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글쓰기 수업을 들었다. 수업의 일부인 독서토론 중 강사는 인물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소설을 예로 들면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내면을 360도 돌려 설명합니다. 인물들이 왜 이런 생각과 행동을 하는지 독자를 이해시키는 거죠. 그래서 전 독서를 좋아합니다. 책을 읽음으로써 사람에 대한 서운함이 없어지거든요. 나와 다른 성격이라는 점을 인정하면 상대방의 언행이 이해되는 것이죠." 책을 읽을수록 '서운함'이라는 감정에 둔해진다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비슷하게 난 책이 아닌 경험을 통해 사람에 대한 서운함이 별로 없다. 특히 타인일수록 그렇다. 나이 마흔이 넘어가니 어지간하면 살다 보면 그럴 수 있지 하며 이해하는 편이다. 때로는 손해 보지 않아도 될 손해를 보고 당하지 않아도 될 일을 당하기도 하지만 훗날 같은 상황에서 감정의 널뛰기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교훈으로 삼는다.
7년 동안 마트를 하며 많은 알바생을 겪었다. 손버릇이 안 좋은 친구, 사회생활이 힘든 아이, 한참 이슈였던 MZ세대의 전형도 있었다. 결국은 법원까지 드나들어야 했던 친구는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잦은 지각을 하였고 일 처리는 굼떴으며 근무 시간에 게임을 하다 걸린 적도 여러 번이었다. 서른이 다 된 나이었지만 아직 철이 없어 그러겠거니 했다. 남편은 다른 사람을 찾자 했지만, 나쁜 심성은 아닌 것 같아 더 두고 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 친구가 오래 근무해야 했던 이유는 나와 달랐다. 내가 이해하려 애쓰는 3개월 동안 200만 원이 넘는 물건을 훔치고 있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마지막 한탕에 걸렸다. 지지리도 사람 보는 눈도 없으면서 더 두고 보자고 남편을 설득한 건 또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배신감이 컸다. 경찰에 신고하여 그 죄를 물었다. 차라리 처음에 내보냈으면 몇 번이고 법원을 드나드는 고생은 덜 하지 않았을까? 후회되었다. 다른 친구는 답답할 정도로 일을 못 했고 억지로라도 끌고 가겠다는 각오와 달리 서로에게 상처를 남겼다. '그럴 수 있지'하며 시간을 끌다 탈이 났다는 교훈을 얻는 것으로 마음을 추슬렀다. 물론 성실한 아르바이트생도 있다. 최근에 그만둔 친구가 그랬다. 서로 지지고 볶으며 5년을 함께 했다. 잘 준비하여 더 좋은 곳으로 취직했다는 말에 이 친구가 앞으로 성장해 나갈 밑바탕을 그렸다는 생각에 같이 기뻐했다. 그만둔 날 선물을 주며 그동안 고마웠고 고생했다는 진심을 전했다. 지금도 지나는 길에 들러 서로의 안부를 묻는 사이다.
지난달, 그 친구를 대신할 알바생을 구했다. 주변에 원룸이 있어 사람 구하기가 쉬운 편이다. 구인 광고 이틀 만에 구직 전화가 왔고 면접 날짜를 잡았다. 이야기 끝에 이전에 성실하게 일했던 아르바이트생의 친구라는 사실을 알았고 그 점은 플러스 요인이 되었다. 장기근무자를 원한다는 조건에 1년은 문제없다고 자신하는 것 또한 마음에 들었다. 1주일간의 교육 후 2주째부터는 실전에 투입되었다. 이력서상 알바 경험이 많은 이 친구는 친절하고 똑 부러졌다. 벅찰까 봐 할 일의 70%만 알려주고 익숙해지길 기다렸다. 3개월이 지나면 100%를 소화하도록 조금 더 교육할 예정이다. 저녁 알바를 구한 덕분에 우린 오랜만에 가족끼리 외식을 하며 술 한잔 하는 호사를 누렸다. 매일 보는 남편이고 아이들인데도 넷이 같이 앉아 밥 먹는 기분은 또 달랐다. 이제야 완전체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어제도 저녁 식사를 위해 가족 모두가 자리에 앉았다. 밥 한 숟가락 막 뜨려는데 남편의 카톡이 울렸다. 핸드폰을 보던 남편이 들고 있던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한숨을 쉬었다. 무슨 일이냐고묻는 나에게 핸드폰을 보여준다. 허리가 아파 일을 못 하겠다며 이번 달까지만 하고 그만두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좀 전까지 같은 공간에 있었던 사장님(남편)에게 매장에서 말하기 애매한 상황이어서 이렇게 카톡으로 알려드린다고.
