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도시락이나 삼각김밥은 없나요?"
"현금 지급기 있어요?"
하루에 두세 명은 편의점에 있을 법한 물건과 편의시설을 묻는다. 편의점 도시락과 삼각김밥, 컵라면 조리 기구와 커피머신은 확실히 마트와 다른 장점들이다. 게다가 우리 가게에는 아직 들어오지 않은 신상 제품들이 편의점 진열대를 차지하고 있을 땐 부럽기까지 하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난 이미 졌다. 편의점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고 어떤 곳인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제일 먼저 편의점 점주들의 카페에 가입하고 필요한 정보를 검색하며 하나하나 읽기 시작했다. 유튜브로 편의점 회사별 장단점과 수익 구조를 시청하며 필기했다. 특히 마트에서 편의점으로의 전환 사례들은 더 눈길을 끌었다. 실제 사례자의 경우에, 우리 마트의 평수, 하루 매출, 하루 방문객 수, 객 단가(방문객 1인당 소비 금액) 주변 세대수를 대입해 보며 내가 편의점으로 전환 시 매출 변화를 추측해 보았다. 해볼 만했다. 알아갈수록 편의점 운영은 매력적이었다.
편의점의 유혹(?)에 더 쉽게 빠져들었던 이유는 또 있다. 마트에서의 일상을 써보겠다고 다짐했을 때 관련된 내용의 책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마트는 아니지만 비슷한 업종인 편의점 점주님들이 쓴 책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봉달호 작가님의 매일 갑니다, 편의점 / 오늘도 지킵니다, 편의점 등이 있다. 박규옥 작가님의 싸가지 없는 점주로 남으리 또한 솔직한 입담으로 많은 공감을 자아냈다. 두 작가님의 책을 읽을수록 편의점에 대한 호감도는 더 상승하였다.
검색을 통해 터득한 이론이 축적될수록 실제 운영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평소 알고 지내는 편의점주는 없다. 아는 사람을 통해 건너 건너 물어야 하나? 누굴 통해야 하나? 고민하는 퇴근길, 집 앞 편의점이 눈에 들어왔다. 가끔 가는 깔끔한 편의점이다. 게다가 점주는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여자로 서글서글한 성격 같았다. 무작정 들어가 점주님에게 인터뷰를 시도했다.
"안녕하세요? 저는요 앞 동에 사는데요. 다른 동네에서 마트를 하고 있어요. 요즘 편의점에 관심이 생겨 전환해 볼까 생각 중인데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네요. 혹시 시간 괜찮으세요?"
참으로 감사하게도 흔쾌히 응해주었다. 인터뷰뿐 아니라 설비를 제대로 갖춘 큰 규모의 편의점을 몇 개씩 운영하는 점주님도 연결해 주었다. 역시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있어. 이렇게까지 도움을 주리라 생각 못 했는데 일이 술술 풀려 편의점은 한 걸음 더 나에게로 다가왔다. 소개로 방문한 편의점은 나의 이상형에 가까웠다. 넓은 평수, 깔끔하고 환한 매장, 요즘 젊은 세대들이 좋아할 만한 디자인의 잡화들, 친구랑 싸게 먹기 좋은 2+1 행사 상품들, 다양한 신제품 등 모든 것이 내가 꿈꾸는 매장이었다. 특히나 와인 진열대를 멋지게 꾸며 편의점인지 대형마트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점주님은 본인도 마트를 편의점으로 바꾼 경우라며 일매출 변화의 상세 금액까지 알려주니 당장이라도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지금까지 마트를 붙들고 있는 우리 부부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두 눈을 반짝거리며 또다시 인터뷰를 시작했다. 수익구조와 야간 영업의 장단점, 반품 처리에 대한 부담, 재고 처리 방법, 회사의 편의 제공 등에 관해 자세히 물었다. 나의 들뜬 초심에 점주님도 흥이 나 아주 자세히 대답했다. 점주님이 운영하는 또 다른 편의점을 알려주었고 바로 견학 가는 열의를 보이니 짝짜꿍 쿵 짝짝 죽이 잘 맞았다. 편의점으로 전환 시 최대한 좋은 조건으로 계약할 수 있게끔 노하우도 알려주겠다고 하니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그날부터 GS25, CU, SEVENELEVEN, 이마트 24 등 주변의 편의점들을 구경 다녔다. 매장 인테리어와 진열 방식을 비교해 보며 머릿속으로 나의 편의점을 그려나갔다. 설렘이 최고조에 이르러 이미 계약하고 교육받는 단계의 기분이었다. 이제 남은 건 남편의 동의뿐이다. 남편에게 그동안 모은 정보를 펼쳐 보이며 편의점의 장점을 늘어놓았다.
편의점의 장점
1. 편의점은 본사와의 거래이니 우리처럼 50개가 넘는 거래처의 결제 및 상품 관리를 일일이 할 필요가 없다.
2.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더우나 추우나 물건 사러 물류센터를 다니며 고생할 이유도 재고를 쌓아 둘 필요도
없다. 매장에서 매일 필요한 만큼의 물건을 받으면 된다.
