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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이 Jan 25. 2023

한 줄 이력서.

제게 인사하지 마세요.

 자꾸 나이얘기를 하기는 싫지만 한마디 하자면, 그나마 쉰다섯에 취업이 가능했던 이유는 아무래도 업무 대상층이 노인이라는 이유가 가장 클 거다.  나의 주 업무는 어르신들의 취업을 도와드리는 일이다. 취업처를 발굴해서 구직홍보를 하고, 어르신들의 이력서나 자기소개서 등을 대신해서 전자메일로 송신하는 일을 하고 있다. 물론 이력서나 자소서를 대필하기도 한다. 어르신들 중에는 글을 모르시는 분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이 수요처를 발굴하는 일이라 출장을 가는 일이 잦다. 거의 매일 출장을 간다고 해도 무방하다. 아파트 관리실, 공장사무실, 건물관리실, 주차장, 식당, 주유소, 마트, 물류까지 노인들이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면 일단은 방문을 해서 홍보를 한다.

물류센터 같은 곳은 블록 같은 컨테이너들만 잔뜩 쌓여있어 도저히 사무실이 어딘지 알 수 없다. 그럴 땐 사람이 나올 때까지 언제고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바로 이런 점들 때문에 내 자리의 이직률이 높았던 모양이다. 일 년 사이에 네 번의 교체가 있었다고 했다. 일을 시작하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부터 가장 많이 들은 인사가

"힘드시죠?"였다. 그러면 난 그 인사에 대답하기가 난감해진다.  걱정이 돼서 물어준 건데  너무 솔직히 말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다. 사실  힘들지 않고 즐거웠다. 적성에 딱 맞았다. 일단은 사무실이 있지 않아도 되는 게 좋았고 어르신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게 좋았다. 어르신 들은 묻는 말에만 대답하시는 게 아니라 이 순간 나와 마주 앉게 된 사유를 주섬주섬 들려주신다. 이 일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시간은 일을 하고 있다기보다는 나만 특별히 휴게시간을 누리는 것 같다.


어느 날 여자어르신이 구직접수를 하러 오셨다. 전화로 문의하신 적이 있다고 하셨다. 이력서를 써오면 더 좋다고 해서 써오셨다고 슬며시 내미신다. 





사실 이력서가 꼭 필요하긴 하지만 방문하시기 전까지는 굳이 요구하지는 않는다. 글을 모르시는 어르신들은 위축되거나 부담스럽게 생각하시기 때문에 방문하시면서 작성하는 걸 도와드리는 방식으로 유도한다. 

                                                 



 



이럴 땐 난 약간 어조를 높여 격려해 드린다. "이력서도 써 오셨어요. 알아서 써오시고, 역시 센스 있으시네요!"라고. 어르신 들은 정말 아이들처럼 좋아하신다. 칭찬이어서 좋아하시는 게 아니라 관심을 가져줘서 좋아하시는 것 같다. 


"아유, 아무 상관없어요. 사실대로 만 적어 오셨으면 되는 거예요."라며 이력서를 펼쳐봤다. 순간 난 뭔가 알 수 없는 감정에 먹먹해졌다. 이력서는  성명 란에 이름 석자와 페이지 중간즈음 삐뚤게 쓴 한 줄 이력이 전부였다. 잠시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나 보다.

"아무래도 안 되겠죠? 쓸게 없어서.... 배운 게 없어서 그저 청소만 했어요."

죄송했다. 내 잠깐의 침묵이 어르신에게 하지 않아도 될 생각을 하게 한 모양이었다.

"아뇨, 어르신 감탄하고 있었어요. 한 가지 일을 한 곳에서 30년을 하신 분은 처음 뵙거든요. 최고예요. 이것보다 좋은 이력서는 없어요!" 그 말에 수줍게, 환하게 웃으신다. 마음 같아선 이대로 이력서를 제출하고 싶지만 취업이 목적이니 손질이 필요했다. 주소와 생년월일 그리고 학력이 빠져있었다.

 정말 묻고 싶지 않았지만 "어르신 마지막 다니신 학교는 어떻게 되세요?"라고 물었다.

"어어, 국민학교도 우리 아버지 성화 때문에 겨우 나왔어요."라고 묻지 않은 말까지 하신다. 왜 그렇게 말씀하시었는지 알 것 같았다.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질문이다. 우리네 어르신들은 대부분 학교에서  공부할 환경이 아니었다. 그런 세월이었다. 그리고 내가 알선하는 일들은 학력과는 무관한일들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분들께 당당하시라고 하지 말고 우리가 먼저 예의를 차리는 게 맞는 것 같은 데.... 현실은 자꾸 민구스러운  질문을 던지게 하고 있다. 우리 기관 접수신청서에도 학력기재란이 있으니 말이다.


 어르신께선 돌아가시면서 재차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내게 하셨다. 

"어르신, 취업은 제가 해드리는 게 아니고요, 저는 그저 알맞은 곳을 찾아봐드리는 심부름을 하는 사람이에요. 저한테 부탁하지 않으셔도 경력이 좋으셔서 취업이 잘 되실 거예요." 

"그래도 잘 부탁해요!"라고 이번엔 고개까지 숙이신다. 내가 뭐라고....

난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데. 윗어른들이 내게 부탁을 하고 고개를 숙이신다. 아마 어르신들은 내게 그런 힘이 없다는 걸 알고 계실지도 모른다. 그만큼 어르신 들은 작은 도움이라도 고마울 만큼 간절하신 것이 아닐까?


이력서를 매만지느라 타이핑을 했다.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고 이메일은 빈칸으로 남겨뒀다. 터미널에서 한참을 갈 것 같은 정겨운 이름의 국민학교  졸업을 타이핑했다. 다음에 내가 옮겨 적을 경력, '**학교 청소만 삼십 년'. 어찌하여 '만'자를 적으셨을지? 를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삼십 년이나'로 바꿔 적고 싶은 어마어마한 경력. 기간은 2022년에서 30년을 빼고 몇 년에서 몇 년까지.  근무처  **중학교. 직책 미화원, 옆 비고란에 '30년간'을 쳤다. 

 빨간색으로 강조하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아름다운 원본 이력서는 파일에 곱게 간직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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