당황스러웠지만 이상할 만큼 놀랍지 않다. 이 아이가 일을 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오래 일할 생각이 없다는 걸 직감했다. 손님 응대와 계산을 처음부터 너무 잘해 놀랐던 친구다. 하지만 다른 부분에서 사소한 실수가 잦았다. 어렵거나 번거롭지 않은, 못할 리 없는 일이었다. 일부러 실수를 차곡차곡 쌓거나 일하기 싫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았다. 3주 전에는 학원을 등록해서 평일 근무 시간을 30분 늦춰달라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취준생이니 당연히 맞춰줘야지. 일주일 뒤엔 7월 말에 해외여행을 간다고 며칠을 빠진다고 했다. 그러라 했다.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있을 때 충분히 즐겨야 하는 나이니까. 그러더니 그만두겠다는 카톡을 보내온 것이다. 이것까지 이해하기엔 너무 이른 타이밍이다.
예상했던 바이지만 순간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당장은 답장하지 않았다. 읽씹으로 몇 시간 동안 수많은 생각을 하도록 내버려 두고 싶었다. 방 계약이 내년까지라 장기근무는 자신한다고 했지만 1년은 안 바랬다. 우리 애들 여름방학 때까지는 일해주길 원했다. 처음부터 여행경비 마련이 목적이었을까? 마음 같아서는 다음 근무까지 며칠 동안 대꾸를 안 하고 싶지만, 마감 전 전할 사항들이 몇 가지 된다. 그 친구의 반복되는 실수가 가게의 재앙이 되지 않도록 꼭 통화를 해야 한다.
"문자는 봤어. 어쩔 수 없지. 알겠어. 물건 진열대에 잘 채우고 퇴근할 때 냉장고 커튼 잘 내리고. 화장실 수도꼭지 잠그고 가. 수돗물 넘치면 가게 큰일 난다."
더 이상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해 봤자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말이다.
하지만 남편은 서운함을 넘은 괘씸함에 얼굴이 벌게진다. "당장 그만두라고 해" 내일모레면 50이 다 되어가는 남편은 책을 더 읽어야겠다. 주체가 되지 않는 화를 결국 폭발시켜야 시원할 모양이다. 남편의 강력한 주장으로 아직 찾지도 않은 새로운 알바를 구했다며 오늘까지만 근무하면 된다고 말할 예정이다. 새로운 알바를 구해서 교육할 때까지 우리 부부는 죽어라 교대 근무를 해야 하니 고생을 자처하는 거다. 고생을 감수하면서까지 한방 먹이고 싶은 남편 마음이 이해되는 걸로 보아 나도 책을 더 읽어야겠다. 그러면 그 친구를 360도 돌려 이해할 수 있을까?
해외여행을 다녀오겠다던 아르바이트생은 우리 마트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예정이다. 타인에게 서운하지 않다는 나의 말은 거짓이었다. 짜증이 난다. 책도 경험도 어쩌지 못한 나의 감정이다. 곧 그만둘 거라고 예상했던 일이면서도 왜 이러는 걸까? 생각보다 일찍 그만두어서?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카톡으로 해서? 요즘 너무 힘들어서? 반복되는 알바생들의 패턴에 질려서? 그것도 아니면 그만두라고 먼저 말하지 못해서? 명확히 설명할 수 없다. 떠나가는 이에게 서운할수록 함께 할 사람에 대한 기대치는 낮아진다. 인간적 교류마저 불편하고 귀찮아진다. 그런데도 좀 더 나은 인연을 위해 구인 광고를 붙여야 한다. 장기 근무 가능 우대에 별표 표시를 했다. 비록 면접 통과용 사탕발림에 또 속아 넘어갈지라도 "2~3개월 하고 그만둘 거면 시작을 말아야 합니다"를 강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