3. 배달앱을 통해 배달원을 부르니 매장에 근무자가 많을 필요가 없다. 한 명이면 된다.
4. 편의점은 비싸지만, 신용카드 할인, 통신사 할인, 2+1 제품을 잘 활용하면 마트보다 싼 경우가 많다.
5. 잡화 제품들이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디자인으로 눈길을 끈다.
6.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와인이며 술 종류가 다양하고 고급화되어 있다. 담배 또한 신제품들이 마트보다 먼저 입점한다.
7. 시장조사를 따로 하지 않아도 본사에서 신제품들을 쏟아낸다. 즉 트렌드를 잘 따라간다.
8. 온라인 슈퍼, 식자재마트 등 여러 이유로 개인 마트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갈 것이다.
편의점으로 전환해야만 하는 이유는 많고도 많았다. 적어도 나에게는. 남편은 본래 프랜차이즈 운영을 싫어하는 사람이라 단칼에 거절했다. 씨알도 안 먹힐 일을 한 달이 넘도록 알아본 내가 바보다. 거절은 했지만 철저한 분석과 시장조사가 조금은 마음을 움직였던 것일까? 남편은 다른 지역에서 편의점을 하는 친구들에게 전화해 이것저것 직접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선 편의점을 하면 안 되는 이유를 나에게 숫자까지 세어가며 설명했다. 마음이 움직이기는..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편의점 단점
1. 대기업과의 계약은 내가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두지 못하는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위약금 문제!
2. 매장에서 물건을 받지만, 진열은 내가 끝마쳐야 한다. 마트는 거래처 직원들이 진열까지 마칩니다.
(하지만 물류센터에서 사 온 물건은 내가 직접 진열하니 큰 차이는 없을듯한데.)
3. 젊은 세대는 편의점을 좋아할지 모르나 어르신들은 편의점에 대해 비싸다는 생각이다.
우리 동네는 토박이들이 많지 않은가?
4. 우리는 적립금을 쌓고 쓰는 경우가 많은데 편의점은 적립금 시스템에 한계가 있다.
5. 편의점은 반품 처리에 회사 규정이 있어 100% 처리가 안 되어 자금적으로 부담스럽지만, 마트는 100% 반품이 되니 부담이 덜하다. (우리도 반품이 안 되는 품목이 여럿 있지만 비율적으로 따지면 그렇다는 이야기)
6. 동네 특성상 야채, 과일, 정육을 갖추어야 하는데, 편의점은 역시 한계가 있다.
(얼마 전, 편의점에서 정육도 판다는 뉴스를 보긴 했습니다만 내가 다녀본 곳은 신선 제품이 많이 없었다.
편의점 4개가 몰려있는 오피스텔 사람들조차 신선 제품을 사기 위해 우리 가게를 찾아오니까.)
7. 무인 매장, 아이스크림 할인점 등이 동네마다 생겨 편의점도 어려운 상황이다.
등등하지 말아야 할 이유도 꽤 많았다. 몇몇은 공감이 되는 내용이다. 나조차 편의점과 마트를 비교하며 현재 우리의 시스템과는 조금 맞지 않다고 생각한 부분이었다. 분하지만 또 졌다. 현실적으로 아직은 마트를 유지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편의점으로의 전환은 보류상태이다. 최고조를 찍던 편의점에 대한 호감도는 미련 없이 곤두박질쳤고 (매력적이고 유혹적이었지만 나도 내키지 않은 구석이 있었나 보다.) 언제 그랬냐는 듯 마트에서 오늘도 하루를 보내고 있다.
올해 불경기는 마트계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마트 폐업 소식을 꾸준히 접하고 있으며 그중 일부는 편의점으로 전환했다. 인테리어와 설비는 물론, 권리금까지 챙겨주니 마트 점주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편의점으로의 전환 후 하루 매출과 본사와의 이익분배에 관해서는 매장 위치, 계약 조건에 따라 천차만별이니 내가 쉽게 말할 부분은 아니라 생략하려 한다. 분명한 건 동네 마트들이 점점 사라지고 골목마다 대기업의 똑같은 편의점이 들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좋다 나쁘다를 따지기엔 이미 트렌드가 되었다. 우리의 서랍에도 각 편의점 회사 영업맨들이 주고 간 명함이 십수 개는 쌓여 있으니 말이다.
동네 빵집은 파리바게뜨가 대신하고, 집 앞의 개인 커피숍 자리엔 메가와 컴포즈 등 저가 커피숍이 들어섰다. 이젠 마트가 사라질 차례인 듯싶다. 내가 쓰는 일상이 동네 마트의 마지막 기록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옛 추억을 떠올리고 그리움을 자아내는 동네 슈퍼의 주변 풍경은 인스타 일러스트에서만 볼 수 있는 지금처럼. 우리도 몇 년 후면 선택이 아닌 환경적 필요에 의해 대세를 따라 할지 모를 일이다.
