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 인사하지 마세요.
오늘까지 아홉 번째 방문이시다.
물론 S어르신도 매일 오신다고 취업이 빨리되는 게 아니란 걸 아신다.
하지만 조바심에 절로 발걸음이 향하신 거란걸 이해하면 받아들일 수밖에 별도리가 없다.
"어제 거긴 어떻게 되셨어요?"라고 여쭤봤다.
"으응, 나이가 많데요. 그놈의 나이 타령들은.... 일만 잘하면 되는 걸!"이라며 푸념하신다.
S어르신은 올해 칠십 오세 시다. 노인 일자리 시장에서는 일흔 중반은 마지노선이라고 볼 수 있다.
일흔넷 까지는 어떻게든 취업에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보지만 그 이상이면 아주 어려워진다. 물론 전무하지는 않다.
이건 일반 취업의 경우다. 공공일자리의 경우와 상황이 다르다.
하지만 그 한 살의 벽은 높다. 나이를 말하는 순간 모두 절레절레 다. 아무리 건강과 경력을 어필해도 '생물학적 나이'를 내세우며 거절을 한다.
S 어르신은 체격이 건장하셔서 일을 잘하실 것처럼 보이신다. 게다가 나이보다 십 년은 젊어 보이신다.
그렇지만 면접조차 보지 못한 건수가 이십 건이 넘었다. 나도 왠 만한 곳은 한 번씩 알선해 드린 후라 막막하기만 했다.
어르신은 뜻을 굽히지 않으셨다. '공익 형일자리'나 '사회서비스'형 일자리를 권해드려도 급여가 너무 적어서 안된다고 마다 하신다. 어서 돈을 벌어야 하는 데 큰일이라고 걱정하셨다. 집에 와도 잠이 오질 않아 구직사이트를 뒤졌다. 그럼에도 마땅한 곳은 찾을 수가 없었다. 이럴 때마다 능력 없음에 자괴감이 든다.
며칠을 아무리 생각해 봐도 유일하게 고령자를 받아주는 곳은 물류센터밖에 없었다. 일하는 시간이 짧지 않고 급여도 최저에 맞춰져 있다. 근무시간이 짧거나 급여가 높거나, 중에 하나는 만족되는 부분이 있어주길 바라는 곳이다. 하지만 S어르신이 그렇게 까지 어려우시다니 할 수 없었다.
어렵게 운을 뗐다.
"어르신, 돈을 버시지 않으면 곤란하세요? "
"그렇다니까요! 벌써, 몇 달째 놀고만 있다니까요!"
"그럼, 좀 힘든 일이라도 괜찮으시겠어요? 무릎이나 허리가 아프실 수도 있는데요?"
"아유, 괜찮아요.
내가 해병대 출신이라고. 아직도 아침마다 조깅도 한다니까. 어디 일자리 있어요?"
"네, 물류에서 파지 줍는 일인데요, 힘들어요. 지금까지 며칠 버티신 분들이 없으셨고요. 그거라도 하신다면 소개해 드릴게요."
"좋아요, 잘할 수 있어요!"
눈에 생기가 도신다. 그냥 호기로 하시는 말씀 같지는 않아서 어르신을 물류 반장님과 연결해 드렸다. 그런데 어르신이 도통 셔틀버스 승차장소를 알려드려도 못 알아들으신다. 처음 한 번은 동행해드려야 할 것 같았다.
다음 날, 출근 시간 전 기관 앞에서 어르신을 만났다.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승차장으로 어르신을 모시고 갔다. 차량이 오려면 10여분 정도 남았을 때 어르신의 핸드폰이 울렸다.
"응, 어디 좀 가는 중인데."
"____________"
" 그건 비밀인데. 뭘 그렇게 다 알려고 한데?"
"____________"
"그럼 일곱 시 이후에나 가능한데, 그때까지 자네 부동산 문 열어 둘 건가?"
"____________"
"응, 그래. 그때 보자고." 라며 통화를 마치신다.
" 어르신 이사 가시려고요?"라고 물었다.
"아니, 가게 세 내놓은 게 나가서 계약하러 온 데잖아요."
" 가게요?"
"상가."
"상가.... 그럼, 혹시 어르신 건물주세요?"
" 조그만 이층짜리 하나 갖고 있어요. 그것도 꽤나 골치가 아파요!"
잠시 멍하니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나는 분명 S어르신이 건물주라는 사실이 반전이 될 만한 편견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정신이 들자 물었다.
"어르신, 어려우시다 면서요!"
"아, 마음이 불편하단 얘기지. 내가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는지 몰라요 난 이날 이때까지 한 번도 일을 안 한 적이 없어요. 상가도 그렇게 힘들게 장만했던 집을 저렇게 올린 거지. 엄청 고생해서 마련한 거예요"
"와, 어르신 정말 대단하세요. 엄지 척이에요.!"
그건 진심이었다. 비록 어르신과 나, 삶의 대한 가치관이 전혀 다를지언정 S어르신이 대단하신 분인 건 분명했기 때문이다.
"어르신, 저랑 약속하세요. 일이 힘들면 참으시면 안 되고 못한다고 하시고 바로 오세요!"
"알았어요. 고마워요."
어쩐지 귀담아듣지 않으신 듯한 대답이었다.
그 사이 셔틀버스가 도착했다.
"좋구먼, 버스까지 다니고. 차비도 절약되고 좋네. 그나저나 정말 고마워요. 한 선생님!"
S어르신을 싣고 셔틀버스는 떠나갔다.
그런데 군대 가는 아들을 보낼 때와 비슷한 감정이 드는 이유는 모를 일이다.
한참 동안 버스가 떠난 자리를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약간의 허탈감과 약간의 궁금함을.
그리고 하루종일 생각했다.
난 과연 S어르신이 건물주라는 걸 알았다면 이렇게 열심히 알선해 드렸을 까?
그렇다면 이 역시 내 직업의 '윤리적 딜레마'에 해당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