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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이 Jan 19. 2023

쉰다섯, 나는 신입사원이다.

로망은 근성의 어머니였나?




동경했다. 이 모든 것들을.

"축하드립니다. 이제 수습기간이 끝나셨네요. " 명함 세 박스와 함께 건네진  사원증에는 내 이름과 사진이 매달려 있었다. 흰 셔츠, 꼭 끼는 슈트를 입은 모습이 낯설다.

쉰다섯 살, 난 얼마 전 입사 초년생이 됐다. 이 나이에 그것도 기관에 취업한다는 건 드문 일이다. 물론 결격사항에 해당되는 건 하나도 없었지만 통상적이라는 것이 그랬다.  간절함을 언제나 외면받던 전적을 뒤로하고 취업에 성공했다. 하지만 첫 출근을 앞둔  며칠의 공백기 감정은 설렘에서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혼자서 점심을 먹고, 일처리가 답답해서 눈치를 보는 상상이 반복됐다. 당당하자고, 수 틀리면 그만두자며  위안해 보지만 불안한 마음은 쉽사리 제거되지 않는다.



드디어 디데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거울을 보며  다짐하는 순간이 거짓말처럼 다가왔다. 

속으로 외친다. 당당하고 밝고 자신 있게!



팀장님이 소개하자마자 또렷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업무를 맡게 된  한. 이 입니다." 시선이 집중됐고, 친절한 화답이 돌아왔다. 생각보다 좋은 분위기에 마음이 놓였다. 무엇보다도 앞자리의 직원은 또래로 보여 안심이 됐다. 그이가 내 데스크를 안내해 준다. 이제 정말 실감이 나는 순간이었다. 책상을 바라보는 기분은 뭔가 뿌듯한 성취감과는 다른 아련함이 섞인 기쁨이었다. 그런 순간에 큰 글씨가 남달라 보이는 출력물이 눈에 띈다. 출력물은 존재감이 상당했다. 적어도 27포인트정도는 되어보였다. 한 페이지에 다 담지 못하는 직원들의 내선번호는 경로우대인가? 앞으로의 내 직장생활의 위기와 저 글씨 포인트는 비례할 거인가? 라는 생각을 했다.  "누굴까?" 누군가 한 사람이 분명 행동에 옮겼을 것이다. 라는 생각으로 둘러본 팀동료들은 하나같이 서글서글한 인상에 미녀들이라 감히 매칭이 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노인들을 상대로 나름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을 하고 있는 직업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새로 들어온 동료가 몇 년 있으면 이 곳을 이용해도 어색하지 않을 나이라는 사실이 불편하게 다가왔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마음의 애교스러운 표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 역시 살짝 애교스럽게 화답을 했다

"와, 글씨 큰 거 봐. 이거 경로우대예요? 책을 안 읽어서 눈은 좋아요. 흐흐" 



어색한 미소가 오가기 전에 출력물을 저 멀리 던져버리며 책상을 정리하는 척 하기 시작했다. 이후에 첫 날이다 보니 부서소개와 시설라운딩, 인수인계를 받는 과정을 거치자 순식간에 점심시간이 됐다. 애교가 먹힌 것일까?  다들 친절하게 점심을 같이하자고 했고, 단골커피숍까지 안내해서 담소를 나눴다.  화기애애한 시간이었고, 이것저것 물어줘서 고마워  솔직하고 시원하게 답해줬다. 젊어 보여서 놀랐다는 기분 좋은 말도 들었다. 아침에 찜찜했던 에피소드는 기억에서 사라지고 업무인수를 받느라 퇴근시간이 너무 빠르게 온 것처럼 느껴졌다.

첫 출근이 궁금했던 남편이 데리러 왔다.  쏟아지는 질문에 좋은 사람들인 거 같고, 기대가 된다는 소감을 말했다. 진심이다. 스물일곱 살의 아들을 둔 여자가 결혼 전부터 지금까지 여러 직업을 거치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이것저것 조금씩 했던 알바까지 합치면 꽤 된다. 주로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소규모인원으로 실적을 내는 직업, 그리고 허드렛일까지 안 해본 거 빼곤 다 해본 거 같다.

그래서 내가 안 해 본일, 회사 같은 기관에서 컴퓨터 작업을 하고 정시에 퇴근하고 빨간 날 쉬는 직장. 특히 사원증을 목에 걸고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들고 다니는 모습은 로망이었다. 늦게나마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어 행운처럼 느껴졌다. 다른 직원들은 퇴근 전부터  벗어던지는 사원증이 내겐 맘에 쏙 드는 액세서리 목걸이다. 탕비실에서 화장실 거울 앞에서  사원증 을 멍하니 감상하곤 했다. 언젠가는 나 역시 사원증을 벗어버리기에 혈안이 될 줄 모르겠지만 그런 앞날마저 희망사항이다. 그건 정말 직장인이 됐다는 증거니까. 지긋지긋할 정도로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다. 그래서 내 로망이라는 건 위험한 것일지도 모른다. 거기엔 부러움이라는 현명하지 못한 감정이 깔려있어서다.




-  내가 몰랐던것들 -

몇몇에게 밝힌 나의 신상명세는 회사사람 모두가 알아도 되는 내용정도면 좋겠다는 것

회사나 상사에 대한 불만이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장 오래 다닌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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