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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이 Feb 19. 2023

"그럴 바에 누가노인을 쓴대요?

제게 인사하지 마세요

구인처의 전화는 언제나 반갑다. 구직자들에 비해 구인처의 비율이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저 자세의 상냥한 목소리가 돼버린다. 

"아, 네에, 그리고 쉬는 시간은 요?

매뉴얼에 있는 사항들을 차례대로 읊어 묻는 중이었다. 

"쉬는 시간이 있을 만큼 쓰지는 않을 거고요. 하루에 두 시간만 필요해서요." 

"아, 네. 그럼 시급은...." "뭐, 7500원 이상은 힘들고요!" 

"네?" 순간 잘못 들었는 줄 알아 되물었다. 

"그래서 노인들을 쓰려는 거죠. 아무래도 느리셔서 숫자가 많이 안 나오실 테고."라는 말에 화가 났지만 평정을 유지한 목소리로

"저희는 최저 시급이하로는 알선하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자  구인처 담당자는 

"아니, 그럼 누가 노인들을 쓴데요? 하며 툭 끊어버렸다. 

최저 다 주려면 젊은 사람을 쓰지 노인을 왜 쓰겠느냐는 말이 계속 맴돌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노인들은 일을 못할 거라는 생각, 돈을 덜 줘도 된다는 생각, 대충 때우는 대체용으로 생각하는 발상은 어쩌다 하게 되었을 까? 

받아 적던 구인신청서를 찢었다. 

어차피 파쇄시킬 것이지만 내 손으로 찢어버리는 의식을 치른 후에 하고 싶었다.

물론 나이가 드시면 젊은 시절보다 더디게 일을 하시게 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꾸준히 일을 놓지 않고 해 오신 어르신들은 경험이 없는  누구보다도 가장 잘하는 일인이고 전문가다. 







하지만 세상 한쪽에서는  나이만을 따져서 그들의 숙련된 기술과 노하우를 도매값으로 넘기려 하고 있다.

그 전화를 하신 분의 목소리도 그다지 젊게 들리지 않았다. 

그분 역시 노인이 머지않은 분이 틀림없어 보였다. 단지 수요자의 입장이라는 것 때문에 이렇게 인식이 달라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멀었다는 거다. 

진정한 복지가 실천되는 나라는 노인이 행복한 나라다. 

그만큼 노인  삶의 질이 복지의 수준을 여실히 보여주는 민낯이기 때문이다. 







얼굴에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어느 날, 또다시 구인처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부부시면 더 좋으시다고요?"

" 나이는 70 중반까지는 괜찮고요, "

" 청소와 관리하시고 숙식은 제공하신다고요."구인처 담당자가 부르는 데로 받아 적고 있었다.

리드미컬한 대화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당연히 나와야 할 급여 얘기를 안 한다.

"저, 담당자님 급여 말씀은 안 해주셨는데요?"라고 묻자 

"급여요? 음, 하시는 거 봐서 드릴만 하면 드린다고 해주세요." 순간 나는 펜을 내려놨다.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아서다. 

"담당자님 저희는 급여 부분이 정확히 책정이 되지 않으면 접수자체가 되지 않습니다. 

센터장님하고 논의하신 후에 다시 한번 연락 주시겠습니까?" 하자 그는 노인 부부에게 숙식제공하면 그게 어디냐는 식으로 얘기하며 불쾌하게 전화를 끊었다. 

반쯤 식었던 얼굴의 열기가 다시 머리끝가지 올라갔다. 

신청서를 찢으며 파쇄기 쪽으로 걸어갔다. 

'숙식제공'이라는 명목으로 노인의 노동력을 공짜로 쓰겠다는 속셈이었다. 

그런 치졸한 속셈에 동조할 생각도 그럴 수도 없었다.

 

미래는 알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분명히 알 수 있는 한 가지는 누구나 노인이 된다는 거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잘 알고 있는 사실이고 진리다. 

먼 훗날 일 것 같지만 살아보니 너무도 가까운 앞날이기도 하다. 





나 역시 낮잠을 자고 일어난 것 같은 세월이 흐른 후에 이곳을 찾아와 일자리를 구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때는 누군가든 나의 수십 년 동안 갈고닦은 기술을 칭찬하며 노하우에 감동하고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때'가 도래해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앞날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히 노인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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