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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이 Jan 19. 2023

내 나이의 값은 얼마일까?

나잇값, 얼마어치 해야 하나?

출근 첫날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잠시 놀랐다. 같이 면접을 봤던 셋 중 그가 먼저 출근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선발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를 빼고 본다면 그녀가 훨씬 괜찮아 보였다. 명쾌하고 성실한 답변이 준비를 많이 한 거 같았고 경력도 꽤 있었다. 반면에 그는 무경력자에 몇 가지 질문에는 답을 하지 못하고 말끝을 흐리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능력의 소유자일 수도 있었고 그의 입장에선 나의 선발이 더욱 놀라울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은 빨리 끝내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단지 아들뻘인 그 앞에서 앞으로 처신을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어른스럽게 말과 행동을 조심해서 나이 값 못한다는 말을 듣지 말아야겠다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잇값을 생각하니 "나이가 먹을수록 입을 닫고 지갑을 열라"는 명언 같은 유행어가 생각났다. 첫날은 사내식당에서 식사 후에 커피값을 지불했다. 화장실을 가면서 미리 계산을 했다. 그게 더 괜찮은 방법 같았다. 삼 일 후쯤엔 갓 구운 빵을 사서 하나씩 나눠줬다."지나는데 빵냄새가 너무 좋은 거 있죠! 그냥 지나칠 수가 있어야죠."라고 말하면서 인자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려고 했던 것 같다. 마치 난 나이가 많아서 맘이 넓은 사람이라는 것처럼 말이다. 받아주는 어린 동료들이 오히려 고마웠다. 기껏 줬는데 안 먹는 다고 하면 민망할까 봐 걱정하면서 준비했었기에 다행이었다. 그리고 그건 일종의 뇌물이기도 해서 나이 먹어서 일이 서투르고 말을 잘 못 알아들어도 잘 봐달라는 뜻이 들어있었다. 


어느 순간은 사무실에 온통 컴퓨터 자판 치는 소리만 가득할 때가 있다. 내 타자수는 그럭저럭 중간정도다. 못하지는 않는. 하지만 다른 직원들이 너무 빠르다. 1초에 몇 타를 치는 건지는 모르지만 마치 재봉틀을 돌리는 소리처럼 들릴 정도다. 왜 저렇게 까지 빨라야 하는지 모르지만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도전적으로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토토토'한 스타카티시모에 비해 '톡톡톡' 스타카토로 들리는 내 타자소리가 부끄러운, 자격지심이 올라온다. 내 주 업무는 서류 작업이 아닌데도 신경 쓰인다. 실적을 상상외로 잘 올리고 있었지만 처음 접하는 연가, 상신, 기안, 출장명령서 같은 사소한 낯선 것들이 날 주눅 들게 했다. 아들 뻘인 새내기 동료도 모르는 건 마찬가지지만 나이 먹은 내가 모르는 건 민폐 같다. 그런 마음은 내게  자꾸만 이상한 나잇값을 하게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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