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 인사하지 마세요.
말씀을 들으니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지만 내가 주로 알선하는 일들은 경비나 아파트 외곽청소와 같은 육체적 노동이 필요한 일들 뿐이다. 물론 노인구직자들의 경력과 니즈에 맞는 일자리를 찾아주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젊은 시절 경력을 인정해 주는 곳은 현실적으로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다.
과거에 선생님이셨건 회사의 임원으로 활약하셨건 간에 경력대로 일자리를 구하기는 아주 힘들다. 실제로 노인인력을 원하는 수요처는 종류는 다분히 한정적이다.
"그런데요,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하루에 반나절을 주 5일로 그리고 버스로 20분 내외에 사무직을 찾는다는 건 아주 힘든 일이에요. 어르신께서 차량을 운행하고 다니신다면 좀 나을 수도 있지만요. 댁도 시외라 교통편도 좀 어려운 면이 있으시네요. 지금 빠르게 구해드릴 수 있는 일자리는 경비직, 공장에서 생산직을 하시거나 마트에서 배달하는 일이네요.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찾아보기는 할 건데요. 시간이 많이 걸리실 수 있겠어요." "고마워요. 무조건 안된다고 말하지 않아서요. 아마 사실상 불가능하겠죠? 아, 잘할 수 있는데...."
그저 많이 아쉽다는 마음을 담은 미소를 지으셨다. 어르신은 의외로 덤덤하게 받아들이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갑자기 바닥에 내려놓으셨던 명품가방을 책상에 세우고, 자연스럽게 한 쪽팔을 걸치셨다. 상체는 가방을 향해서 15도 각도로 살짝 트시더니 핸드폰을 들고 후레시를 터트리기 시작하시는 게 아닌가!
어르신의 턱선은 단 몇 도의 단차로 시시각각 움직였고, 한동안 구직신청 기념촬영은 계속됐다.
포즈 역시 물 흐르 듯 자연스러우셨다. 다만 바라보던 우리의 표정이 상당히 어색했을 뿐이다.
그렇게 어르신은 이름을 묻고 싶은 향수냄새를 남기시고 돌아가셨고, 나는 한 동안 모델직을 찾는 구인광고를 뒤적이는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