아! 편의점에 대해 알아보며 가장 큰 수확은 바로 집 앞 편의점주님이다.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비슷한 서비스 업종이라 말이 잘 통한다. 쉬는 날이면 집 앞 편의점에 놀러 가 커피 한잔하며 마트 경기, 편의점 경기를 이야기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안심시킨다. 동네 돌아가는 이야기도 하며 지낸 지 벌써 2년째다. 첫째는 학원 가기 전 들러 간식을 사 먹으며 인사하고 둘째는 편의점에 들어설 때마다 우리 엄마 친구라며 반가워한다. 좋은 사람이 곁에 남았으니, 그보다 더 큰 성과가 어디 있겠는가? 새로운 인연에 감사하다.
한참 편의점과 마트를 비교할 때 장기하의 부럽지가 않아를 듣게 되었다. 가사를 들으며 마트와 편의점을 비교 대상으로 삼아도 재밌겠다는 생각에 개사를 해보았다. 그저 재미로 한 거니 같이 즐겨보아요~
https://youtu.be/eJ8Uzf57ZSI?si=REREdl4UxS1hDP4r
야
편의점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아
한 개도 부럽지가 않아.
니가 하는일이 많겠니?
내가 하는 일이 많겠니?
난 잘 모르겠지만
한번 우리가 이렇게 한번
머리를 맞대고 생각을 해보자고.
너한테 매장이 여러 개 있고
나한테 매장이 겨우 하나가 있어
그러면 상당히 너는 바쁘고 힘들겠지. 짜증 나겠지.
근데 입장을 한번 바꿔서
우리가 생각을 해보자고.
나는 과연 매장 하나라 행복할까?
내가 더 한가해서 만족할까?
아니지
세상에는 앉아서 돈 버는 놈도 있지
난 그놈을 부러워하는 거야
짜증 나는 거야
누가 더 짜증 날까?
널까 날까 몰라 나는
근데 말이야.
너는 알바생 많아서 관리 힘들지?
나는 알바생도 겨우 하나야. 부부가 같이하거든.
그래서 우린 알바생 관리 할 것도 없어.
나랑 남편이랑 싸우지만 않으면 되는 거야.
부럽지? 인건비 아끼고 참 좋지?
근데 남편이랑 싸워서 한 달째 매장에서도
말 안 하느라 개짜증나는 건 비밀로 할게.
알바생은 가게에서 빠빠이 하면 그만이잖아.
난 집에서도 남편을 보고 묵언수행 중이야.
근데 밥도 차려줘야 해.
니가 힘들겠니? 내가 힘들겠니?
난 너희가 하나도 부럽지가 않아.
너희 입고 수량 체크 힘들다고?
난 전혀 부럽지가 않아.
우린 하루에도 트럭이 몇 대씩 오거든.
시간을 종잡을 수 없어 밥 먹다가도
뛰쳐나가야 해.
전혀 부럽지가 않아.
너희 회사 브랜드 로고 박힌 트럭이
멋있게 매장 앞에서 물건 내리잖아?
그거 하나도 부럽지가 않아
우린 차 끌고 나가서 직접 장을 봐.
영하의 날씨에 머리카락 날리며 과일 공판장 가본 적 있니?
내물내장!!
내 물건은 내가 장 보는 거야~
트럭? 전혀 부럽지가 않아.
[베이비가 타고 있습니다] 스티커 박힌
우리 승용차에서 물건이 한도 끝도 없이 나와.
조수석 뒷좌석 좌석 밑 트렁크.
화수분처럼 계속 나와. 물건 빼다 허리도 나가.
트럭 전혀 부럽지가 않아.
너희 정산하려니 긴장탄다고?
정산 날에는 시계만 바라본다고?
난 전혀 부럽지가 않아.
어.
우리 생각을 해보자고.
본사랑 계약한 니가 정산할 게 많겠니?
대리점마다 계약한 우리가 정산할 게 많겠니?
우린 거래처 파일이 50개가 넘어.
정산? 내가 하면 되는 거야.
파일 수십 개 하나하나 눈 빠지게
계산기 두드려 이틀 정도 입금하면
수익금 나와. 근데 눈물도 같이 나와.
그러니 앉아서 기다리기는 너희가
전혀 부럽지가 않아. 내가 먼저 울 수 있거든.
너네 더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더 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난 부럽지가 않아
폐업? 너네 본사랑 위약금 계산하지?
우리도 50개의 대리점 고정 미수부터 따져야 해.
또 여기저기 전화하고 50개 정산하면 되는 거야.
전혀 부럽지가 않아
한 개도 부럽지가 않아.
난 여러 매장 관리하느라 바쁜 니가
하나도 부럽지가 않아.
야간 영업하는 거 부럽지가 않아
나도 말은 사장인데
온갖 험한 일 궂은일 다 하거든..
명절? 여행? 개나 준 지 오래야.
우리 애들 소원이 비행기 타는 거야.
시간 없다는 너희. 난 전혀 부럽지가 않아.
내가 제일 부러운 놈들은 일 안 하고
앉은 자리에서 돈 버는 놈들이야.
너나 나나 일하다 골병들 팔자거든.
그러니까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
나는 부럽지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