 자랑할 만한 자녀들임이 틀림없다. 내 아이들도 잘 자라 의사 변호사 교수는 아니더라도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 게 부모 마음이니까.


할머니와 나의 대화 초점이 다른 듯하여 아쉽다. 건강이 안 좋아진 할머니는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많았다. 오랜만에 뵈면 건강은 어떠신지 안부를 묻게 되는데 그 타이밍이 할머니에겐 자랑 시간이다.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게 되었는데 아들 덕에 병원에서도 편했으며로 시작되어 딸 사위까지 등장하게 되는.. 나는 순수하게 할머니의 건강을 걱정한 인사였는데 이야기는 항상 다르게 흘러가니 씁쓸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할머니의 자녀 교육 비법이 궁금하다만 같은 이야기를 계속해서 듣는 것에 지친다. 특히 요즘처럼 계속되는 폭염에는 더욱 그렇다. 뜨거운 공기에 숨이 막혀 진열과 청소를 마치고 나면 입맛도 뚝 떨어진다. 선풍기 바람 아래 가만히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때 시작되는 자랑은 타이밍을 못 맞춰도 한참 잘 못 맞췄다. 이왕 할 자랑이라면 봄, 가을이 좋겠다. 선선한 날씨에 마음의 여유까지 더해져 지금보다 더 차분하게 집중하며 들을 수 있다.


폭염으로 지치는 요즘은 자랑보다는 차라리 아재 개그가 낫다. 실없다지만 한 번 웃기라도 하지 않은가? 헛웃음이든 코웃음이든 찐 웃음이든 한 번 크게 웃고 나면 잠시 더위를 잊게 되니 그야말로 효과만점이다. 자랑은 봄, 가을에 아재 개그는 사시사철 환영합니다~.





                          (하루 종일 물속에 있고 싶은 더위입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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