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이쿠 Jul 16. 2023

어쩌다 마주하는 적당한 취기

저녁 내내 술이 팔린다. 술은 평일에도 마트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지만, 주말이라서인지 더 잘 나간다. 불경기로 인해 과일, 고기등 신선 제품의 판매율은 하강 곡선이다. 그에 반해 술은 불경기를 타지 않는다. 오히려 상승 곡선인 것 같은 이 느낌은 불금, 불토를 카운터에 앉아서 보내야 하는 나의 기분 탓이려나. 이미 1차를 했는지 조금은 취한 채 친구들과 왁자지껄 술과 안주를 고르는 손님들을 보며 매출 상승 기대와 함께 그들의 여유를 잠시 부러워한다. 앞에서 계산하는 나를 의식할 새도 없이 찐친들이나 할 수 있는 농담을 주고받으니 듣는 나도 그들을 의식할 새도 없이 웃음이 터져 나온다. 낯선 손님도 나도 이 순간이 즐거운 것은 적당한 취기로 인한 용기와 적당한 술기운에 대한 이해 덕분일 것이다. 


그렇다고 술에 취한 손님이 모두 반가운 것은 아니다. 계산하는 사이 들어온 단골은 역시나 술 냉장고로 향한다. 좀 전에도 소주 두 병을 사 갔는데 그새 다 먹고 또 사러 왔다. 오늘뿐 아니라 매일 아침, 점심, 저녁 삼시세끼 챙기듯 소주 두 병을 사 가는 젊은 친구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속 구 씨를 닮았다. 보고 있자니 안타까운 마음은 물론이고 비극적인 개인사가 있을 것만 같아 신경이 쓰인다. 그럼에도 하루에 하루를 더해 눅진하게 쌓아놓은 술 냄새에 기가 눌려 그 어떤 말도 붙일 엄두를 내지 못한다. 매일 와서 단골이라 칭할 뿐 제대로 대화를 해 본 적은 없다. 술을 들고 카운터를 향하는 걸음걸이, 계산하는 동안 풍기는 익숙한 술 냄새까지 어디서 본 듯한 데자뷔에 지금은 오지도 않는 예전 한 손님이 떠오른다.  


그때 중년의 손님은 사업 실패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스스로 절제할 수 없는 지경이 되자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가족들과도 멀어져 혼자 살게 되었다. 매일 아침, 저녁 소주 두 병씩을 샀고 어제보다 진한 술 냄새를 풍겼지만 적어도 그 몇 년간 우리 매장에서 실수한 적은 없었다. 마음이 약해서 자신을 저토록 괴롭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꾸준한 음주 때문에 어느 순간 손을 떨기 시작하더니 병이 깊어 보이는 검붉은 안색으로 찾아오곤 했다. 어느 가을날, 카운터 앞에 선 손님은 선선한 날씨와 맞지 않게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역시나 소주 두 병을 놓으며 주체할 수 없이 떠는 손으로 돈을 내밀었다. 그 와중에도 예의를 차리고자 어눌한 발음으로 인사했다. "안녕히 계세요." 뒤돌아 나가는 손님을 향해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는 하지 않았다. 상냥하고 밝은 매뉴얼 인사는 그분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날이 손님과의 마지막이었다. 며칠 후, 고독하게 자신의 방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아저씨의 사정을 잘 아는 한 손님이 안타까움에 내뱉은 소식이었다. 죄책감이 들었다. 더 적극적으로 술을 팔지 말아야 했나? 알코올 중독 치료센터에 상담이라도 받게 해야 했나? 뒤늦은 후회를 했다. 방관했던 건 결코 술을 더 팔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술을 사 갈수록 불편한 마음이었다. 마치 죽어가는 과정을 관찰하는 듯 한 기분에 찜찜했다. 하지만 가족도 어쩌지 못한 그 손님에겐 타인의 관심을 가장한 의미 없는 잔소리보다는 자신의 의지가 가장 절실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방관하는 것 말고는. 


며칠 전에는 매일 캔맥주 6입 세트를 사 가는 20대의 여자 손님에게 결국 주제넘은 말을 하고 말았다. 

"건강 생각해서 매일 말고 가끔 한 잔 어떨까요?" 

그 친구는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앞으로 내 눈치를 볼까 걱정이 되는 거로 보아 괜한 짓을 했다. 괜한 짓인 줄 알지만 이렇게라도 얘기하고 싶은 손님이 꽤 된다. 삼시세끼 챙기듯 술을 마시는 좀 전의 손님은 정작 식사는 안 챙기는지 점점 말라 보인다. 그리고 손을 떨기 시작했다. 내가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 이전처럼 방관해야 할까? 귀에 들어가지도 않을 조언을 해야 하는 걸까? 무엇도 쉽지 않다. 결국 예전처럼 방관자로 관찰 중이다. 보통 관찰 결과는 다양한 결론이 나지만 이 관찰의 끝은 정해져 있다. 틀림없는 비극으로 끝날 것이다.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나도 매일 맥주를 마신 적이 있다. 퇴근 후, 나만의 시간을 갖겠다며 시작한 것이 점점 횟수가 늘었다. 근무 환경도 한몫했다. 밤이면 손님마다 안줏거리와 술을 사 가니 나도 오늘 한잔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시간 부족을 이유로 술을 대체할 취미를 찾지 못한 탓도 있다. 기껏 찾은 대체품이 무알코올 맥주였으니 중독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매일 술을 찾는 그들이 점점 이해되어 정상, 비정상의 기준에 대한 감각마저 사라져 갔다. 차곡차곡 쌓인 숙취에 피로가 더해져 몸이 이상 신호를 보내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제야 정상적인 생활 패턴을 갖기 위해 신경을 썼다. 다행히 지금은 많이 줄어든 상태다. 


드라마 속 구 씨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술을 마신다. 곁에 있는 염미정은 있는 그대로 그를 사랑한다. 흔한 잔소리 한마디 없다. 오히려 같이 마셔준다. 그래서인지 그의 중독은 타당하고 멋져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현실은 엄연히 현실이다. 염미정은 물론이고 가족도 곁을 지킬 수 없다. 결국 구 씨도 술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지 않는가? 구 씨를 닮은 젊은 친구가 중년 손님의 과정을 그대로 밟는듯해 안타깝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방관한다. 나의 어설픈 조언과 권유로 가까운 우리 가게를 두고 멀리 돌아가는 괜한 수고를 보탤 것 같기도 하고 여전히 자신의 의지만이 스스로를 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아저씨와 달리 그들은 자신을 찾을 골든타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그들의 적당한 취기를 어쩌다 마주하길 바랄 뿐이다. 


이전 06화 나는 오징어를 말리지 않았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