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손님이 들어와 한참 동안 가게 구석구석을 돌아본다. 필요한 물건을 못 찾아서인지 가게를 헤집는 듯 어수선하다. 그러다 갈길 잃은 발걸음이 갑자기 나를 향했다. 카운터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성큼성큼 다가오는 모습은 마치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아 긴장감으로 숨이 막혔다. 카운터 밑에 나를 보호할, 정당방위에 해당될 그 어떠한 무기라도 있는지 고요히 허공을 헤매는 손이 떨렸다.
"에쎄 체인지 1미리 주세요."
"네? 아! 네."
여전히 손에 쥘 무기를 찾고 있던 나의 빈손이 담배 진열대로 향했다. 아직 안심하기엔 이르다. 카운터 뒷면에 있는 담배를 빼기 위해 몸을 돌리면서 낯선 손님과의 안전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최대한 뒤로 물러나며 곁눈질로 동태를 살폈다. 주머니에 손을 넣자,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주변 상가는 다 문을 닫은 이 시간에 나는 어디로 도망가야 할까? 아니 카운터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죽겠구나. 돈이 목적이라면 돈통을 다 드릴 테니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 난 아직 젊고 어린애들이 있단 말이에요.' 짧은 순간에 오만가지 생각으로 심장이 벌렁거린다. 당장이라도 항복의 표시로 두 손을 머리 위로 들 준비를 하며 주머니에서 나오는 물건에 집중했다.
카드다. 휴 살았다. 카드를 내미는 손님이 눈물 나게 고마울 지경이다. 뒤돌아가는 손님에게 안녕히 가시라고 안도의 인사를 했다. 우리 가게는 아주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다. 손님의 대부분은 동네 주민들로 모두 익숙한 얼굴들이다. 원룸이 있어 새로운 사람들이 눈에 띄지만, 시간이 지나면 곧 낯익은 단골이 되니 낯선 이에 대한 거부감은 없는 편이었다. 적어도 지난 서현역 흉기 난동이 있기 전까지는. 용인 수지에서 7년을 사는 동안 서현역은 1주일에 한 번씩 가던 곳이다. 익숙한 장소에서의 사건을 뉴스로 접했을 땐 너무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머 어떡해. 어머 어떡해."를 연신 내뱉다 정신이 들자 그곳에 사는 친구들에게 문자로 안부를 물었다. 한 친구는 사건 직후 경찰이 출동했을 때 남편이 전철을 내려 버스를 타기 위해 올라오느라 사건 현장에 머무르게 되었다고 했다. 평소보다 10분 늦게 퇴근한 것이 남편을 살렸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데 듣는 내 가슴이 철렁했다.
그 이후로 날마다 전국에서 흉기 사건이 터진다. 대부분 유동 인구가 많은 전철역이나 유흥가라 조용한 주택가에 사는 나에게는 아직은 뉴스에서나 접할 어떠한 사건이라 생각했었지만 지금은 점점 내 주변으로 조여 오는 느낌이다. 지난주엔 집 근처 전철역에서 흉기를 꺼내 들어 역무원을 다치게 했다는 뉴스를 접했고 얼마 전엔 가게가 있는 동네에서 흉기를 손에 든 채 활보하는 사람을 주민들이 신고했다고 한다. 내가 있는 이곳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현실이 낯선 손님을 친절과 미소대신 의심과 경계로 맞이하게 되었다.
20년 전, 중국에서 5년을 살았다. 당시 중국의 치안이 불안해 길거리를 걷다가 내가 소매치기를 당하거나 눈앞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현장을 목격한 적도 여러 번이다. 범죄의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 악세사리나 가방은 집에 고이 모셔두고 항상 허름한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집마다 이중철문은 기본이었고 창문에도 쇠창살을 단 곳이 많았다. 택시를 타면 더 피부로 느끼곤 했는데 운전사의 자리를 철 기둥과 철망으로 설치하여 위험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경우가 그랬다.
당시 한국의 안전 개념으로 바라볼 땐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의문을 가지곤 했는데 살다 보니 현실적인 대응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젠 우리나라 택시도 이런 안전망을 도입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이다. 남편에게 우리도 중국 택시 기사들처럼 카운터에 안전망을 설치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어떻게?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남편의 무심한 말투도 이해가 된다. 카운터에만 안전망을 설치하면 뭐 하나. 물건을 진열하고 손님들이 찾는 물건의 위치를 안내해야 하는 등 카운터 밖에서의 일도 부지기수인데 카운터 안전망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얼마 전, 어떤 알고리즘으로 떴는지 모를 유튜브 쇼츠 영상에서는 흉기를 들고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 앞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유리문 하나를 사이에 둔 안에서는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피신시키고 다급한 목소리로 경찰에 신고하는 내용이었다. 나 자신만 지킨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그 시간에 학원에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이젠 아이들을 보호할 어떠한 것들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졌다. 미국의 총기 난사처럼 점점 더 많아지는 흉기 난동으로부터 나를 어떻게 보호해야 하나? 아이들은? 나의 현실적인 대응은 호신용 3단봉 검색이다. 호신 무기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지만 불안한 마음을 잠시 잠재우기에는 효과가 있다. 아니지. 막대기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전기봉? 가스총을 알아봐야 하나? 점점 더 강력한 무기를 찾게 되는 내가 이걸 감당은 할 수 있을까? 안전하다고 자부했던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누구에게라도 묻고 싶다. 낯선 손님의 방문에 의심의 눈초리가 아닌 환영의 인사를 나누는 일상을 빨리 회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