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히 회사를 다니다 큰 아이 7살, 작은 아이 4살에 마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 아이들도 멀쩡히 유치원을 다니다 어느 날 갑자기 srt 타고 낯선 곳으로 끌려 온 셈이다. 다행히 아이들은 새로운 유치원에 잘 적응하였고 피치 못할 상황에서는 엄마 아빠를 따라 마트를 나오는 것도 이해했다.
(마트 처음 시작했을 때 7살 큰 애, 4살 작은 애)
유치원에 다닐 때만 해도 가게에서 뛰어놀거나 (물론 손님이 없을 때), 진열을 끝낸 빈 박스를 가지고 집을 만들어 노는 등 나름 자기들만의 놀이를 찾아 시간을 보냈다.
초등학생이 되더니 가게 한쪽에서 딱지를 치고, 숙제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물론 더 커진 덩치와 목소리로 가게를 뛰어다녀 가끔은 손님들이 놀랠 때도 있었다.
튼튼한 두 다리를 두고 사지로 가게를 기어 다니는 아들들을 진정시키고자 유튜브 시청은 필수가 되었다. 배고플 때면 평소 먹어보지 못한 컵밥 같은 인스턴트식품을 마음껏 먹으며 행복해하는 두 아이. 해맑은 아이들과 달리 나는 때론 죄책감으로 혹은 미안함으로 지지고 볶으며 6년, 12번의 방학을 보냈다.
험난했던 방학 중 가장 최악을 꼽으라면 단연 올해 여름방학이라 말할 수 있다. 그동안은 알바생이 있어 남편과 내가 교대로 한 명이 가게를 보면 다른 한 명은 집에서 애들을 돌보았다. 가게를 하는 지난 시간 동안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우리 손으로, 나름의 정성으로 키워냈다. 하지만 이번엔 어림없었다. 알바는 그만두고 없어 나와 남편은 주말 없이 매일 출근을 해야 했다. 특히 8월 첫째 주는 고난의 기간이었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다. 매 달 첫째 주는 물건이 집중적으로 들어오는 시기라 원래 제일 바쁜 시기인데 아이들 학원 방학까지 8월 첫째 주에 몰렸다. 지속된 폭염으로 날은 덥지 (가게에 에어컨이 없다) 애들은 옆에서 배고프다, 뭐가 먹고 싶다 요구가 늘고, 자기들끼리 놀다가 싸우면 엄마를 계속해서 찾으니 정신이 가출할 지경이었다. 첫째 주가 끝나 갈 즈음엔 급기야 "나 다 때려치울래."를 소리치며 당장이라도 가게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심정을 꾹꾹 누르는데 무언가 분노의 눈물이 자꾸만 치솟는 걸 또 참느라 혼났다.
안 되겠다 싶어 아이들에게 일거리를 주었다.
"냉장고에 물건 없는 음료들 찾아서 하나씩 다 넣어둬!! 선입선출은 기본이야!! 알지??"
큰 애가 한자를 배운 지 2년째인데 실전 한자를 이렇게 써먹을 줄이야!
"알바비는 각자 한 시간에 2천 원이야!! 게다가 식사 제공, 후식으로 아이스크림 제공!!"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오~~ 예!!"
둘째 특유의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표정으로 형을 바라보더니 둘의 눈빛 교환이 같은 마음임을 확인한다.
세상물정 모르는 두 녀석은 신이 나 환호성을 질렀고 단순한 남자아이들답게 방금까지 싸우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협력하기 시작했다.
"야, 콜라 뚱뚱한 캔 두 개 가져와."
역시 상하위계질서 확실한 우리 집답게 큰애가 작은 애를 부려 먹는다. 이러면 불공평하지.
"너는 이 냉장고 채우고, 둘째 너는 옆 냉장고 채워!"
아이들이 열심히 물건을 찾느라 조용하다. 드디어 나에게도 평화가 찾아왔다. 노동착취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다. 일단 내가 살고 볼일이다.
새로 들어온 물건 진열이 끝나고 할인카드를 써 내려가자 둘째가 내 옆에 앉는다. 친구 만난다고 나간 형이 없어 심심한가 보다. 그러니까 있을 때 잘하라고. 맨날 싸우지 말고.
"엄마. 내가 도와줄게"
"그래"
영혼 없는 대답을 하고 장인 정신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 가는데 둘째가 슬쩍 쪽지를 내민다.
아들의 작품을 보고 난 그야말로 빵 터져서 웃고 말았다.
"내 아들이지만 너 쫌 귀여운데? 잘했어! 할인 카드 옆에 붙여줄까?"
"응"
그렇게 탄생한 둘째의 할인 메모!!
비록 ㅋㅋㅋ도 반대로 쓰고 굿도 제멋대로 쓰고 사람들이 당장 사고 있지는 않지만 너의 폼은 지리네!
지금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주말에 잠깐씩 가게로 데리고 온다. 녀석들은 선입선출 진열은 물론이고 이제는 손님들과도 인사를 나누는 단계에 왔다. 그리고 조금씩 계산대에 서서 바코드 찍는 걸 하고 싶어 한다. 그래 조금만 기다려라. 마음껏 시켜줄게!! 서당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마트 아들 칠 년이면 계산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니? 지난 6년 방학 때마다 지지고 볶다 보니 큰 애가 내년이면 중학생이 된다. 이 시간을 기다렸다. 음하하하! 시급 5천 원!! 식사제공! 아이스크림 제공! 오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