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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이 Mar 26. 2023

원조 원 플러스원.

마케팅의 선수

어느새 사무실 문을 열어두어야 숨통이 트이는 기온이 됐다. 봄이라는 계절은 아무리 생각해도 사춘기 소녀 같다. 낯가림이 심하다가 일순간 저돌적으로 변한다. 패딩을 넣어둘 새도 없이 바람막이 점퍼로 프리패스했으니....  녀석은  곧 도망가버릴 터다.


언제 들어오셨는지 기척도 없이 할머님 한 분이 구부정하게 서 계셨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오셨어요? 어르신. " 묻자마자 어르신은 신음소리부터 내신다.

"에고, 에고 다리 아파서 먼저 앉기부터 해야겠네..."라며 사무실 의자로 옮길 기력조차 없으신지 밀고 오신 보행기 좌석에 앉으신다. 다가가 방문 목적을 다시 물었다.

"아니, 나 일 좀 시켜주라고! 서류 다 냈는 데 왜 일을 안 시켜주는 거야? "라고 하신다.

                                                                     

 

                                                                     




 



서류접수 당시 서류심사를 거쳐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실 수 있는 자격자를 선발한다고 누누이 말씀드렸다. 하지만 이 어르신처럼 묻는 일이  다반사다.




                                                                       




 "어르신, 그건 서류심사에서 떨어지셔서 그런 거라니까요. 누군가 그만두시면 순서대로 선정되실 거예요. 그런데 어르신, 다리가 많이 아프신 거 같은데요? " 걱정되어 물었다.

"아냐, 수술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래.  좀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라고 정색하며 대답하신다.

얼마 전  주방에서 보조업무를 하시던 여자 어르신이 생각났다. 

안색이 백지장같이 하얀 데다가 헛 구역질을 하시는 게 심상치 않았다.  당장 119를 불러서 병원에 모시겠다고 하니까 버럭 화를 내셨다.

" 아유 아침 먹은 게 체해서 그렇다니까요!." 라며 역정을 내셨다. 그러는 사이에도 고개가 기우뚱해진다. 물론 119를 이미 부른 상태지만 억지로 모시고 갈 순 없어서 설득했다. 그런데 워낙 고집이 있으셔서 결국 담당자에서 임원진 네 명이 설득하는 상황이 됐다. 그렇게 설득의 비법이 절실했던 순간,  " 푹 쉬고 나오셔도 일자리에서 잘리지 않아요!"라는 누군가의 말에 그제야 119에 탑승하셨다.


그 어르신처럼 몸이 아프다는 사실을 숨기려 하신다. "어르신, 어차피 다리도 회복되셔야 하니까 당분간 푹 쉬고 계세요.  순서가 되시면 꼭 연락드릴게요."라고 설득했다. 그러자 순순히 돌아서시는데, 땀이 나셨는지 보행기 안에서 손수건을 꺼내신다. 보행기 바구니 안에 냉이와 쑥이 투명봉지에 담겨있는 게 보였다.

"어머, 나물 캐셨나 보네요?"

"어디! 다리가 아파서 어떻게 캐남. 요 앞에서 할머니들이 파는 거 샀지. 이천 원 어치 달라고 하면서 쑥 한 줌만 더 주면 안 되겠냐고 했더니 한 줌 주면서 한 번은 정 없다고 또 담아주니까  두 봉지가 됐지.

그래서 돈은 더 없고 해서 주머니에 마스크 새것  있길래 줬지. 이게 다 사람 사는 정이니까."

 묻지 않은 말까지 보탠 '티 엠 아이' 답변이 재미나다.

" 좋은 거래였네요.!" 나는 눈가에 주름을 활짝 피우며 웃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원 플러스 원의 원조는 바로 그런 모습이었다. 사는 이의 의견을 백 퍼센트 존중한.

내가 갖고 싶은 걸로 더 얹어주는. 하나 더 줄 테니 사지 않겠냐는 유혹의 상술이 아닌 이미 끝난 거래에 정을 한 움큼 얹어주는 거래방식 말이다. 

상인에게 부당한 거래로 일말의 마무리가 된 것 같아도, 다시 찾아가는 의리를 보여주고  아끼려 얹어 받은 거래에 돈을 주지는 못하지만  무어든 정표되는 것을 쥐어주곤 했다. 지금과는 정말 많이 달랐었다.

 

정이란 것은 모호하고 두리뭉실하다. 그래서 연필심으로 비교하자면 뭉툭한 모습이다.

분명하게 긋지는 못해도 경계선위에 넓게 퍼져있다. 일이 아닌 사람 살아가는 일엔 뭉툭한 건 단점이 아닌 것 같다. 두리뭉실하다는 건 부드럽고 둥글다는 것. 


퇴근길에 도로 앞 좌판을 지나며 할머니를 유심히 쳐다봤다. 어깨가 좁은 할머니는 그 시간 까지도 나물을 팔고 계셨다.

"어르신 이걸로 한 바구니 주세요."  냉이 바구니를 가리켰다. 

"이거, 내가 캔 거야. 야생에서 자란 거라 향이 짙어."라며 끝이 닳은 지우개 같은 손가락을 움키신다.

"에라 모르겠다.' 쑥' 이게 마지막이니까 그냥 먹어." 할머님은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으시고 봉투에 담아 버리셨다. 내가 원한 건 아니지만 굽은 허리로 힘들게 캐논 나물을 그냥 받을 수는 없어 돈을 내밀었다. 하지만 극구마다 하신다. 

" 들에서 캐논 거니까 그냥 먹어. 대신 다음에 또 팔아주면 되지."라고 하시며 주섬주섬 좌판을 정리하기 시작하셨다. 감사히 잘 먹겠다는 인사를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대답 없이 정리를 하느라 분주하신 할머니를 뒤돌아봤다. 마음과 손이 뭉툭한 한 상인이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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