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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불어YIU Oct 06. 2021

뉴욕 택시기사 아저씨

맞아. 나는 지금 아파

JFK 공항에 내려서 뉴욕시로 들어갈 때 나는 주로 한인 택시를 이용한다. 전 세계의 거의 모든 곳에는 한국 사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고는 하지만 막상 그곳에서 낯선 여행객인 나와 대화를 나누어줄 마음이 있는 한국인은 많지 않다. 그런 면에서 한인 택시는 꽤나 좋은 선택이다. 현지에 거주하는 교민에게서 듣는 뉴욕은, 그 나름대로 나에게 새로운 관점에서 신선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2년 전 아내와 함께 뉴욕에 방문했을 때 만났던 한인 택시 기사 아저씨는 그전에도 만난 적이 있는 분이었다. 한인 택시 업체에서 랜덤으로 기사님을 배정해 주는데 우연찮게 같은 분이 한 번 더 배정된 것이었다. 물론 기사 아저씨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몇 년 만에 다시 방문하는 반가운 땅에서, 이전에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 익숙한 분을 우연찮게 다시 만나게 된 것은 나에게 있어서 기분 좋은 일이었다.


공항에서 맨해튼으로 이동하며 첫 만남에서 그 택시 기사 아저씨가 나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기사님이 처음 뉴욕으로 이민 오게 된 이야기, 당신의 조카 이야기 등을 몇 년 전 나에게 해주었다고 말을 건네자, 아저씨는 나에게 “내가 그런 이야기까지 했었느냐"라며 멋쩍게 웃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 후 아저씨는 조심스레 우리 부부에게 자신의 딸 이야기를 꺼냈다. 뉴욕에서 유치원에 다니는 딸이, 마음이 아픈 아이라는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다른 성장 속도를 가졌고 일반적이지 않은 행동을 보이는 아이였다.


그런데 아저씨는 자신의 딸이 선천적으로 마음이 아픈 아이라는 사실 그 자체보다, 자신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던 것이 있었다고 했다. 그것은 사랑하는 딸이 아프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은 마음이었다는 것이다. 인정해버리는 순간 정말 아픈 아이가 될 것 같아서 모른 채 하고 싶은 마음, 단지 조금 독특한 성격을 가진 아이일 뿐 우리 가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이 자신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지나고 아이의 증상이 명확해지면서 더 이상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결국 아이의 아픔을 인정하는 순간, 그때부터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아저씨는 딸의 아픔을 돕기 위해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것을 시작했다. 그러자 뉴욕시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복지 혜택을 주었고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심리 상담사를 비롯하여 여러 기관의 전문가들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아저씨와 그의 아내는 딸의 아픔으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성장하는 긍정적인 작용도 경험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아저씨는 이렇게 말했다.


“아픔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 가정의 삶이 더 좋아졌습니다”


우리는 아픔을 애써 외면한다.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가면을 써보기도 하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마치 아프면 안 되는 사람처럼 우리는 내 마음의 아픔을 애써 부정한다. “나는 괜찮다”.
 그러나 아픔은 감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픔은 실제로 나의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 무엇이며 부끄러울 일도, 감출 일도 아니다. 오히려 내 속에 사는 아픔이라는 녀석의 존재를 인정해 줄 때 비로소 우리는 나 스스로를 바로 볼 수 있다.


“그래, 나는 지금 마음이 아프다.”


내 안에 있는 아픔 역시 나다. 따라서 아픔이라는 이름의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아픔에 대한 인정, 그것은 나 스스로에 대한 인정 이자 진짜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라. 어쩌면 당신을 사랑하지만 표현할 기회가 없었던 이들의 마음이 당신의 아픔을 감싸주는 경험을 하게 될 수 있다. 혹은 그저 지나가는 어떤 이가 당신의 마음을 알아줄 수도 있다. 택시 기사 아저씨가 자신의 딸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을 때, 내 옆에는 아동심리미술 전문가인 아내가 함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적장애를 가진 분들이 계시는 곳에서 2년간 대체 복무를 한 경험이 있다. 30분 남짓이라는 짧은 시간에 아저씨에게 큰 도움을 줄 수는 없었지만 우리는 아저씨의 마음을 공감하고 마음을 다해 위로해드릴 수 있었다. 또한 아저씨가 이야기를 들려줌으로 인해, 그저 지나가는 인연일 수 있던 그분은 우리 부부에게 어떤 의미 있는 사람이 되었다.


꼭 기억해야 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세상에는 당신을 위로하고픈 사람들이 많다. 당신은 당신 스스로를 홀로 지켜내기 보다 우리와 함께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의 아픔은 더 이상 우리를 삼켜내지 못한다.


인정하고 이야기하라, 우리는 그렇게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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