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이쿠 Oct 08. 2023

반품을 찾아라!

반품량은 매출 실적과도 같다. 입고된 물량 깔끔하게 모두 팔아 없애면 좋겠지만 반품 0에 도전하는 건 동화 속의 용과 같다. 존재하지 않지만, 그 어딘가에 존재할 거라 믿고 싶은 전설.(그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전설의 주인공이 되고자 반품을 최소화하려 최대한의 노력을 해도 품목별 반품량은 언제나 내 예상을 뛰어넘는다. 이달에도 그렇다.


매달 말일이 다가오면 제일 먼저 라면, 과자류 코너에 진열된 물건 하나하나 유통기한을 확인한다. 날짜가 이미 지났거나(이런 경우를 대비해 카운터에서 스캐너가 바코드를 스캔하는 동안 나의 눈은 재빠르게 날짜를 스캔한다.) 곧 임박한 제품은 따로 빼내어 박스에 보관한다. 다음 달 초 물건을 넣으러 온 거래처에 반품 처리를 하는데 아주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부담하는 비용은 없다. 매달 말일에 확인하던 반품양을 올여름부터는 분기별로 바꿨다. 3개월에 한 번, 즉 3개월 후 날짜에 속하는 모든 제품들의 날짜를 메모해 뒀다가 달력에 옮겨 적는다. 매일 아침 날짜에 해당하는 반품들을 빼내면 되므로 한결 수월해 앞으로는 계속 이 패턴을 유지할 생각이다.


분기별 작업이 가능한 이유는 라면, 과자류의 유통기한이 6개월에서 1년으로 길어서이다. 달력에 표시해 둔 날짜 전에 팔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혹시라도 놓쳐서 가게 이미지 나빠질까 봐 신경을 쓴다. 그런데 이달은 반품 풍년이라 줄을 세워 보았다. 드라마 도깨비 속 공유는 편의점에서 도깨비 신부에게 여기서부터 ~~~기까지 다 사줄 수 있다고 유혹하는데 나는 거래처에 여기서부터 ~~기까지 다 반품을 쳐야 한다고 미안해한다.

짱구도 힘을 못 쓴 초코비(아이들이 없는 동네라 안 팔릴 거라고 힌트를 줬는데도 넣더니 이런 대참사가….)

농담이 아니라 반품이 많을수록 거래처 앞에서 작아지는 나다. 부끄럽고 미안하여 괜히 이런 말 저런 말을 해가며 애써 진심을 전하고 커피 한 잔으로 거래처 사장님의 쓰라린 마음을 위로한다.



반품이 과자만 있으면 얼마나 다행이겠는가?! 동서식품 커피류는 물류센터에서 직접 사 온다. 물류센터 물건은 대리점과 달리 100% 환불이 어려울 때가 있다. 반품 처리에 긴장해야 하는 품목으로 날짜가 임박하면 마진은 사치요, 원가 판매만 되어도 감사하다. 예를 들어 모카 골드 100입짜리의 유통기한이 3개월 남았다면 당장 원가 세일 카드를 붙여 손해를 최소화하려 한다. 포스트 시리얼 또한 물류센터에서 직접 사 오는 품목으로 반품 부담으로 가장 기본적인 몇 가지만 채워 넣었다. 빈자리는 대리점을 통해 켈로그 제품으로 진열대를 채웠다. 켈로그의 종류가 더 많다 보니 반품이 많은 것 또한 당연지사.


가끔 동네 마트에 찾는 물건이 없다면 이런 속사정도 있을 테다. 점주 입장에서 수익을 생각 안 할 수 없다. 식자재나 대형마트처럼 모든 제품을 진열할 공간도 부족하고 모든 제조사 대리점과 거래할 수 있는 여건도 안 된다. 결국은 내 매장에서 수익이 나는 제품들 위주로 장사를 할 수밖에 없는데 돈이 되는 제품들은 결국 기본제품들(과자를 예로 들면 오리지널 맛이 제일 잘 팔린다.)이라는 결론이다. 


샴푸와 린스 비누, 생리대는 유통기한이 대략 3년이다. 그래서 매달 확인하는 건 불필요한 작업이다. 역시 분기별로 확인하며 촉박한 날짜는 미리 빼고 애매한 날짜는 그대로 두고 달력에 체크해 둔다. 유통기한이 길기 때문에 제조 날짜가 2~3개월 차이면 선입선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거래처에서 일 년에 한두 번씩 훑어보지만 제일 안쪽에서 유통기한이 가장 최근인 물건들이 쏟아지기도 한다. 그래서 한 번 작업할 때 맨 안쪽 물건까지 모조리 봐야 안심이 된다. 열심히 뺀다고 뺐는데도 뜬금없는 날짜의 물건이 나올 때가 있는데 황당을 넘어 당황스러울 지경이다. 분명 6월에도 확인했는데 22년도 물건이 어디서 왜 나오는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이럴 때면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노래 한 자락이 절로 나온다. 



치약은 아직 날짜가 남았지만, 애경이 필요에 의해 기존 제품을 회수하고 신제품을 넣는다고 한.



웬만한 식당에서도 키오스크로 주문하고 김밥도 기계가 마는 자동화 시대에 이 모든 작업은 나의 손을 빌린다. 그리고 난 지루하고 단순하기만 한 이 작업 과정을 꽤 즐기는 편이다. 반품 확인 중 진열대에 쌓인 먼지도 한 번씩 닦아주고 물건들도 각을 세워 정리를 해두면 신선한(?) 제품들과 함께 깨끗한 매장으로 손님을 맞이할 수 있어 설렐 정도니 나의 적성에 딱 맞다. 가끔은 이 작업에 푹 빠져 오는 손님이 귀찮을 정도인데 주객이 전도된 어이없는 마음가짐에 '지금 뭣이 중헌디!'를 혼자 외치며 카운터로 뛰곤 한다.



이 외에도 다양한 반품들이 나왔다. 심지어 술도! (술은 소주/맥주, 병/캔/페트병에 따라 유통기한이 다르다.) 페트병은 보통 제조일로부터 6개월, 병맥주 10~12개월, 캔맥주 12개월, 막걸리는 10일에서 1년으로 다양하다. 소주류는 유통기한이 없다. 앞을 보고 뒤를 보고 옆을 보아도 소주병 라벨지에는 제조연월일 자만 표기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술의 유통기한 표시는 제조일 날짜가 찍힌 경우가 많으니 꼼꼼한 확인이 필요하다.



아!! 모든 제품을 분기별로 확인하는 건 아니다. 유통기한이 6개월 이상인 제품들만 해당하고 일배(두부, 콩나물, 우유 등 신선제품 거래처로 매일 배달을 줄여 일배라 부른다.) 제품들은 매일 아침 날짜를 확인한다. 유통기한이 짧아 각별히 신경 쓰고 보살펴야 한다. 하루 이틀 살피지 못하면 손님이 들고 온 콩나물 봉지에서 어제 날짜를 발견하고는 얼굴이 붉어지니까. 유제품도 마찬가지다. 신선 제품은 담배와 쓰레기봉투 다음으로 마진이 박하지만 관심을 가지고 특별 관리를 해야 하는, 마트에서 기본 중 기본이 되는 품목이다.



야채와 과일은 따로 반품이 없다. 상품 가치가 없어지면 100% 우리 차지다. 그래서 우리 집 냉장고엔 시들시들 과일과 야채들로 가득하지만 선뜻 손이 가지는 않는다. 결국 다 먹지 못하고 버릴 때가 많다. 아마 우리 집이 아파트에서 음식물 쓰레기 비용이 가장 많이 나오는 집이 아닐지 생각한다. 속을 모르는 손님들은 우리 아이들을 볼 때마다 엄마 아빠 마트 해서 좋겠다고, 너희들은 이미 꿈이 이루어졌다 농담하지만 반품 난 과자와 라면, 싱싱하지 않은 과일들을 많이 먹게 된다. 얘들아, 엄마 아빠 마트 해서 미안해!


이틀간의 수고 끝에 반품 확인 작업이 끝났다. 12월까지는 아침에 달력을 확인하는 거로 관리가 될 듯하다. 12월 말이 되면 같은 작업을 또 해야 하지만 지금은 대청소를 끝낸 듯 후련한 기분이다.






이전 08화 사람에게 서운한 감정이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